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수록 +] 동식물처럼 미생물도 키워볼까
이태호의 미생물 이야기(8)
미생물은 동식물보다 키우기가 훨씬 까다롭다. 대부분은 어떤 먹이 어떤 생육조건을 요구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배양할 수 있는 것은 전체 미생물의 1%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모든 미생물을 키울 수 있는 보편적 방법은 아직 없다. 단지 우리가 배양하는 것은 인위적 환경에서 자랄 수 있는 미생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미생물은 어떤 먹이를 좋아하나? 동식물에게도 요구하는 영양소가 다르듯이 미생물도 종류에 따라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사람에게는 5대 영양소(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비타민, 미네랄)가 필요하지만 미생물에게는 천차만별이다. 이른바 곰팡이, 효모, 세균 간에도 혹은 같은 종류끼리도 먹이의 특성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생물은 지구상의 모든 유기물을 잘 먹는다. 물질순환의 중심에 미생물이 있다. 특수한 것 중에는 오물, 폐수, 생활쓰레기 등 동식물이 이용할 수 없는 물질을 잘 먹어치워 환경을 정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 미생물은 우리가 먹는 음식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처럼 그렇게 까다롭지는 않다. 특수 미생물에 대해서는 다른 주제에서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 보편적인 먹이(영양소) 종류와 생육환경에 대해 알아본다.
탄소원 ; 대부분의 미생물은 탄소원을 반드시 요구한다. 즉 탄소(C)가 포함된 유기물질이라는 뜻이다. 여러 종류가 있지만 가장 잘 이용하는 것이 포도당과 설탕 등의 단순당이다. 종류에 따라서는 전분, 섬유소, 리그닌, 탄닌, 고무, 플라스틱 등 각종 난분해성물질뿐만 아니라 이산화탄소까지 먹어치우는 미생물(광합성 미생물)까지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미생물의 배양에는 포도당을 많이 쓴다. 광의(廣義)로는 단백질(아미노산)도 탄소원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를 탄소원과 질소원의 겸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질소원 ; 모든 생물은 생육에 질소(N)를 요구한다. 단백질이나 핵산 합성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생물도 마찬가지. 그런데 어떤 형태의 질소를 공급해 주어야 이용이 가능한지가 문제다. 미생물의 종류에 따라 요구하는 질소원이 다르기 때문에 정해진 질소원은 없다. 보통 유기태질소인 우유단백질(카제인)의 분해불인 펩톤(peptone)이나 소고기추출물(meat exyract), 빵효모추출물(yeast extract) 등을 많이 쓴다. 가끔 암모늄염, 질산염과 같은 무기태질소를 잘 이용하는 것도 있다.
비타민, 미네랄 ; 미생물은 비타민을 요구하지 않고 전부 세포 내에서 합성해 쓴다. 따라서 배지에 첨가해 줄 필요가 없다. 단 먹성이 까다로운 미생물은 어떤 비타민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미네랄은 동식물과 다를 바 없이 거의 모든 미생물이 요구한다. 많이 필요로 하는 미네랄은 배지에 첨가해 주어야 하지만 미량원소는 수돗물이나 배지 성분에 묻어 들어간 것으로 충분하다.
배지(培地) ; 미생물을 키우는 터전을 말한다. ‘합성배지’와 ‘천연배지’가 있다. 합성은 탄소원, 질소원(유기 혹은 무기) 및 몇 종의 미네랄을 첨가하고 고압솥(autoclave)으로 멸균하여 쓴다. 천연은 우유, 곡물가루, 빵가루, 밀기울, 콩 등을 그냥 혹은 멸균하여 배지로 사용한다. 요구르트, 메주, 누룩이 천연배지에 해당 균을 키운 대표적 산물이다. 선택배지라는 것도 있다. 특정 미생물의 검출에 쓰는 것으로 배지성분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여 선별 배양하는 방법이다. 대장균과 병원균의 판별과 검출에 많이 쓴다.
