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요리] 난 수돗물 안 마신다고?
모래 늪에 빠진 낙동강 식수 문제
난 수돗물 안 마신다고?
지난 1996년 11월. 늦가을의 차가운 강바람에 몸을 맡기고 낙동강 위를 달린 적이 있다. 부산 낙동강 하류에서 출발해 대구 달성군까지 보트로 가야 하는 대장정이었다. 정확한 거리와 시간은 기억에 없으나 수십 ㎞는 족히 되었으리라. 부산 시민의 식수원인 낙동강 수질이 날로 악화되는 원인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탐사 보도 기획이 계기였다. 그때 대구시가 낙동강 상류에 위천공단을 건립하려는 계획을 세워 놓은 상태라 부산·경남 주민의 분노 게이지가 상승한 것도 주요 동력이 됐다.
당시 목격한 실상은 참담했다. 지류의 시커먼 물이 본류로 들어오는 건 예사였다. 보트를 타고 가야 하는 사정상 그 색깔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축산과 공장 폐수, 생활하수 등으로 짐작하기에는 충분했다. 보트를 향해 폭주하던 낙동강 하류 특유의 악취는 지금도 코끝이 기억하고 있을 정도이다. 머릿결을 날리는 바람이 시원하기는커녕 인상만 찌푸리게 했다. 상류로 올라가면서 충격적인 장면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그중 가장 놀라운 건 강변에 설치한 쓰레기매립장이었다. 모 지자체에서 발생하는 온갖 쓰레기를 어떻게 강 옆에 묻을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엔 음식쓰레기 분리배출이 정착하지 않은 시기였다. 방수벽 설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니 쓰레기 매립장에서 배어 나온 침출수가 강물로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비가 내리면 그 정도가 심해질 건 명약관화했다.
■다시 불 붙은 낙동강 수질 문제
물줄기가 약해지는 중상류에서도 ‘희한하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 수량이 적다 보니 인근 지자체에서 아예 돌로 거대한 보를 쌓아 취수하는 경우였다. 이 때문에 보에서 상류는 수심 10m 이상의 거대한 호수를 이루고 있으나 보 하류는 물길이 차단돼 하상이 절반 이상 드러나 강이 실개천으로 변해 버렸다. 수심도 매우 얕아 이날 탐사선으로 가져갔던 보트조차 띄울 수 없을 정도였다. 수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갈수기 때는 낙동강 물이 차단되어 금호강에서 방류되는 오염물질을 희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강 흐름을 막으면서 하류 수량을 줄이는 이기적인 행위로밖에 볼 수 없었다. 부산시민들이 알기라도 하면 분기탱천할 일들이었다. 강 하류에 산다는 죄(?)밖에 없는데 왜 오염된 물을 마셔야 하는지 하소연이 나올 법했다. 다른 분야는 선진국 턱밑까지 좇아갔다고 자랑하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물 문제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500만 명이 넘는 부산·경남 주민이 식수로 사용 중인 낙동강 물 문제가 최근 다시 수면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낙동강 오염 문제에 대한 목소리가 낮았던 건 해결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도저히 정화 방법을 찾지 못해 애써 외면해 왔다는 표현이 맞다. 그래도 국민 건강 문제는 도외시할 수 없었는지 지난 5일 환경부가 경남 창원에서 ‘낙동강 유역 통합물관리 방안 마련 연구 용역’ 중간 결과를 공개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다시 식수 논란에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이날 환경부의 발표를 보면 기자가 20여 년 전 보트로 낙동강을 탐사하던 때와 달라진 점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되레 사정이 더 나빠진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이후 본격화한 낙동강 물 문제가 헤어나올 수 없는 함정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대작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모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낙동강 식수를 해결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우리의 처지와 오버랩되기도 한다.
이날 환경 단체와 대체 수원지 주민의 반발로 보고회는 파행을 겪었지만, 내용은 대충 이랬다. 낙동강 유역의 안전하고 깨끗한 물 공급을 위해 부산과 동부 경남 시민의 취수원으로 황강과 강변여과수를 제시했다. 기존의 초고도처리와 조합해 낙동강 하류의 취수원을 다변화하려는 방안이다. 이게 성사가 되면 일일 기준 황강 하류 물(45만㎥)과 강변여과수(또는 인공습지) 개발 물량(50만㎥)을 더해 95만㎥를 확보해서 동부 경남에 48만㎥, 부산에 47만㎥를 공급한다. 부산의 경우 일일 소요 물량 총 95만㎥ 가운데 나머지 48만㎥는 초고도처리(또는 기수담수화)를 통해 공급할 예정이다.
