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삭·하이선' 연이은 태풍, 남해안 양식어민 근심도 날렸다
한반도 곳곳에 깊은 생채기를 낸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남해안 양식 어민들에겐 뜻밖의 효자가 됐다. 올여름 양식수산물 떼죽음 피해를 유발한 골칫덩이 ‘빈산소수괴(산소 부족 물 덩어리)’가 연이은 태풍에 자취를 감췄다. 막바지 확산 조짐을 보이던 고수온 현상도 덩달아 사라졌다. 반면 우려했던 시설물 피해는 적어 실보다 득이 컸다는 평가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이달 초까지 최고 21m 두께로 관측되던 경남 남해안 일대 빈산소수괴 층이 제9호 태풍 마이삭, 제10호 태풍 하이선 통과 이후 소멸한 것으로 나타났다. 빈산소수괴 피해가 집중된 자란만과 고성만 해역의 경우, 저층 용존산소(DO) 농도가 1L당 4.66~6.46mg으로 정상 수준을 되찾았다.
빈산소수괴는 물속에 녹아있는 산소량이 3mg/L 미만인 물 덩어리로 양식수산물의 질식사를 유발한다. 긴 장마로 바다 표면과 저층의 염분 농도 차가 커졌고, 그 틈에 이 덩어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7월 말부터 세력을 불린 빈산소수괴는 최근까지 경남 앞바다 양식장 1225ha를 집어삼켰다. 축구경기장 2000개를 합친 면적으로 도 내 전체 양식장(5702ha)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굴, 멍게, 홍합, 가리비, 미더덕 등 대부분의 양식물에서 떼죽음 현상이 나타났는데, 공식 집계된 피해 규모만 941건 75억 6800만 원이다. 특히 멍게 양식장은 전체 입식량의 절반 가량이 흔적도 없이 녹아버린 데다, 어미와 새끼 멍게까지 폐사해 이로 인해 후유증으로 최소 2~3년 생산 차질이 불가피해 졌다.
매년 빈산소수괴로 크고 작은 폐사가 발생하지만, 올해처럼 광범위하고 장기간 유지돼 피해를 남기는 것은 처음이라는 게 어민들 주장이다. 빈산소수괴는 보통 태풍이 지나가며 바닷물을 섞어 주면 희석돼 사라진다. 하지만 올해는 지난달까지 이렇다 할 태풍이 없었다. 제5호 태풍 장미가 유일하게 남해안에 영향을 미쳤지만, 소형인 데다, 세력이 약해 너울성 파도를 일으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때문에 어민들은 이번 태풍에 내심 기대를 걸었다. 빈산소수괴 소멸을 앞당기는 촉매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다행히 현재까진 긍정적이다. 기대효과는 충족됐고 우려했던 양식시설물 피해는 적었다. 양식장이 밀집한 통영과 거제, 고성 3개 시군을 통틀어 신고된 피해가 10건에 불과하다.
통영시 관계자는 “내파성 가두리 보급 등 시설 현대화로 풍랑에 의한 피해는 크게 줄었다. 이번에도 노후 가두리가 일부 파손돼 수조에 든 양식 물고기가 유실됐거나 수하연이 탈락된 정도로 경미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서서히 고개를 들던 고수온도 기세가 꺾였다. 수과원에 따르면 마이삭 통과 이후, 대부분의 고수온 특보 발령 해역 수온이 28℃ 이하로 떨어졌다. 이에 수과원은 지난 4일 고수온 관련 모든 특보를 해제했다.
양식업계 관계자는 “드물긴 해도 이로운 태풍이 더러 있었다. 2004년 상륙한 태풍 ‘메기’도 전국 각지에 큰 피해를 남겼지만, 바닷물을 휘저어 빈산소수괴를 사라지게 하는 효자 노릇을 했다. 이번 태풍도 그런 사례”라고 했다.
이제 남은 건 양식 어류에 치명적인 ‘붉은 재앙’ 적조다. 수온과 향후 기상을 고려할 때 가을 적조 출현을 배제할 수 없다. 경남 남해안 수온은 24도 안팎으로 적조 발생에 최적이다. 적조 역시 변수는 태풍이다. 당장 제11호 태풍 노을, 제12호 태풍 돌핀 추가 발생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통상 적조 발생 초기, 폭우를 동반한 태풍은 적조 확산을 부추기는 촉매가 된다. 반면 바람이 강한 태풍은 적조의 확산을 억제한다. 너울성 파도가 수중의 적조 생물을 넓게 퍼트려 밀도를 낮추고 세력을 와해시킨다.
수과원은 “이달 중순까지 조석주기나 기상 조건에 따라 빈산소수괴가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 수온 변동성도 여전하다”면서 “피해 예방을 위해 당분간 수하식 양식장은 수하연의 길이를 짧게 하고, 어류 양식장은 밀식 방지와 급이랑 조절에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