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도우려면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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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숙 사회복지법인 자성 대표

지난달 중순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늦깎이 박사 졸업생이 나왔다. 부산 제1호 어린이집인 ‘서동 어린이집’의 설립자이자 사회복지법인 ‘자성’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필숙(63) 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 씨는 지난달 14일 열린 부산외대 2019학년도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최고령자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씨의 일생은 배움의 연속이었다. 파독 간호사가 되기 싫어 중학교를 중퇴한 이 씨는 검정고시를 통과해 남들보다 2년 일찍 기독교계의 신학 대학에 들어갔다. 같은 대학에서 석사까지 마친 이 씨는 독일로 넘어가 사회복지 공부를 이어갔다. 공부를 마친 이 씨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독일에 남아 박사까지 마친 뒤 교수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한국으로 와 빈민 활동가가 되는 것. 이 씨는 기꺼이 후자를 선택했다. ‘배고프고, 가난하고, 헐벗은 이’를 위한 삶을 살겠노라 다짐한 것이다.


최근 부산외대 최고령 박사 졸업

'이주여성 경제 문제' 논문서 다뤄

노숙인·다문화 가정 울타리 활동


그 길로 아무런 연고도 없던 부산으로 왔다. 그중에서도 당시 공장 노동자들이 모여 살았던 금정구 서동에 자리 잡았다. 이곳에 정착한 이 씨는 보육원부터 만들었다.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높이기 위해 아이를 맡아줄 곳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후 부산의 제1호 어린이집인 ‘서동 어린이집’을 만들었다.

1998년, 어린이집을 운영하던 이 씨에게 또 다른 임무가 주어졌다. IMF 이후 급격히 늘어난 노숙인들의 돌봄 사업을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여성이 남성 노숙인들을 돌보는 것을 두고 주위의 걱정이 많았지만, 이 씨는 꿋꿋이 자신의 사명을 다했다. 이 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성 노숙인들의 보금자리인 ‘희망의집’과 여성 노숙인들의 거처인 ‘내일의집’을 운영하면서 이들과 함께 생활해오고 있다.

어린이집과 노숙인 자활사업을 해오던 이 씨는 다문화 가정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이주여성들이 많은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독일 유학 시절, 언어가 통하지 않았던 설움을 겪었기에 언어 교육의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이 씨였다. 이때 사촌 동생인 김경수 전 부산고검장이 다문화 사업에 써달라며 1억 원을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다. 이 씨는 이 기탁금으로 ‘희망다문화가족공동체’를 꾸려 언어 교육을 시작했다.

이들을 제대로 돕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씨는 다문화공동체를 운영하면서 알게 된 부산외대 다문화교육학과 권오경 교수의 추천으로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됐다. 이 씨는 이주여성이 겪는 경제적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박사 학위 논문을 썼다. 배움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이 씨의 인생 모토. 이 씨는 이주민들이 도시락을 만들어 이를 배달해 수익을 얻도록 하는 자활 사업을 준비 중이다.

이 씨의 공동체에는 어느덧 100명이 넘는 사람이 속해 있다. ‘나라는 작은 한 알의 밀알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이 씨의 바람은 이미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씨는 멈추지 않는다.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그 열매의 씨앗이 퍼져 또 다른 열매를 맺기 위해. 이 씨의 배움과 도전은 계속된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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