낙동강 수질 개선 방안도 포함됐다. 낙동강에 유입되는 오염물질을 줄이기 위해 하·폐수나 가축분뇨처리 시설을 확대하고, 대형 하수처리장 6곳에 초고도처리공법을 도입해 방류수 수질 관리도 강화한다는 것이다. 구미와 성서산단 하·폐수처리장에 폐수 무방류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됐다. 또 낙동강 하류에 미량유해물질 모니터링을 위한 수질측정센터를 신설해 수질 사고에 대비하기로 했다. 여기에 해당 광역 자치단체장들도 호응했다.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 김경수 경남도지사, 송철호 울산시장과 권영진 대구시장, 이철우 경북도지사 등 영남권 5개 시·도 단체장은 이날 경남도청에서 열린 제1회 영남권 미래발전협의회에서 ‘낙동강 유역 상생발전 협약서’를 발표하고, 이번 용역 결과 이행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진퇴양난의 지역 간 물 분쟁
그러나 이게 계획대로 시행된다고 보기 어렵다. 그동안 이와 비슷한 방안이 나온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비슷한 사정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부산·경남 지역에 공급할 깨끗한 식수를 다른 지역에서 확보하려는 시도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물 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한때 합천댐 하류에 광역취수장을 설치해 취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해당 지역 주민의 반발에 부딪였다. 이후 남강 댐물·합천 댐물·강변여과수 취수 계획이 비슷한 이유로 표류했다. 뒤이은 지리산댐 추진 계획 역시 경남과 전북의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이밖에 낙동강 하류 창녕에 강변여과수를 개발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이번에는 농업용수 부족을 우려한 농민들의 반발로 답보 상태이다.
설사 대체 수원지가 확보된다고 해도 문제는 남아 있다. 바로 낙동강 수질 악화이다. 지금은 식수라도 확보하기 위해 맑은 물 대책이라도 세우지만, 그렇지 않다면 정부가 수질을 결국 포기할 것으로 환경 단체는 보고 있다. 환경 단체의 이런 주장에는 어찌해서든 낙동강을 살려야 한다는 인식이 깔린 것이다. 이 단체들은 강물을 살리기 어렵다는 이유로 다른 수원지를 자꾸 개발한다면 환경 훼손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낙동강은 낙동강대로 엉망이 되고, 대체 수원지를 위한 댐을 건설하면서 인근 산림마저 망가진다는 그들의 논리는 설득력이 강하다.
그렇다면 현재 낙동강 수질은 어떨까. 최근 놀라운 결과가 부산일보(8월 11일 자 1면)에 보도됐다. 이에 따르면 낙동강 수질이 최근 5년간 선진국 기준인 TOC(총유기 탄소량)로는 생활용수로 쓰기 어려운 3등급에 그쳤다. 환경정책기본법시행령 기준에 따르면 2등급 물은 일반적인 정수처리를 통해 생활용수로 쓸 수 있다. 반면 3등급은 고도의 정수처리를 해야만 생활용수로 이용할 수 있고, 일반적인 정수처리를 하면 공업용수로 써야 한다. 그만큼 3등급 수질은 식수원으로 쓰기에 부적합하다는 뜻이다. 심지어 물금취수장에 TOC 5등급 물이 유입되기도 했다. ‘수질 나쁨’으로 분류되는 5등급 물은 고도정수를 해도 공업용수로도 쓸 수 없어 특수처리를 해야 한다. ‘약간 나쁨’으로 분류되는 TOC 4등급은 수시로 측정됐다. 도저히 생활용수로 사용할 수 없는 물을 부산시민이 5년간 마셨다는 말이 된다. 기간이 5년에 불과한 점도 미심쩍다. 그동안 나름대로 수질 관리를 해왔기에 그 이전에 오염이 더 심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측정 기준이 마련되지 못하고, 측정 기구가 미흡했을 뿐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것이다.
■진정한 해결책은 시민의 힘에서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시민이 나서는 길밖에 없다. 과거 대구 위천공단 설립을 반대하기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났던 부산 시민의 힘을 다시 보여줘야 한다. 허성무 경남 창원시장은 지난달 30일 낙동강 수질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물값 납부 거부’라는 초강경 카드를 들고나왔다. 그는 “낙동강의 수질 악화는 낙동강 수계 도시 중에서 창원과 김해 등 하류권 도시 시민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로서,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다”며 “창원시장으로서 시민들의 건강권, 나아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수자원공사와 낙동강유역환경청에 대한 원수대금과 물이용부담금 등의 납부 거부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부산시장은 물론 부산 지역 구청장들도 동참해야 마땅하다.
식수 문제는 생명과 직결된다. 사무실이나 가정에서 생수나 정수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아무리 수돗물을 먹지 않으려 해도 허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식당에서 식사하거나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마실 때 자신도 모르게 수돗물을 마실 개연성이 높다. 그렇다고 생수통을 들고 다니면서 조리를 부탁하거나 차를 우려내 달라고 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주민의 힘을 생각하니 불현듯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일본 중서부 시가현 다카시마시의 작은 마을 하리에가 프로그램의 한 토막으로 등장했다. 지금도 1000년 전부터 쓰던 우물을 사용하는 청정 마을을 다룬 이야기이다. 화면은 마을 가운데 냇물이 흐르고 집집마다 연결된 우물을 비췄다. 부엌까지 들어 온 이 물에 설거지를 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식수로 쓰고 남은 물로 빨래와 설거지를 한 후 흘러나가는 물에 물고기가 노닐 정도로 수질이 좋았다. 여기서 감동적인 건 다음에 물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였다. 같은 수원지의 물이 집집마다 연결되기 때문에 모든 이웃이 우물을 함께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어느 한 집만 수질을 오염시켜도 다른 집의 우물까지 오염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강 하류의 사람이 어찌 되든 말든 물을 마구잡이로 오염시키는 낙동강의 현실과 너무나 대비되었기에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이준영 논설위원 gapi@busan.com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