미생물은 어떤 환경을 좋아할까? 미생물은 지구의 모든 곳에서 서식한다. 펄펄 끓는 지옥천, 사해, 사막에서도 훌륭히 살아간다. 하지만 이런 극한 환경에서 자라는 특수한 종류를 제외하고는 보통은 일반 환경을 좋아한다. 어떤 생육환경을 요구하는지 보자.
산소 ;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은 산소를 필요로 하지만 미생물은 그렇지 않다. 산소를 반드시 요구하는 ‘호기성’, 산소가 있으면 절대 못 자라는 ‘혐기성’, 산소가 있으나 없으나 자라는 ‘통성혐기성’ 등으로 나눈다. 청국장의 고초균은 호기성, 보톡스균은 혐기성, 알코올발효효모(빵 효모)는 통성혐기성균이다. 이 효모는 산소가 있으면 왕성하게 자라기는 하나 알코올은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술을 만들 때는 공기의 유입을 차단해야 하는 이유다. 유산균은 산소가 없는 편이 생육에 좋다. 호기성균은 배양 시 무균공기를 주입하고, 편성혐기성균은 공기의 유입이 차단(질소나 탄산가스로 치환)된 밀폐된 공간에서 배양한다.
온도 ; 미생물은 종류에 따라 생육적온이 다르다. 생육온도에 따라 저온균, 중온균, 고온균으로 나눈다. 대개는 중온균이 많아 25-30도 전후에서 잘 자란다. 청국장균과 유산균은 40도 이상이 적온인 고온균에 속한다.
수분 ; 미생물은 수분이 있어야 자란다. 건조해 두면 썩지 않는 이유다. 잘 마른 쌀의 수분 농도가 14% 정도다. 미생물은 수분이 20-30% 이상은 되어야 자랄 수 있다. 곰팡이 종류가 건조에 가장 강하다. 미생물의 배양은 영양성분이 들어있는 액체 용액 혹은 수분이 충분한 고체배지에서 키운다.
pH(수소이온농도) ; 미생물이 좋아하는 적정 pH도 있다. 대부분의 미생물은 중성 부근에서 잘 자란다. 물론 치우친 산성이나 알칼리성을 좋아하는 미생물은 있다. 산성 환경에서는 부패미생물이 잘 자라지 못해 초절임(피클) 해주면 잘 상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키울까. 배양하고자 하는 미생물의 구미에 맞는 배지조성과 생육조건을 맞춰주고 액체 및 고체형태로 키운다. 시험관과 플라스크, 몇 톤짜리 발효조(배양탱크) 등 배양용기와 방법은 다양하다. 특정 물질이나 약품 등을 생산할 경우는 순수 분리한 단일종의 미생물을 쓴다. 고체배지는 고두밥(쌀누룩), 밀기울(밀누룩), 콩(메주) 등에 배양하는 것을 말한다. 목적 물질(약품, 효소, 조미 성분)의 생산을 위해 미생물을 키우는 것을 발효라는 말로 표현한다.
배양에는 ‘순수배양’과 ‘일반배양’이 있다. 순수배양은 특정 미생물을 순수하게 분리하여 한 종으로만 배양하는 것이고, 일반배양은 오픈된 공간에서 미생물의 자연 착생을 기다려 배양하는 경우이다. 재래식 발효법인 술, 간장, 된장, 청국장의 제조는 순수 분리한 미생물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는 종류가 자라 품질이 저하되는 경우도 있다. 여러 미생물이 동시에 번식할 경우 서로 경쟁관계를 나타내는 것을 길항(拮抗)이라 한다. 이때 숫자가 적거나 세가 밀리는 쪽은 증식이 방해되며, 적응성이 좋은 쪽이 우점종이 되어 왕성하게 번식한다. 재래식 메주나 누룩의 경우 그냥 방치해도 황국균(누룩곰팡이)이 주로 번식하는 경우가 그렇다.
미생물의 특수 종류인 바이러스를 합성배지에 키우는 방법은 없다. 오직 숙주의 세포 내에서만 증식하기 때문에 감수성이 있는 관련세포에서 혹은 유정란 달걀에서 키운다. 다음 주제는 “미생물을 어떻게 순수 분리하고 이름을 붙이며 보존하나”에 대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