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장 김원웅 ‘친일 청산’ 기념사 놓고 다시 불붙은 이념 논쟁
해방의 기쁨으로 하나가 돼야 할 광복절이 정쟁으로 인해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졌다. 김원웅 광복회장의 ‘친일 청산’ 기념사를 둘러싼 여야 갈등은 16일에도 계속됐다.
시작은 김 회장이 지난 15일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호칭을 뺀 채 ‘이승만’이라 지칭함과 동시에 “친일파와 결탁했다”고 주장하면서다. 그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이어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에 대해서도 ‘민족반역자’로 지칭하며, 애국가를 ‘민족반역자가 작곡한 노래’라고 말했다. 특히 김 회장은 국립현충원에 친일 군인을 비롯한 반민족 인사 69명이 안장돼 있다면서 이들의 묘 이장을 골자로 하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말해 친일파 파묘 논란을 재점화했다.
김 “이승만, 친일파와 결탁” 주장
현충원 친일 군인 등 파묘 요구도
통합, 사퇴 요구… 민주, 옹호 나서
반기문-윤건영 ‘정치 논쟁’ 벌여
김 회장의 기념사는 이날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광복절 기념식에서 대독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사실이 전해지면서 일부 권역에서는 현지 지부의 재량으로 즉석에서 수정되기도 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기존에 준비해 왔던 축사 대신 현장에서 즉석으로 반박 연설에 나서기도 했다.
통합당은 16일 김 회장을 “무도하다”고 평가하면서 사퇴를 요구했다. 배준영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그가 언급한 내용이 국민화합을 선도하는지, 회원들의 뜻을 대표하는지 지극히 의심스럽다”며 “대한민국 독립운동 정신의 본산을 사유화하는 김 회장은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통합당 의원들도 가세했다. 장제원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을 이간질하는 것이 바로 매국행위”라며 “광복의 벅찬 감격마저도 편 나누어 찢어발기고, 증오하고, 저주하는 기념식이 왜 필요하냐”고 날을 세웠다. 허은아 의원도 “반일 친북, 반미 친문의 김원웅 회장은 파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김 회장 옹호에 나섰다. 민주당 박재호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김 회장의 ‘친일인사 파묘’ 주장을 비판한 원 지사에게 “부끄럽고 가슴 아픈 역사 인식”이라며 “스스로 선택해서 동족을 학살하고 구속, 억압한 사람은 친일파임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이개호 의원 역시 “김 회장은 왜놈들과 피 흘리며 싸운 아버지를 가졌다”며 “친일을 한 자와 친일을 비호한 자들에 대해선 무슨 말이든 할 자격이 있다”고 옹호했다.
아울러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까지 제75주년 광복절 성명을 통해 정치권 논쟁에 참여했다. 반 전 총장은 성명에서 “세계적인 안목보다, 이념편향·진영중심의 국정운영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누적적으로 쌓였다”면서 “이에 따른 국민적 분열과 사회갈등이 국력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문재인 정부를 정면 비판한 것이다.
이에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정치적 목적을 뒤에 숨긴 발언들은 오히려 반 총장님이 말씀하신 ‘국민적 분열과 사회적 갈등’을 부추길 뿐”이라며 맞받아쳤다.
이처럼 광복절 75주년 기념일이 정치권 인사들의 비난과 정쟁으로 얼룩지자 이념 논쟁을 멈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김원웅 씨의 도발적 발언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역사와 보훈의 문제에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그 경박함이야말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 제일 먼저 척결해야 할 구태”라고 지적함과 동시에 통합당을 향해서도 “이승만이 국부라고 광복절에 건국절 데모를 하는 국가주의 변태들과, 5·18 광주에서도 불렀던 애국가까지 청산하자고 주장하는 민족주의 변태들의 싸움. 둘 다 청산 대상”이라고 비판했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