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을 마구 쓰고 버려도 지구가 다 받아 준다는 환상 버려야”

이현정 기자 edu@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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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교육, 부산서 시작하자] 3. 대량생산·소비 위기

대량생산은 대량소비를 낳고, 이는 곧 대량폐기로 이어진다. 재활용센터에 모아지는 쓰레기들의 실제 재활용 비율 또한 턱없이 낮다. 부산일보DB 대량생산은 대량소비를 낳고, 이는 곧 대량폐기로 이어진다. 재활용센터에 모아지는 쓰레기들의 실제 재활용 비율 또한 턱없이 낮다. 부산일보DB

올 6월 고인이 된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지금의 기후위기는 단순한 자원과 에너지 낭비의 결과가 아닌, 세계관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근 독일의 청소년들 사이에서 ‘소비 수치심’, ‘소비 거부감’이 크게 번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풍요에 중독돼 살아가는, 소비를 미덕으로 여겨온 삶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지 한국 사회도 물음표를 던져봐야 할 시점이다. ‘이 같은 무지막지한 소비는, 내가 원한 것이었을까 사회로부터 강요당한 것이었을까?’ 기후위기와 코로나가 지금 우리에게, 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생산과 소비 ‘과잉’

지구는 ‘생존의 기로’에서 신음

코로나19로 되레 ‘온실가스 감소’

자연 파괴 초래 자본주의서 탈피

‘생태’ 중심 경제활동으로 전환해야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 언제까지?

자전거가 굴러가기 위해 페달을 끊임없이 밟아야 하는 것처럼, ‘과잉생산’과 ‘소비’는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하는 양쪽 페달 역할을 해왔다. 산업혁명 이후 지난 100년 간 더 많이 만들어내고,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버리는 동안 지구는 생존의 기로에 서게 됐고, 사람 또한 버려지게 됐다. ‘더 싸게, 더 싸게’를 외친 탓에 방글라데시, 베트남, 인도 등의 나라에서는 열 세 살의 어린 소녀가 시급 160원을 받고 하루 16시간을 재봉틀 앞 먼지 구덩이 속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렇게 착취로 만들어진 값싼 옷들은 대부분 몇 년 내 다시 버려진다. 환경부 폐기물 발생 현황을 보면, 2013년 하루 평균 138.8t이던 의류 폐기물은 2017년 193.2t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화학 섬유는 석유가 주원료인데, 한 해 폴리에스테르를 생산하는 데에만 석유 110억L 이상이 들어간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에도 4인 가족이 일주일동안 쓰는 물의 양인 7000L 정도가 쓰인다.

그나마 입고 버려지는 건 다행이다. 입지도 않고 버려지는 옷들은 더 많다. 일반 의류 기업들은 생산한 옷의 30%를 판매하는 것이 목표라고 할 정도니, 생산할 때부터 반 이상은 이미 폐기될 운명인 셈이다.

다른 전자제품에 비해 교체 주기가 2.7년으로 턱없이 짧은 스마트폰 하나를 만드는 데도 많은 광물이 쓰인다. 광물 채취 과정에서의 노동 착취, 분쟁, 인권 유린은 물론이고 24시간 데이터센터 작동을 위해서도 엄청난 에너지가 든다.

이 밖에도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불필요한 생산과 소비는 차고 넘친다.

15일 부산 인디고서원이 마련한 ‘주제와 변주’ 강연에 나선 '착한 소비는 없다'의 저자 최원형 작가는 “현대인들은 늘 자원은 화수분처럼 무한하게 나오며 우리가 쓰고 버린 쓰레기와 온실가스를 지구가 영원히 포용해줄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면서 “지난 50년간 경작지의 3분의 1이 황폐화됐고 열대림의 3분의 1이 사라졌고 마실 물의 4분의 1이 사라졌다. 언제까지 지구가 버텨줄 것이라고 생각하나”고 일갈했다. 대량생산이 대량소비를 이끌어내고 대량소비는 또 대량폐기를 만드는 이 연결고리를 끊어내지 않고서는 지구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최 작가는 “몇 년 전 호주 산불이 크게 났을 때 6개월 지나도록 이어지다 결국 뭐 때문에 꺼진 줄 아느냐. 비가 와서 꺼졌다.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발전한 21세기를 살고 있다 해도 비가 와야 끌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자연 앞에 겸허해져야 함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코로나가 던지는 물음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온실가스 배출량 5% 감소’를 이뤄낸 코로나 사태는 ‘대량생산’과 ‘소비’에 대한 담론도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다. 석학 6명의 생각을 담은 책 ‘코로나 사피엔스’에서 정관용 시사평론가는 “자본주의 경제라는 게 남이 하는 걸 따라 하게끔 부추기면서 자꾸 소비를 촉진시키는, 거품 속에 지탱해온 경제”라고 했는데,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제 대량 소비로 끊임없이 자연을 파괴하는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할 때”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인정 투쟁에서 벗어나 나만의 ‘지혜로운 만족감’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충고했다.

생태학자인 최재천 교수는 “코로나를 겪으며 오히려 그동안 꾸준히 얘기해온 자연을 건드리지 않는 게 더 좋다는 계산을 이제 드디어 사람들이 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면서 “이제 생태를 경제활동의 중심에 둔 생태기업이 생겨나고 소비자는 그런 기업만 선택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 자원을 재활용한 업사이클링 브랜드인 프라이탁 방수포 가방이 인기를 끌고, 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많이 팔려도 추가생산을 하지 않는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가 인기를 끌고 있다. 파타고니아는 새 옷을 사기보다 있는 옷을 오래 입기를 권장하는데, 이 회사 홈페이지에는 제품을 수선할 수 있는 40여 가지 방법이 4개 언어로 소개돼 있다.

이현정 기자 edu@busan.com


이현정 기자 edu@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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