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 ‘엎친 데’ 폭염 ‘덮친’ 남해안 양식장 초토화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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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양식수산물 떼죽음 피해가 발생한 진해만 해역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경남도당 위원장이 당동만 굴양식장 어민에게서 폐사 현황을 듣고 있다. 고성군 제공 지난 13일 양식수산물 떼죽음 피해가 발생한 진해만 해역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경남도당 위원장이 당동만 굴양식장 어민에게서 폐사 현황을 듣고 있다. 고성군 제공

가장 길었던 장마 이후 경남 앞바다에서 양식수산물 떼죽음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빈산소수괴(산소 부족 물 덩어리)’에 의한 폐사로 추정되는데, 굴 가리비 홍합 미더덕 멍게 등 품종을 가리지 않고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긴 장마에 이은 불볕더위로 이제 적조와 고수온 발생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라 어민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6일 경남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부터 진해만 일대 해상 양식장에서 이상 조류로 인한 집단 폐사 신고가 계속되고 있다. 어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양식물에서 폐사가 발생하고 있는데, 패류인 굴과 홍합의 경우 알맹이는 온데간데없이 껍데기만 남았고, 멍게 미더덕 같은 껍질이 얇은 피낭류는 형체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녹아내리고 있다.


집중호우로 바닷속 빈산소수괴층 형성

굴·가리비·홍합·멍게 등 품종 안 가려

경남만 437건 47억 6300만 원 피해

피해 어장 중 보험 가입은 11곳뿐

폭염 여파 적조 기승 예상돼 어민 한숨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만 437건에 47억 6300만 원 상당이다. 피해 면적은 653ha로 진해만 내 전체 양식장 2229ha의 29.3%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거제가 175건 32억 원, 고성 90건 8억 6000만 원, 창원 167건 5억 7000만 원, 통영 5건 5500만 원이다. 굴이 161건에 24억 원 상당으로 가장 많고 멍게가 78건, 18억 원 상당이다. 홍합도 174건 5억 원으로 확인됐다.

지금도 폐사가 진행 중이라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특히 멍게는 폐사 확인이 늦어 최근에야 집계를 시작한 데다, 일단 피해가 발생한 어장에선 입식량의 80~90%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어민들은 역대 최장 장마로 인한 바닷속 산소 부족을 원인으로 꼽는다. 양식 수산물의 경우, 바닷물에 녹아 있는 산소 농도가 3㎎/L이하로 떨어지면 폐사한다. 피해가 집중된 진해만 일대 산소 농도가 이보다 낮은 0.38~2.70㎎/L에 머물고 있다.

이는 최근까지 이어진 집중 호우로 바다 표면과 저층의 염분 농도 차가 커지면서 그 경계에 산소농도가 낮은 물 덩어리(빈산소수괴) 층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현재 진해만에는 이 층이 최고 20m 두께로 분포하고 있다. 10m 안팎이던 예년의 2배다. 태풍이 지나가며 바닷물을 섞어 주면 희석되는데, 올해는 이마저 없어 장기간 유지되고 있다. 어민들은 매년 빈산소수괴로 인한 크고 작은 폐사가 발생하지만, 올해처럼 광범위하게 발생한 것은 처음이라고 입을 모은다.

멍게수협 정두한 조합장은 “전량 폐사나 다름없다. 근래 들어 제일 심각하다. 본격적인 피해 조사가 시작되면 얼마나 (피해규모가)늘어날지 가늠하기도 힘들 정도”라며 “새끼부터 종패까지 그야말로 초토화 상태다. 내년 출하는 고사하고 최소 2~3년은 멍게 수확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진해만 일대를 뒤덮은 빈산소수괴로 폐사한 양식 굴. 알맹이는 온데간데없이 껍데기만 남았다. 거제시 제공 진해만 일대를 뒤덮은 빈산소수괴로 폐사한 양식 굴. 알맹이는 온데간데없이 껍데기만 남았다. 거제시 제공

자연재해로 인한 폐사에 대해 정부가 복구비를 일부 지원하지만. 지원 대상이 아니거나 지원 한도도 5000만 원에 불과하다. 양식수산물재해보험에 가입한 상태라면 실손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보험료 부담 탓에 영세 어민들에겐 언감생심이다.

보상 한도 10억 원을 기준으로 정부와 지자체 지원을 합쳐도 어민이 내야 할 보험료가 1000만 원 안팎이다. 보장 기간 1년에 낸 보험료는 돌려받지 못하는 소멸성 보험치곤 적잖은 금액이다. 게다가 최근 자연재해로 인한 양식물 떼죽음 피해가 빈번해지고 피해 규모도 커지면서 가입자가 늘고 손해율이 급증하자 보험 판매사인 수협중앙회가 보험료를 종전 대비 33%나 인상해 부담이 더 커졌다. 이 때문에 이번에 피해를 본 어장 437곳 중 보험에 가입한 어장은 단 11곳뿐이다. 여기에 장마 직후 시작된 폭염 여파로 이달 말까지 고수온과 적조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돼 겨우 한숨 돌린 어류 양식 어민들도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경남도와 피해 시·군은 농어업재해대책법에 따른 신속한 피해조사를 토대로 폐사 원인이 규명되는 즉시 복구계획을 수립해 어민들을 지원할 방침이다. 일단 16일까지 1차 정밀조사를 완료하고 도 심의를 거쳐 21일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이후 확인된 피해에 대해선 추가 계획을 수립해 지원할 계획이다.

정치권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경남도당 위원장)은 지난 13일 고성과 거제, 통영 피해 현장을 찾아 실의에 빠진 어민들을 위로하고 신속한 복구 지원을 약속했다. 김 의원은 “원인이 밝혀지는 대로 정부에 피해복구를 건의하겠다”면서 “단기적으로 어장 생계 문제에 대응하고, 해양수산부가 중장기적인 대책도 함께 마련하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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