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풍, 고층 아파트 유리창에 돌 던진 ‘투석기’였다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빌딩풍(부산일보 9월 4일 자 1면 등 보도)이 지난 태풍 때 자갈 등 돌멩이를 위로 솟구쳐 올려 아파트 유리창을 파손시키는 ‘투석기’ 역할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빌딩풍에 의한 비산물 피해는 예상됐지만, 연구팀에 의해 실제 관련 현상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0일 정부 주관의 전국 첫 빌딩풍 연구를 진행 중인 부산대학교 권순철(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태풍 상륙 때 해변이나 바닥의 자갈과 돌멩이 등이 빌딩풍 영향으로 건물 위로 솟구쳐 오른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이론으로 제기됐던 비산물 피해 사실이 재차 확인된 셈”이라고 밝혔다.
태풍 풍속 배로 몰아친 빌딩풍에
바닥에 깔린 자갈 솟구쳐 올라
고층 건물 중·저층 유리창 박살
부산대 연구팀 관련현상 첫 확인
바람구멍 공법 적극 적용 주장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잇따라 덮치면서 부산 해운대구의 달맞이고개 한 고층 건물 유리창 수십 장이 박살 났다. 엘시티 외벽 유리가 파손되고 해안가 호텔 외벽 타일이 바닥으로 와르르 쏟아지기도 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지난 7일 해운대 앞바다에 분 강풍은 초속 23.4m로 기록됐다. 반면 고층 빌딩이 즐비한 마린시티 일대는 초속 약 30m, 101층 높이 엘시티 주변 지점 최대 초속은 약 50m에 달했다. 빌딩풍 영향으로 각 지점의 최대 풍속이 해상과 비교해 30%에서 최대 120%에 달했다.
아파트 중저층에서 박살 난 유리창 상당수는 돌멩이 등 자갈에 의한 피해인 것으로 파악된다. 한 피해 입주민은 “당일 새벽에 ‘툭툭’ 거리며 작은 돌이 유리창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한순간 유리창이 와장창 깨졌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또 다른 주민은 “엘시티 건립 전에는 이런 현상이 없었다. 건립 뒤부터 모래가 섞인 바람이 강하게 불어 엘시티와 인근 아파트 안으로 모래가 들어오곤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해당 아파트 일대 풍속은 초속 30~40m가량. 초속 20m의 경우 성인 기준 몸을 앞으로 기울여야 버틸 수 있으며, 초속 30m 때는 몸이 강하게 흔들리며 중심을 잡기가 힘들어진다. 35m가 넘어갈 경우 바람에 휩쓸려 넘어지기 십상이다.
연구팀 권순철 교수는 “유리창 파손 피해 대부분은 비산물에 의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아파트 인근 축대 주변 또는 해변 자갈과 돌멩이가 위로 솟구쳐 오르며 유리창을 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빌딩풍 효과로 돌이 위로 솟구쳐 오른다는 게 확인되면서 ‘모래 돌풍’ 피해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태풍이 아니더라도 해변 일대는 주기적으로 강한 바람이 불어 예기치 못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상기후에 따른 자연재난에 대비해 빌딩풍을 막을 ‘바람구멍(풍혈) 공법’ 등도 고층 건물 건축 때 적극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현재 해운대 초고층 빌딩 대부분에는 이 공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해운대에는 50층 이상 초고층 건물이 25동이나 있어, 전국에서 초고층 건물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영국과 일본 등의 경우 빌딩풍의 위험성을 일찌감치 알아채 건물에 풍혈 공법을 이미 적용하고 있다. 권 교수는 “빌딩풍이 발생할 경우 건물 중간 부분이 가장 취약하다. 상승풍과 하강풍, 회오리 등 영향이 생기기 때문인데, 풍혈로 바람구멍을 내 주면 건물 피해는 확실히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초고층 건물 건축 허가 때 환경영향평가에 빌딩풍 영향 기준을 추가하는 등 관련 대책 입법화에 나섰다. 하 의원은 “빌딩풍을 재난으로 규정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며, 재난으로 규정될 경우 국가 차원의 빌딩풍 피해 대책 마련 등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 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