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연체자 됐는데… 연체자라 지원 못 받는 지독한 역설
“코로나19로 연체자가 됐는데, 연체자는 지원을 못 해준다니요?”
부산 남구에서 2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김 모(52) 씨는 코로나19로 매출이 줄어 대출 이자를 석 달째 갚지 못했다. 그 바람에 연체자 신분이 됐다.
1년 전 매출의 3%에 그친 식당
대출 이자 못 갚아 연체자 신세
“연체부터 해결해야 지원 가능”
부산시 지원 대출도 ‘그림의 떡’
2019년 12월 김 씨의 식당 월 매출액은 942만 원이었으나, 코로나19 이후에는 수입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오후 9시 이후 영업이 금지된 지난 12월에는 고작 30만 원으로 수직 하락하고 말았다. 이는 전년도 같은 달 매출의 3%에 불과해 김 씨는 실로 넋이 나가는 기분이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대출 이자도 밀렸다. 결국 코로나19에 따른 피해로 그의 신용 등급은 10등급으로 떨어졌고, 연체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생계마저 걱정할 지경에 봉착한 김 씨는 이달 초 희미하나마 빛을 보는 일이 생겼다. 부산시가 지난 8일부터 9~10등급 저신용 영세사업자로 지원 대상을 확대한 금융 상품 ‘모두론 플러스’를 출시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하지만 신용보증재단을 찾은 그는 다시 절망하고 말았다. 김 씨의 ‘대출 연체’ 때문에 지원해 줄 수 없다는 황당한 답변을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대출도 못 갚을 정도로 수익이 줄었는데, 연체를 먼저 해결해야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 씨는 “코로나19로 생계가 어려워져 대출이 밀렸는데, 이젠 연체자라고 지원이 안 된다니 너무나 힘들다”며 망연자실해 했다.
이처럼 불합리한 일은 김 씨의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모두론뿐만 아니라 부산시가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대출 상품 8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부산신용보증재단의 한 고위 인사는 “소상공인을 위한 대출 상품은 많지만 연체자를 지원하는 상품은 사실상 없는 게 현실”이라며 “대출 신청 소상공인 중 15%가 김 씨와 비슷한 이유로 거절당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단순한 통계로 봐도 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만든 금융 상품이 되레 그들을 외면하는 상황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해 부산시가 감염병 피해 소상공인을 위해 마련한 대출 상품을 이용한 건수는 총 4만 1611건인데, 이는 부산 총 중소기업 사업체 전체(43만 1202개)의 9.6%에 불과하다.
부산시는 이에 대해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금융기관의 위험 부담 문제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은행이 연체자에게 금융 지원을 시작하면 금융위 규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금융위가 은행 감사를 착수할 경우 그 부담까지 행정 당국이 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부산시 혁신경제과 관계자는 “금융위원회, 금융기관 등과 여러 차례 협의했지만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연체자 대상 대출이 불가능하다면 제 3의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용이 아닌 담보물건 제공을 전제로 한 대출 상품이 대표적이다. 공공 기관의 직접적인 재정 투입이 급선무라는 의견도 나왔다.
부산대 경제학과 최병호 교수는 “연체자 대출 지원이 금융기관에게 큰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라며 “자영업자들 폐업이 지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시 재정 투입을 위한 공감대를 하루빨리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박혜랑·손혜림 기자 rang@busan.com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