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수록 +] 빵이 부푸는 것은 효모의 장난
이태호의 미생물 이야기(24)
지구촌의 많은 나라가 빵을 주식으로 한다. 쌀이 주식인 우리도 빵의 소비는 만만찮다. 간편성, 기호성이 증가한 탓일까. 아니면 입맛이 서양식으로 변한 것일까. 우리 국민 1인당 밀가루 소비는 연간 34kg으로 늘어나고, 쌀은 59kg으로 10년 전보다 15kg이나 감소했단다.
빵의 기원은 BC 4000년경 이집트 나일강 유역으로 추측한다. 당시 빵의 발효는 환경에서 묻어 들어온 미생물의 자연발효에 의한 것이었다. 160여 년 전 파스퇴르가 효모를 발견해 순수배양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오늘날의 발효 빵이 정형화됐다. 우리나라에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서양 떡'이라는 이름으로 퍼졌다는 설과, 이미 19세기 유럽에서 온 신부의 가방 속에 빵이 들어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유래는 분명치 않다.
먼저 꼭 알고 가야 할 게 있다. 빵을 부풀게 하는 미생물은 반드시 알코올 발효능이 강해야 한다는 것. 가장 우수하고 많이 쓰이는 것이 Saccharomyces cerevisiae이다. 이게 바로 모든 술 제조에 예외 없이 사용되는 '알코올발효 효모'이며, 이를 달리 '빵 효모' 혹은 '이스트'(yeast)라고도 부르며 빵을 부풀리는 데 동시에 쓴다.
그렇다면 왜 빵은 이 효모에 의해 부푸는 걸까. 여기에 과학이 숨어있다. 알코올발효 효모는 공기(산소)가 있으나 없으나 자라는 통성혐기성균이다. 공기가 없는 상태에서는 이산화탄소(탄산가스)를 내놓고 에탄올(술)을 만드는 성질이 있다. 술독에서 뽀글거리면서 나오는 기포가 바로 탄산가스로, 이 탄산가스가 밀가루 반죽 속에 갇혀 빵을 부풀게 하는 것이다. 이른바 알코올 발효가 엉뚱하게도 밀가루 반죽 속에서 일어나는 셈이다. 이런 기막힌 효모의 사역(부림)을 감탄한다면 오버일까.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밀가루 적당량에 한 꼬집 정도의 시판 이스트(효모의 뜻)를 넣고 반죽한다. 건조함을 방지하기 위해 물에 적신 헝겊으로 덮은 뒤 따듯한 곳에 놓아둔다. 첨가하는 이스트의 양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양에 따라 발효시간에 다소 차이가 날뿐이다. 이때 이스트의 먹이로 설탕을 약간 넣어주면 생육이 왕성해진다. 꼭 설탕을 넣지 않아도 밀가루 속에 소량 들어있는 포도당이 있어 문제는 없다. 가끔 밀가루(빵) 개량제라는 이스트 푸드(yeast food)를 넣기도 한다. 대부분의 빵은 이런 효모의 발효법에 의해 만들어진다. 생성된 알코올(술)은 굽는 과정에서 날아가 버리지만 약간의 술 냄새는 남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탄산가스를 잘 가두어 두려면 반죽이 차져야 하는데, 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밀가루 단백질 글루텐이다. 글루텐 함량이 높으면 반죽의 점성이 강해지고 탄산가스의 포집성이 좋아진다. 그래서 빵 제조에는 보통 글루텐 함량이 높은 강력분을 쓴다.
한때 글루텐이 몸에 나쁘다는 낭설 때문에 '글루텐프리(free, 없다는 뜻)빵'이 유행한 적이 있다. 글루텐을 제거한 밀가루로 만들었다. 비싼 돈 들여 수입한 제품이다. 이런 빵은 잘 부풀지 않고 납작해 질이 떨어지는데도 이를 고집하는 부류도 있(었)다. 이도 한때의 유행으로 지나갔다.
