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숙의 매스토피아] 그림으로 보는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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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학교 응용수학과 교수

설마 하면서도 코로나가 없었던 생활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을 느낀다. 방학이 되면 다음 학기의 에너지 충전과 수학자로서 부족한 역사 공부를 위해 세계 곳곳을 다녔는데, 이제 그 소박한 여행을 못 해 아쉽다. 유럽 여행 때 “조상들이 남긴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먹고살 수 있는 그 후손들이 부럽다”고 딸과 나누었던 대화가 그립다. 그런 이유로 유럽에 남아 있는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수학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이전의 문명에서는 자연을 무질서하고 알 수 없으며 변덕스럽고 공포를 안겨주는 대상으로,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신의 영역이라고 여겼다. 기원전 600년경부터 새로운 태도로 자연을 대하는 지식인들이 생겨났다. 그들에게서 ‘자연은 사람의 생각으로 재단하지 못하는 신비로운 대상’이라는 믿음을 몰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수학이었다. 수학은 사람들에게 자연을 이성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바로 이 인간 중심의 자연관이 인류 역사 속에서 수학 연구가 계속해서 활발히 이루어지게 하였다. 이성적 지식 추구 학문인 수학과 인간의 감성 표현인 미술이 만난 것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들이 원근법을 사용하고 관련 이론을 연구하면서부터였다.


자연을 이성의 눈으로 보게 한 수학

미술 작품에도 기하학 원리 활용돼

‘미’의 차원에서 예술과 공통점 많아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양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우수한 고대 그리스 문헌들이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학문의 가치가 다시 살아났고 자연스레 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수학 자체 이론보다는 다른 학문과의 결합을 중요시하는 실용적 측면이 존중됨으로써 체계적인 관찰과 실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경험 위주의 인간 중심 문화가 확산했다. 이러한 시대에 살았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벽화 ‘최후의 만찬’은 원근법이라는 기하학적 원리가 적용돼 그려졌다는 점에서도 유명하다.

미술에서 원근법은 3차원 세계를 2차원 화폭에 담아 가까이 있는 것은 크고 밝게, 멀리 있는 것은 작고 어둡게 표현토록 했다. 풍경의 3차원 기하학적 구조를 눈으로 인식한 풍경과 일치하도록 한 것이다. 그림은 신 중심이면서 화려하지 않고 평면적이었던 중세 미술을 탈피해 입체감을 갖게 됐고, 그림 속 사람들 표정이나 몸짓이 더욱 생동감 있게 표현됐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이 그림에서 원근법을 활용하고 연구한 결과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벗어난 새로운 기하학인 사영기하학을 탄생시키고 발전케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실제로 원근법을 적용하여 평행한 철로를 그리면 철로의 두 연장선이 언젠가는 소실점에서 만난다.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안에 들어 있는 경사선들을 연장하면 모두 예수의 이마 위의 한 점에서 만난다.

이탈리아에서 체계화된 원근법은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유럽 전역에서 사용됐다. 다 빈치가 원근법을 사용하여 그린 작품들 중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수태고지’와 ‘최후의 만찬’이며, 17세기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도 빛의 미묘한 변화를 활용한 원근법을 통해 풍성한 공간감을 주는,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그 외에도 원근법으로 유명한 미술 작품들로 ‘성 삼위일체’, ‘애도’, ‘성 프란체스코의 규율의 승인’ 등이 있으며, 화가 교육을 위해 알베르티가 원근법을 소개한 유명한 책 〈회화론〉도 있다.

오늘은 원근법만 다루었지만, 세계의 많은 화가들은 작품 속에 닮음, 패턴, 반복, 프랙털, 테셜레이션 등 수학 개념을 사용하였고, 피보나치 수열과 황금비율이라는 수학 원리도 활용하여 유명한 작품들을 남겼는데 이것은 다음에 소개하기로 한다. 수학의 추상적 개념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복잡한 함수를 그래프로 나타내는 것 등의 시각화 작업은 수학적 개념, 원리, 법칙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만들고, 숨어있는 원리와 정보를 찾아내는 실마리를 주며, 나아가 다른 학문으로의 응용과 일반화를 찾아내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수학의 개념과 원리를 시각화하여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이 수학 교육에서 큰 의미가 있듯이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수학 원리를 탐구해 보는 것 또한 수학의 가치와 유용성을 높이는 일에 크게 기여한다.

영국 수학자 고드프리 하디는 “이 세상에 추한 수학을 위한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며 수학의 ‘미’를 강조했다. 그는 또 “화가나 시인처럼 수학자는 패턴을 만드는 사람이다. 수학자가 만든 패턴은 자신보다 영속적이고, 이는 그 패턴이 아이디어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수학자의 패턴은 화가나 시인의 패턴처럼 아름다워야 한다. 색채나 단어처럼 아이디어는 조화로운 방식으로 잘 들어맞아야 한다”며 예술과 수학의 공통점을 설명했다. 이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적인 수학은 우리 일상생활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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