[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기후변화, 절멸의 저주 "코로나보다 무섭다"
세계 곳곳 재앙적 징후… 차원이 다른 위기 직시해야 할 때
"코로나19보다 더 위험한 것은 기후변화다."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코로나19는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하지만 기후변화는 소리 없이 지구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온다는 점에서 더 위협적이라는 얘기다. 코로나19 역시 기후변화가 초래한 재앙이라는 게 중론이다. 세계 곳곳의 재앙적 징후는 지구가 인류에게 보내는 경고등이다. 그것은 점점 다양하고 또렷해지고 있다.
■ 기후변화 영향 잇따른 기습 폭우
대도시 도심 지하차도가 갑자기 물에 잠기면서 현장에 있던 세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짧은 시간 갑자기 쏟아진 엄청난 양의 폭우 탓이다. 구조의 손길이 늦었고 배수 시설이 작동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폭우의 규모가 상상 이상으로 너무 컸다. 지난달 23일 밤 부산에서 발생한 수해 이야기다. 30일에도 대전·세종 지역에 폭우가 쏟아져 속수무책의 피해가 발생했다.
멀쩡한 하늘이 갑자기 흐려져 비를 거세게 뿌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다시 햇빛을 비추는 일이 다반사다. 전문가들은 갈수록 기습 폭우가 잦고 그 규모 또한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다. 한반도는 갈수록 비의 양이 많아지고 장마가 끝난 뒤에도 비가 계속 내리는 기후변화를 겪고 있다.
이상기후의 영향 가운데 가장 직접적인 위협이 바로 질병을 퍼뜨리는 미생물과 해충들의 급격한 확산이다. 비정상적인 기후에서는 설치류와 벌레, 원생동물,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이 설치는 반면, 이를 먹는 포식자들은 살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전국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수돗물 유충 사건도 기후변화가 낳은 현상이다. 고도정수처리에 쓰는 활성탄(숯)의 기능이 활성화하려면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기후변화로 기온이 오르면 곤충이 번식하기에 알맞은 환경이 만들어지는데, 물 안에서는 조류(藻類)나 플랑크톤이 풍부해지면서 깔따구과의 곤충 번식이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수돗물 유충은 미국 등 다른 나라에도 사례가 목격된다.
■ 이상기후 징조 지구촌 곳곳 휩쓸어
올해 들어 지구촌 곳곳에서 기상이변 소식이 속출하고 있다. 아시아 도처가 유례없는 물난리다. 중국은 최근 중남부 지역을 강타한 역대급 폭우가 50일 이상 이어지면서 4500만 명이 넘는 수재민을 낳았다. 양쯔강 유역의 세계 최대 규모 싼샤댐의 붕괴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본도 기록적인 폭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달 초 규슈 지방을 덮친 폭우로 강이 범람하고 산사태가 잇달아 발생했다. 물난리는 남아시아도 덮쳐 특히 빈부 격차가 심하고 보건 체계가 미흡한 인도와 네팔, 방글라데시 같은 국가가 큰 피해를 입었다. 방글라데시의 경우 국토 3분의 1이 물에 잠겨버렸다.
홍수 다발의 원인은 역시 기후변화다. 과거엔 8월 이후 태풍으로 인한 수해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젠 7월부터 강한 비 피해가 나오기 시작한다. 폭우, 폭풍, 폭염, 홍수를 넘어 극단적인 기상 현상까지 일으킬 확률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책이 없다면 이런 피해는 매년 반복되리라고 한다.
■ 핑크빛 빙하, 무더운 시베리아, 사라지는 산호초
최근 가장 충격적인 광경은 알프스 빙하다.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의 프레세나 빙하에 쌓인 눈이 물감을 뿌린 듯 분홍색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식물의 일종인 조류 때문인데,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 색깔 있는 빙하는 태양 빛을 반사하지 않고 흡수를 가속화해 빠른 속도로 녹을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호주의 대산호초도 91%가 하얗게 탈색하는 백화 현상을 겪는 중이다. 수온이 상승하자 산호와 공생하며 생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갈충조류가 산호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지난 30년간 전 세계 산호의 절반이 그렇게 사라졌다. 산호는 바다 생물 종이 가장 크게 의지하는 생존 터전이다.
지난 6월에는 지구상 가장 낮은 온도 기록(-67.8도)을 가진 시베리아 베르호얀스크 지역의 최고 기온이 관측 사상 처음으로 영상 38도까지 올라갔다. 이 여파로 시베리아에 극심한 화재가 발생했고 영구동토층도 녹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그 충격을 "북극은 말 그대로 불에 타고 있다"는 말로 표현했다.
■ 인위적 온실가스 배출이 주범
기온 상승의 주범은 인위적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다. 지구의 평균 온도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만 년 동안 4도가 오른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후 불과 100년 사이에 1도나 상승했다. 인간이 자연보다 25배나 빠르게 지구의 온도를 끌어올렸다는 뜻이다. 5년 전 국제사회는 2100년까지 온도 상승 폭을 2도 이내로 유지하기로 했는데, 2018년 상승 폭을 1.5도로 더 낮추기로 합의했다.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 줄이고 2050년까지 화석연료를 쓰지 않는다는 게 목표다. 문제는 이런 수치에 사람들이 무감각하고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전 세계적으로 지구 온도가 2도 이상이 오르면 지구는 회복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해수면도 전 세계적으로 2005년과 2015년 사이 해마다 3.6mm씩 상승했다. 빙하가 녹는 것이 해수면 상승의 주요 원인이다. 호주에서 발표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온도가 2도 상승할 때 우리나라의 해수욕장은 모두 물에 잠긴다고 한다. 부산과 인천의 항만 시설은 사용이 불가능하다. 인천공항이 완전히 침수되고 부산 강서구와 을숙도, 김포공항 일대도 위험해진다.
■ 한국 '기후 악당' 벗어날 수 있나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는 '기후 악당(climate villain)'으로 불린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 대기 질 OECD 36개국 중 35~36위, 기후변화 대응지수는 61개국 가운데 58위. 거의 모든 지표에서 꼴찌다. 얼마 전 기상청과 환경부가 발간하는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가 6년 만에 나왔는데, 그 오명을 가감없이 증명하고 있다. 한국의 기온이 세계 평균보다 2배 이상 빠르게 오르고 있다는 내용은 자못 충격적이다.
자원과 에너지, 식량을 모두 외국에서 들여오는 우리에게 기후변화의 가속화로 인한 결과는 모든 면에서 재앙에 가깝다. 값싼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과거의 방식을 바꿔야 할 때가 왔다. 선진국의 자본 시스템은 이미 기후 위기에 대응한 재생에너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도 미래의 경쟁력과 생존을 위해서는 여기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 회복 불능 전 생태계 복원을
생태계 파괴에 대한 지구의 신호가 바로 이상기후다. 산업화 이후 인간이 행한 모든 것이 지구의 고장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 변화는 인간의 감각이 당장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이뤄지지만 실제 자연 환경의 변화는 상상 이상으로 크고 역동적이다. 지구 온도가 한 번 올라가면 되돌릴 방도는 없다. 인류가 자연과의 공존, 생태계 복원이라는 관점을 갖지 않는 한 절멸의 대재앙을 피할 방법은 없다.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감축해 지구 대기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일에 눈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 목숨을 앗아간 이번 폭우 피해로부터 얻어야 할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절제와 검소함 같은 개인의 실천도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기후변화 문제는 혼자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법과 정치를 통해 사회 전체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중앙정부 나아가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정당·시민사회 등이 함께하는 기후 위기 관련 협력체제 구축이 시급하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