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수록 +] '대장균'을 길들여 '인슐린'을 만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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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의 미생물 이야기(25)

미생물에 대한 이미지는 별로 좋지가 않다. 얼핏 세균, 곰팡이, 바이러스는 박멸의 대상쯤으로 인식한다. 그동안 흑사병, 콜레라, 장티푸스, 홍역, 스페인 독감 등 무수한 악성 질병이 우리를 많이도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때를 당해보지 않은 우리에게도 이번 ‘코로나’가 결정판이 됐다. 그렇다면 미생물은 꼭 없애야만 하는 대상일까? 아니다. 잘만 다스리면 피해보다는 우리에게 주는 혜택이 더 많다가 정답이다.


지구상의 미생물은 유기물(사체)을 자연으로 회귀시키는 물질순환, 각종 발효에 의한 유용물질의 획득, 환경정화와 수질개선, 건강증진(프로바이오틱스), 발효식품, 각종 의약품생산 등에 사용되며 그 혜택은 언급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크다.


그럼 우리의 일상에서 자주 이용하는 미생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누룩·메주곰팡이, 빵효모, 항생제 등 각종 약품 생산균, 요구르트를 만드는 유산균, 초산균 등 그 종류는 수없이 많다. 우리는 미생물의 존재를 모를 때부터 이를 이용해왔다. 이 중에는 자연에서 찾아낸 것도 있고 환경에서 우연으로 착생한 것도 있다. 착생은 우연과 생활의 지혜였고, 일부러 찾아낸 것은 과학과 노력의 결실이었다.


이렇게 자연에서 골라낸 미생물(야생)은 우리의 목적에 부합하고 성에 찰 정도로 우수했을까? 간혹 성에 차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아 교묘한 방법으로 길들여 사용해 왔다. 일종의 개량이고 육종이다. 그 내용은 복잡하고 어렵지만 이하 간단하게 설명한다. 방법에는 '환경과 먹이', '물리·화학적 처리', '기능 제어', '변이 유도', '유전자 조작' 등이 있다.


미생물의 생육에는 온도, 습도, 산소, 산도 등이 매우 중요하다. 미생물을 키울 때 이런 환경에 변화를 주면 증식속도 및 물질의 생산능이 크게 달라진다. 가령 메주나 누룩을 만들 때 키우는 온도의 높낮이에 따라 단백질분해효소의 생산량은 크게 변한다. 청국장 발효를 하다가 온도를 낮춰주면 불쾌한 냄새가 줄어들고, 알코올발효에 공기가 들어가면 술이 되지 않는 등 생육환경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미생물의 배지 조성(먹이)을 바꾸는 방법이다. 가령 생육에 필요한 어떤 필수물질을 결핍 또는 고갈시키면 생육특성이 달라지고 어떤 물질의 생산능이 대폭 증가하거나 없어진다는 거. 또 어떤 특수물질을 첨가하면 미생물의 성질이 바뀌고 형태까지도 변하게 된다. 예로, MSG의 미생물 발효에 비오틴(biotin)이라는 비타민을 과량으로 첨가하면, 글루탐산을 세포 밖으로 대량 방출해 주는 이상 현상이 초래된다. 이런 배지 성분의 제한과 조절이 물질생산에 자주 쓰인다.


미생물을 자극하는 방법도 있다. 배양 중 어떤 쇼크를 가하면 미생물의 막 투과성에 이상이 생기는 현상이다. 이른바 급격한 온도의 변화(heat shock), 또는 특정 화학물질이나 전기쇼크(electroporation)를 가하면 평소 막을 통과하지 못하던 물질이 세포 안팎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런 방법 중 특히 전기쇼크는 유전자조작 시 동종 혹은 이종 DNA를 세포 내로 집어넣을 때 자주 쓰는 기법이다.


또 정상적인 생리 기능에 차질을 유발하는 제어발효라는 기술이 있다. 미생물은 동식물과 달리 아미노산, 비타민 등 거의 모든 물질을 스스로 만들어 쓴다. 그러나 무조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필요 최소량만 합성한다. 가령 어떤 아미노산이 필요 이상으로 생산되면 이 물질의 생산회로에 관여하는 최초반응을 블로킹(저해)하여 과잉생산을 막는다. 이것이 피드백저해(feedback inhibition)라고 하는 조절기구이다. 이런 조절반응을 교란시켜 물질생산을 도모하는 것이 제어발효이며 특히 아미노산의 생산에 자주 쓰이는 방법이다.


