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물값 거부
A라는 청년이 있다. 그는 대학교를 나와 일 년 전쯤 취업했다. 극심한 취업난에 졸업하고 바로 직장을 잡았으니 행운아라고 할 수 있겠다. 바늘구멍 같은 좁은 문을 뚫고 들어갔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하지만 요즘 퍽 우울하다고 하소연한다. 그 이유는 직장 갑질에 시달리거나 봉급이 적어서가 아니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출근 자체가 두려운 상태와도 거리가 멀다. 무엇이 그를 그리 힘들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A가 근무하는 회사의 주 업무는 환경 정화. 단순히 하수도 청소나 인분 치우기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토양과 수질 오염을 추적해 원상으로 돌리기 위해선 대형 장비와 첨단기기가 필요하기에 전문 영역으로 꼽힌다. 사회 초년생인 A는 첫 현장 근무에서 화들짝 놀라고 만다. 자연이 너무나 황폐해져 있는 사실을 직접 목격했던 것이다. 자기와 가족과 이웃이 사는 일상의 세계는 깨끗하고 정리되었지만, 그 이면은 전혀 딴판이었다. 화학물질이 덩어리째 땅 밑에 숨겨져 있고, 온갖 건축 폐기물 역시 처치 곤란할 정도로 널려 있었다. 수질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현상이 한 지역에 국한된 게 아니었다.
이 신참내기가 받은 충격의 원인은 바로 우리에게 있다. 지금도 무분별한 개발과 훼손을 하면서 편리한 삶을 영위 중이다. 화려하고 깨끗한 아파트 인테리어, 몇 달이 멀다고 바뀌는 휴대폰, 약간의 냄새도 못 참고 옷을 화학 세정제에 담그는 행위 모두 알고 보면 반 자연적 행위이다. 늘어나기만 하는 고깃집 역시 식수인 강물에 마구 버려지는 축산 폐수를 급증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구역질이 날 정도인 그런 모습이 우리에게 잘 보이지 않는 건 은폐 때문이다. 분리해 땅에 파묻고, 먼바다에 버리는 까닭이다. 오염 총량은 줄지 않는 것이다. 낙동강 물 취수장은 이런 눈속임도 없다. 아예 노골적이다. 상류에서 온갖 쓰레기가 떠내려온다. 다른 지역 취수원은 그래도 식수 전용 댐이라도 만들었다. 이러니 부산과 울산, 창원 주민은 고스란히 유해 물질에 노출될 수밖에.
오죽하면 허성무 경남 창원시장이 ‘물값 납부 거부’라는 초강경 카드를 들고나왔을까. 허 시장은 “시민의 건강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수자원공사와 낙동강유역환경청에 대한 원수대금과 물이용부담금 등의 납부 거부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산도 여기에 동참해야 마땅하다. 맑은 물 보장 없는 동남권 공동체는 허상이나 다를 바 없다.
이준영 논설위원 gapi@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