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태풍 ‘바비’, 심통난 바다엔 ‘단비’될까?
“지금은 태풍이 특효약인데 말이죠.”
경남 남해안 양식업계가 제8호 태풍 ‘바비’를 놓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태풍이 몰고 올 강한 비·바람에 시설물 피해를 걱정하면서도, 올여름 골치인 ‘빈산소수괴(산소 부족 물 덩어리)’를 몰아내는 단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도 내비치고 있다.
경남도에 따르면 26일 현재 빈산소수괴 피해로 추정되는 도내 양식수산물 집단폐사 규모가 827건에 72억 5800만 원으로 집계되고 있다. 어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양식 수산물에서 폐사가 잇따르고 있는데, 패류인 굴과 홍합은 알맹이는 온데간데없이 껍데기만 남았다. 멍게 미더덕 같은 껍질이 얇은 피낭류는 형체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녹아내리고 있다.
굴이 268건에 40억 3300만 원으로 가장 많고, 멍게가 115건 25억 4100만 원, 홍합 207건 5억 6500만 원, 가리비 8건 1억 1900만 원, 미더덕 229건이다. 피해 어장 면적을 합치면 1100ha 이상으로 진해만 내 전체 양식장 2229ha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지금도 폐사가 진행 중이라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어민들은 긴 장마로 인한 바닷속 산소 부족을 이번 떼죽음의 원인으로 꼽는다. 양식 수산물은 바닷물에 녹아 있는 산소 농도가 3㎎/L이하로 떨어지면 폐사한다. 호흡곤란인 셈이다. 피해가 집중된 진해만과 진동만, 마산만 일대에는 용존산소 농도 0.31~2.98㎎/L인 빈산소수괴 층이 최고 21m 두께로 형성돼 있다. 10m 안팎이던 예년의 2배다. 매년 이로 인한 크고 작은 폐사가 발생하지만, 올해처럼 광범위하고 장기간 유지돼 피해를 남기는 것은 처음이라는 게 어민들 주장이다.
빈산소수괴는 보통 태풍이 지나가며 바닷물을 섞어 주면 희석돼 사라진다. 하지만 올해는 아직 이렇다 할 태풍이 상륙하지 않았다. 이달 초 발생한 제5호 태풍 장미가 유일하게 남해안에 영향을 미쳤지만 소형인 데다, 세력이 약해 너울성 파도를 일으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많은 비를 뿌리면서 빈산소수괴 세력만 키웠다.
이런 상황에 강풍을 동반한 태풍 바비 북상에 어민들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바비는 역대 태풍 중 가장 바람의 세기가 셌던 2003년 ‘매미’의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있는 매우 강한 태풍으로 덩치를 키웠다. 당시 매미의 하루 최대풍속은 초속 51.1m, 최대 순간풍속은 초속 60m였다. 바비는 26일 밤부터 27일 새벽 사이 서해상을 지나며 한반도 전역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 경남 남해안은 태풍의 직·간접 영향권에 들어간다.
지역 양식업계는 강풍에 따른 시설물 피해를 우려하면서도 빈산소수괴 소멸을 앞당기는 촉매가 될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다행히 직접 영향권이 아니라 천만다행”이라면서 “예전부터 태풍이 한번 크게 휘저어 주면 (빈산소수괴는) 곧장 없어졌다. 이번 태풍도 양식 어민 입장에선 불청객은 아닐 듯하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여름 막바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되는 적조나 고수온을 억제하는 역할에 주목한다. 여름철 주요 재난으로 손꼽히는 태풍은 발생 시점이나 형태에 따라 적조와 고수온을 부추기거나, 반대로 잠재우는 변수로 작용한다.
통상 적조 발생 초기, 많은 비를 뿌리는 태풍은 적조의 확산을 부추기는 촉매제가 된다. 반면 초가을에 가까운 9월 전후, 강풍을 동반한 태풍은 적조의 확산을 막는다. 너울성 파도가 수중의 적조 생물을 넓게 퍼트려 밀도를 낮추고 세력을 와해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한반도가 태풍의 ‘오른쪽 위험 반원’에 있는 만큼, 방심은 금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립수산과학원은 “가두리양식장이 많은 남해안은 그물망과 연결 밧줄을 단단히 고정해야 한다. 작은 파손도 강풍에 의해 훼손 부위가 확장돼 양식생물이 유실될 수 있음으로 취약 부위는 미리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태풍으로 인한 외상으로 양식생물의 질병 감염도 예상된다”면서 “질병 발생이 의심되면 적기에 조처되도록 수과원이나 수산질병관리원에 문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