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삼의 타초경사(打草驚蛇)] 등구에서 거북이를 생각하다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특임교수
사상에서 김해 가는 경전철을 타면 공항역을 지나 등구역에 이른다. 내려 봐야 볼 건 없다. 공장들만 빼곡할 뿐이다. 그런데 ‘등구(登龜)’라는 지명을 곰곰 헤아리면, 거북이가 올라와 알을 낳던 모래톱이란 뜻이다. 낙동강 하구를 지나 물길 따라 오르던 어미 거북이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휘영청 보름달 아래 알을 낳던 모래 언덕이었다는 말이다. 이 물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구포가 있고 왼쪽으로 타고 오르면 김해 구지봉에 닿으니 이런 상념이 말놀이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 등구에서 구포로, 급기야 구지봉에 이르면 ‘거북아 거북아, 대가리를 내놓아라’라는 구지가(龜旨歌)는 먼 옛날의 설화가 아니라 낙동강이 막히며 사라질 뭍 생명의 운명을 예견한 신탁이 된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기수 지역은 생물들이 많은 곳.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은 목숨을 해쳤다.
낙동강이 둑으로 막힌 지 40여 년
우리는 너무 많은 목숨을 해쳤다
하굿둑 개방하자 뭇 생명들 꿈틀꿈틀
자연 거스르면 살아남지 못하는 법
100년 전만 해도 김해평야는 얕은 바다였다. 얕은 땅 위엔 갈대가 숲을 이뤘고 그 사이로 물길을 내어 나룻배들이 오갔다(이학규는 실학자 정약용과 같은 시대 사람인데 김해로 유배를 왔다. 그는 당시 김해읍성에서 녹산 섬까지 갈대숲을 배로 오간 시를 여러 편 남겼다). 물속에는 붕어, 잉어, 장어며 가물치, 메기가 버글거렸고, 갈숲에는 온갖 새들이 알을 낳고 살았다. 꼭 지금쯤 무서리 하얗게 내리는 새벽하늘에는 V자, W자로 편대를 이룬 기러기며 청둥오리가 새까맣게 공중을 메웠다.
그 생명의 물, 낙동강을 1983년 둑으로 가로막기 시작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의 실세로,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허 모 씨가 부산시청에 왔다가 “을숙도 철새를 보호해 달라”는 주민들 건의에 “철새만 보고 살 끼가!” 한 마디로 입을 봉했다. 강이 막히자 말도 막혔다. 아니 말문이 막히자 강물이 막혔다.
동양의 홍수 설화는 물과 생명의 관계를 논한다. 황하의 홍수를 잡는 데 성공한 이가 우임금인데, 그는 물길을 터서 물을 잡았다. 맹자는 ‘우임금이 아홉 강을 뚫었다’라며 그 노고를 기렸다. 토목 기술이 발달하자 백규라는 정치가는 둑을 쌓아 홍수를 잡았다. 맹자는 우임금 것은 물을 터서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지만 백규의 것은 상류로 범람하게 하여 사람을 죽이는 재앙이라고 평했다.
그런데 맹자의 비평이 겨누는 핵심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물은 말의 은유다. 우임금이 ‘아홉 강을 뚫었다’는 것은 말이 활발하게 통하였음을 가리킨다. 반면 백규가 ‘둑을 만들어 물을 막았다’는 것은 남의 말은 막고 제 말만 하는 독백을 뜻한다. 맹자는 물을 이야기하면서 실은 말을 논하고, 토목을 이야기하면서 정치를 설한 셈이다. ‘소통이냐, 독백이냐’가 비평의 주제다.
낙동강이 막히고 사람들 입도 봉하자 숱한 생명이 죽었다. 그 세월이 근 40년이다. 사람들이 말문을 터 둑을 열자고 고함을 지르자 올해 들어 하굿둑 문이 빼꼼 열렸다. 그러자 지난봄엔 짠물과 민물을 오가는 뱀장어가 더러 잡히더니 올가을엔 연어가 강의 상류에서 여러 마리 잡혔다. 저 위 밀양 언저리에서도 포착되었다니 옛 애인을 만난 듯 나는 잠을 설쳤다.
그 옛날 낙동강으로 접어든 연어는 등구를 지나 대동의 신산서원 앞을 거슬러 올라갔을 것이다. 드디어 김해 인제대학 앞 ‘어방동’ 골짜기까지 오른 연어는 질펀하게 알을 낳고, 사람들은 그물로 잡아들이며 어방 축제를 벌였으리라. 어디 이 강뿐일까. 이름을 놓고 헤아리면 서쪽으로는 진해 가는 길의 ‘웅천’이며, 북쪽으로는 양산 서창의 ‘웅상’이 다들 곰이 살았기에 웅(熊) 자로 이름을 지었을 테다. 이즈음 웅천과 웅상 주변에도 연어가 떼를 지어 올라왔을 것이다. 초승달이 뜬 밤이면 곰들이 온 강물을 철벅거리고, 연어들 울음소리는 찬바람에 흔들렸으리라.
늦가을 석양 비치는 등구역에서 눈을 감으면, 김해 신어산이며 양산의 천성산 동굴에는 곰들이 사람 되려고 쑥과 마늘을 먹고서 잠을 들이고 있다. 허왕후가 용원 앞바다에 배를 대어 뭍에 오르시기 오래전부터 이 땅의 사람들은 제 힘껏 땅을 일구고, 갈숲 속 물고기를 잡아 넉넉하게 살았다. 어느 날 물길이 막히자 갈밭은 파밭이 되었다가 아파트 숲이 되었다. 갈대를 때서 소금 굽던 자리는 고작 ‘염막’이란 이름만 남겼고, 거북이 오르던 둔덕은 공장 터가 되어 등구라는 이름만 남았다.
그런데 참 묘한 일이다. 하굿둑을 열자 뱀장어가 올라오고 연어조차 먼 강에서 잡히는 오늘, 둑을 쌓아서 여러 강의 허리를 끊었던 이명박 씨가 다시 구속된 것은. 옛말에 ‘순천자존, 역천자망(順天者存, 逆天者亡)’이라고 하였다.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자는 살아남지만, 거스르는 자는 망하리라’라는 저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