다음으로 돌연변이를 만들어 기능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화학적·물리적으로 DNA에 흠집을 내어 원래의 기능을 망가뜨리거나 변화시켜 장애를 초래하는 잔인(?)한 기법이다. DNA에 작용하는 이런 물질을 발암물질이라 한다. 여러 화학물질과 자외선, 방사선 등이 있다. 단, 이런 변이방법에는 결점이 있다. 변이원(mutagen)이 유전자 전체에 무작위로 작용하기 때문에 목적부위에 선별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공률은 매우 낮지만 과거 미생물의 개량에 자주 쓰였다.


이를 발전시킨 것이 유전자재조합(조작)이다. 유전자의 목적 부위만을 찾아 변이 시키거나 외부에서 새로운 형질(DNA)을 넣어주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은 동물과 식물, 미생물 간 종간의 벽을 넘어 어디에나 원하는 장소에 유전자를 옮겨 넣을 수 있다. 무작위로 흠집을 내는 물리·화학적 방법과는 달리 목표를 정해 선택적으로 변이를 일으킬 수 있어 변이주의 획득에 단연 유리하다.


이 방법은 1980년대에 개발되어 그동안 수 많은 유용생물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생물이 바로 유전자변형생물(GMO)이라는 것이다. 이 유전자조작법은 과거 동식물을 육종하여 잡종을 만들어 내던 고전적 방법과는 다르다. 이른바 유연종(有緣種) 끼리를 교배(수정) 하여 목적에 맞는 종을 선발해 가는, 시간과 노력이 끝도 없는 이런 지난한 방법과는 달리 효율성과 정확성에 있어서는 비교가 안될 정도다.


요즈음도 종래의 교배법이 안 쓰이는 건 아니지만 최근에는 이런 유전자조작법이 대세고 보편화됐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콩, 옥수수, 면화, 카놀라 등이 GMO 식품이며 그 종류는 급속히 늘고 있다. 미생물 포함 GMO생물도 부지기수다. 세간에는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라 하면 보통 식품으로만 알지만, 실제는 유전자변이를 가진 모든 생물을 총칭하는 단어이다. 일부에서는 아직 GMO에 대한 찬반 논란이 팽팽하지만 전문가 집단에서는 안전하다고 보는 경향이 더 강하다. 개발 이래 20~30년간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


당연하지만 미생물에는 동식물처럼 교배에 의한 육종법은 적용할 수가 없다. 자웅(암수)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생물의 육종은 유전자에 물리화학적으로 흠집을 내거나 혹은 직접 DNA를 조작하여 우량종을 개발하는 방법을 쓴다. 현재 쓰고 있는 사람 인슐린, 성장인자, 각종 약품, 아미노산 등이 대장균을 변이시켜 만든 미생물 GMO의 산물이다. 우리가 해롭다고 생각하는 대장균이 얼마나 인류 복지에 유용하게 쓰이는가를 실감하는 대목이다.


이제 이 기술이 더 발전하여 맞춤아기가 탄생하고 동물복제, 인간 유전자의 편집도 가능해졌다. GMO 인간의 출현도 머지않았다(?). 기술이 너무 지나쳐 인간 스스로 공포감을 느낄 정도다. 앞으로 어디로 튈지 향방의 가늠이 어렵다. 이제는 이런 기술이 더 발전하여 타깃(target) 유전자를 찾아가 그곳을 선별적으로 보수하는 유전자 편집기술(크리스퍼, CRISPER)로까지 발전했다. 이 기술로 올해 두 여성과학자가 노벨상을 탔다. 끔찍하게도 지금의 유전자조작기술로 나의 체세포 하나로 나를 복제하고, 나의 세포 2개로 각각 정자와 난자를 만들어 내 자식을 만들 수 있는 무서운 시대가 도래했다. 당연 동성 부부도 친자를 가질 수 있다. 오싹하지 않나. 이런 내용에 대한 각론은 각기 다른 주제로 다룰 예정이다. 다음 주제는 '세균의 맹독 물질 보톡스, 여성의 로망이 되다'에 대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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