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수록 +] 코로나로 친숙해진(?) 바이러스
이태호의 미생물 이야기(5)
바이러스는 미생물에 속하지만 대중에게는 생소한 생명체다. 하지만 인류에게 많은 시련을 안기고 있는 이번의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바이러스를 다소 친숙(?)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게 아이러니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미생물이긴 하지만 여느 미생물과는 성질이 크게 다르다는 것. 앞선 주제에서 설명한 곰팡이, 세균, 효모 등은 스스로 영양분을 섭취하고 자손을 퍼뜨리며 독립적으로 살아가지만, 바이러스는 이런 능력이 전혀 없고 번식과 생육은 오로지 기생하는 숙주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크기는 불과 수십 나노미터(nm). 1나노미터는 1밀리미터(mm)의 백만 분의 1의 크기이니까 지구상에서는 가장 작은 생물에 해당한다. 운동성도 없고, 스스로는 물질대사도, 생식능력도 없는, 생물 같지도 않은 생물이다. 그래서 한때는 바이러스를 무생물로 분류하자는 논의가 있었을 정도로 생명체의 정의에 어긋난다.
구조는 아래 그림처럼 원통형에서 막대형까지 아주 다양하다. 껍질(capsid)은 몇 종류의 단백질(일부는 당이나 지질)로만 구성되어 있고, 내부에는 짧은 DNA 혹은 RNA가 염색체로 존재할 뿐이다. 이번 코로나는 모양이 왕관같이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어떻게 생육하고 증식할까? 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자기는 성장을 일단 멈추고 스스로 바이러스의 새끼를 쳐주는 희한한 일을 벌인다. 바이러스는 오로지 정보가 입력된 유전자만을 제공하고 이 유전자에 들어있는 지령을 숙주세포가 해석하고 번역하여 바이러스의 복제를 전적으로 돕는다는 것. 이런 작업이 계속돼 한 세포 당 수십~수백 개의 자손 바이러스가 만들어져 밖으로 튀어나오고 방출된 바이러스는 다시 옆에 있는 숙주세포를 감염시켜 같은 사이클을 반복하면서 자손 바이러스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린다. 이런 일이 세포에 손상을 가하게 되고 심해지면 결국 숙주는 생명을 다하게 된다.
어떤 바이러스는 증식하지 않고 숙주염색체 속에 파고들어 잠복하는 경우도 있다. 또 숙주염색체를 변형시켜 암과 같은 병을 일으키기도 하고, 생식세포를 통해 자손에게 전달되기도 한다. 숨죽여 잠복했다가 주인의 면역기능이 떨어지면 다시 행동을 개시하여 질병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수두바이러스가 잠자다가 고개를 들면 대상포진이, 헤르페스가 잠복해 있다가 입술이나 혓바닥에 출현하는 것이 구내염이다. 이런 잠복바이러스가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에게 감염되어 숙주 염색체의 일부 혹은 자기 유전자를 옮기기도 한다. 인간 유전자를 분석하면 30~40%가 바이러스에서 왔거나 바이러스가 옮긴 것이라 추측될 정도다.
바이러스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으며, 이들의 숙주역(宿主域) 또한 다양하다. 숙주역이란 감염, 증식할 수 있는 생물종을 뜻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바이러스는 그 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들 바이러스는 자기가 감염할 수 있는 대상이 정해져 있어 아무 개체나 숙주로 사용하지 않는다. 동·식물 등에 각기 기생하는 바이러스가 있는가 하면, 세균에만 감염하는 것(박테리오파지)도 있다. 다행히 식물이나 미생물을 숙주로 하는 바이러스는 사람에겐 옮지 않는다.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천연두, 수두, 간염, 에이즈, 뇌염, 홍역, 감기 등 무수히 많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의 숙주범위는 정해져 있으나 사람과 동물을 동시에 감염시키는 인수(人獸) 공통 바이러스도 흔히 있다. 이번의 코로나19, 과거의 사스·메르스 등도 박쥐-낙타-사람을 옮겨 다니는 인수공통바이러스이다. 원래 동물에서만 기생하던 것이 변종이 되어 사람에게 감염된 것이다.
바이러스19가 숙주세포를 벗어나 바깥환경에 노출되면 얼마나 생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또 바이러스의 감염경로가 비말이라 했다가 공기전파도 가능하다고 수정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WHO의 모습도 보았다. 또 날씨가 더워지면 점차 소멸될 것으로 예측하다가 이도 빗나갔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의 전염성은 온도, 습도 등에 영향을 받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는 전파력이 워낙 강해 열대기후에도 별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추정한다.
세균과는 달리 바이러스에는 왜 치료약이 없는 걸까. 일부 있긴 하다. 신종플루 때 타미플루가 위력을 발휘했다. 이 외에도 에이즈, 말라리아 등에는 치료약이 개발돼 있으나 치료효과가 별 신통치 않으며, 대부분의 바이러스성 질병에는 '약이 없다'가 맞다. 이들 약재를 항바이러스제라 하고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抗生劑)와는 구별한다. 항생제는 세균의 종류와 질병에 관계없이 광범위하게 쓰이지만, 항바이러스제의 경우는 해당 바이러스에만 효과를 나타낸다. 그 효과도 세균의 항생제처럼 극적이지 않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하면 새로운 약이나 혹은 백신이 개발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바이러스질병은 우리 몸 스스로가 항체를 만들 때까지, 다른 말로 면역이 되어 바이러스를 물리칠 때까지 버티고 참아내야 한다.
우리가 고대하고 있는 백신과 면역은 어떤 것일까. 병원균을 처리하여 독성이 없게 만든 것을 항원이라 하고, 이 항원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단백질을 항체라 한다. 항원을 우리 몸에 주입하여 면역세포로 하여금 이 항원을 중화시킬 수 있는 물질, 즉, 항체를 만들도록 훈련시키는 작업을 예방접종이라 한다. 이때 사용하는 항원이 바로 백신이라는 것이다. 독성이 없는 항원(백신)을 접종하면 이에 대항하는 항체가 만들어짐과 동시에 이 항체를 만드는 공장(B세포)까지 생겨나 유비무환의 상태가 된다는 것, 이을 '면역이 생겼다'고 말한다. 백신을 맞고 1~2주 정도 지나면 대개 이런 상태가 된다.
그럼 바이러스가 다른 미생물처럼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부분은 없을까. '없지는 않지만 드물다'가 정답이다. 앞서 인간 유전자의 많은 부분이 자연적으로 바이러스에 의해 전해졌다고 언급했다. 이런 성질을 이용해 타종(他種)의 유용유전자를 바이러스로 하여금 다른 개체에 옮기게 할 수 있다는 것, 이를 '형질도입'이라는 전문용어로 설명한다. 미생물에서는 자주, 식물에서는 가끔 행해지는 육종기술(품종개량)이다. 이른바 현대 용어로는 유전공학이라 부르는 것, 유전자조작생물체(GMO) 등을 만들 때 많이 쓰는 기법이다.
또 있다. 박테리아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해 병원균을 퇴치하는 기술이 최근 나왔다. 흥미로운 것은 장내에서 흔히 발견되면서도 종종 문제를 일으키는 클로스트리듐 디피실이라는 세균을 박테리오파지로 하여금 잡아먹게 하는 치료 방법이다. 아직 초보 단계라 발전이 기대된다.
바이러스는 하나의 학문세계를 구축할 만큼 방대한 내용이라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이후 다시 주제를 정해 설명한다. 다음은 이상한(?) 미생물의 한 종류인 고세균(古細菌)에 대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