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학벌주의와 위기의 대학 교육
김영일 신라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나는 ‘대학민국 고졸’이다.” 얼마 전부터 〈부산일보〉 디지털 청년 기획으로 연재되고 있는 기사의 제목이다. “대한민국 청소년은 매일 전쟁터에서 산다. 목표는 ‘좋은 대학’. 거기서 낙오한 아이들은 요즘 말로 ‘루저(패배자)’가 된다”로 시작하는 이 연재물은 대학을 포기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앞길을 개척해 나가는 청년들의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의 벽을 지적하고 있다. 학령인구의 급감으로 한 명의 학생이라도 더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라야 하는 대학 구성원의 한 사람이지만, 자신의 꿈을 찾아 과감히 나선 젊은이들에게 큰 박수와 격려를 보낸다.
‘대학민국 고졸’ 연재 보며 자성
현실은 “비정상”이란 인식 만연
정원 채우기 급급 지역대학 위기
지역사회 붕괴로 이어질까 걱정
학벌주의 있는 한 입시 위주 교육
교육체계 혁신·사회 인식 바꿔야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이러한 연재물이 기획될 정도로 왜곡된 현실으로 자성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굳이 대학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면,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한시라도 먼저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인가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연재물에 등장하는 청년들이 공통으로 겪어야 했던 갈등 역시 대학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하는 주위의 시선이었다.
그렇다면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은 갈등과 걱정이 없을까? 불행하게도 대학생들은 이 물음에 긍정의 답을 할 수 없다. 특히 지역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취업을 위한 또 다른 전쟁터에서 힘겨운 경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다녀도 취업 전선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은 대학을 취업 학원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대학 교육이 처한 위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해 많은 대학이 입학정원 채우기에 크나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지역대학은 존립 자체는 물론 지역사회까지 붕괴를 걱정하는 심각한 위기에 내몰려 있다. 좋은 일자리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서 학생들이 수도권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진단이 나온 지 오래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인재 할당제 등 여러 방안이 제시되었지만, 여전히 문제해결에는 역부족이다. 더욱더 근본적인 생각의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먼저 대학(고등) 교육에 대한 정부의 투자가 더 많아야 한다. 올 9월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 2020’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학 교육에 대한 공교육비 정부 재원의 비율(2017년 기준)은 0.6%이지만, OECD 평균은 1%로 나타났다. 특히 공교육비 중 민간 대비 정부투자의 상대적 비율은 초중등 교육의 경우 OECD 평균과 거의 유사하지만, 대학교육은 38.1%로 OECD 평균 68.2%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의 공교육 재정이 초·중등교육에 집중된 반면, 대학교육은 민간에 크게 의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물론 많은 OECD국가의 대학 교육이 국공립 중심이고, 우리의 경우 85% 이상을 사립대학이 담당하는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심각한 사회문제를 초래하는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재정 투자가 빈약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부의 대학 교육 투자 확대와 관련해 좀 더 숙고할 측면이 있다. 지역대학의 위기는 대학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타당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는 2019년을 기준으로 4년제 대학 23.7명, 전문대학 35.9명으로 모두 OECD 평균(15.6명)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교육의 질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교육 여건이지만, 정부 차원의 재정투자 확대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교육에 대한 혁신적 사고의 전환이다. 몇 년 전부터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 희망을 미리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정이 도입되었지만, 학벌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우며, 고등학교 졸업만으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것은 더욱더 힘든 현실이다. 학벌이 아닌 자신의 꿈과 재능 실현을 위해 진로를 결정하고, 그에 따라 고교 졸업 후 바로 사회로 진출하거나 혹은 필요한 역량을 쌓기 위해 대학의 전공을 선택하도록 이끌어 주는 교육체계와 사고의 변화 없이는, 청년들이 “나는 ‘대학민국’ 고졸”이라고 과감하게 주장할 수 있는 사회로의 진전은 불가능할 것이다.
대학의 위기는 대학의 수나 입학정원의 감소와 같은 대학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초등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전 교육체계의 혁신적 변화 없이는 해소될 수 없는 사회문제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 전체가 함께 변화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