술빵이라는 게 있다. 빵을 부풀릴 때 이스트 대신 막걸리를 넣어주는 방법이다. 막걸리 속의 살아있는 효모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그래서 반드시 살균하지 않은 생탁을 넣어야 한다. 빵을 찌거나 구울 때 알코올 성분은 증발하고 막걸리 특유의 냄새는 조금 남는다. 이때 공존하는 유산균이 빵의 풍미나 질에 다소 영향을 미칠 개연성은 있다. 이스트보다 빵의 질이 좋아지는 것 같지는 않다.
빵을 부풀리는 데는 다른 방법도 있다. 중조, 중탄산소다, 베이킹파우더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화학약품을 쓰는 것이다. 이는 반죽일 때는 부풀지 않다가 굽거나 찔 때 열에 의해 중조가 분해되어 탄산가스를 발생한다. 빵의 질이 조금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 선호되는 방법은 아니다. 화학약품을 쓴다고 인체에 나쁘지는 않다. 속 쓰리고 신트림이 날 때 위산 중화제로 먹기도 했으니까.
자주는 아니지만 계란 흰자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카스텔라나 케이크 같은 특수한 빵을 제조할 때 쓴다. 난백(卵白)에 많은 단백질의 기포 포집성(包集性)을 이용한 것이다. 단백질은 표면장력을 증가시켜 기포를 가두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흰자만 따로 분리하여 강하게 저어주면 전부 거품으로 변한다. 노른자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난황(卵黃)의 지질 성분이 표면 장력을 감소시켜 거품을 없애는 작용이 있어서다. 이렇게 만든 빵은 기포가 아주 미세하여 부드럽고 식감이 좋다. 흰자의 기포는 잘 깨지기 때문에 여러 형태의 빵으로 성형할 수 없는 결점이 있어 보편성은 넓지 않다.
시중에는 천연효모, 자연발효, 천연발효 어쩌고 하면서 선전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다름 아닌 천연을 좋아하는 소비자의 구미에 맞춘 것으로, 이스트 대신 자연에 있는 야생(野生) 효모를 이용하는 옛날 방식이다. 이른바 복고풍으로 알코올발효 효모가 묻어있을 법한 포도, 사과, 무화과 등의 과일이나 누룩 등을 밀가루 반죽이나 액상 배지에 넣어 일정 시간 배양한 후 이스트 대신 빵 발효에 사용하는 것이다. 이때 이들 재료에 알코올 발효능이 있는 효모가 없거나 적으면 실패로 연결된다. 참고로 과일 등이 상해 술 냄새가 나는 것은 거기에 붙어있던 효모가 알코올 발효를 일으킨 것이다.
이런 방법은 쉽지가 않아 조작을 반복하다 일단 성공하면 일부 남겼다가 계대(繼代) 배양하여 반죽 때마다 조금씩 떼어내 쓴다. 제대로 만들려면 상당한 기술과 노력,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만든 발효종을 초종(初種, starter)이라 하며 '천연 발효종', '르뱅', '사워도우'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포장한다. 직접 만들기도 하고 전문 회사에서 사서 쓰기도 한다. 가격이 만만찮지만 구매해 쓰는 게 실패할 확률은 적다.
이런 발효종에는 효모뿐만 아니라 유산균 등 여러 잡다한 미생물이 복잡하게 관여한다. 이때 어떤 종류의 미생물이 얼마나 자랐는지를 알지 못해 최종 빵의 품질이 어떻게 나올지는 가늠이 어렵다. 예찬론자들은 공존하는 유산균 등에 의해 신맛 등이 동반되어 풍미가 이스트 빵보다 좋아진다고 평가하고 있으나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품질관리의 어려움(제품의 균일성), 유해 균주 오염, 제품 다양성의 한계, 발효설비, 관리, 인력 등의 비용 발생이 크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어서다. 또 빵효모를 천연효모, 인공 효모로 이분화하여 서로 좋고 나쁨으로 나누는 것도 옳지 않다. 효모에 천연이 있고 인공이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혹여 그들은 야생을 천연으로, 이스트를 인공으로 부르면서 신비롭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다음은 '유용미생물 길들이기와 육종'에 대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