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태종대서 민간인 집단 매몰” (영상)
부산 영도구 태종대에서 일제강점기 말 해안포진지 시설물로 추정되는 대형 땅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땅굴을 포함해 태종대에 산재한 미발견 포진지 시설에서 민간인들이 집단 학살된 후 매장됐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어, 유적 조사와 발굴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4일 오후 부산 영도구 태종대 내 태종사 부근. 작은 개울을 건너자 수풀에 뒤덮인 정체불명의 대형 땅굴이 보인다. 가로 3m, 세로 4m가량의 땅굴 입구는 콘크리트로 막혀 있다.
태종사 부근서 대형 땅굴 발견
입구는 콘크리트로 막혀 있어
자료 통해 일제 해안포진지 추정
강제노역 주민 집단 매장 증언에
유적 조사 및 발굴 주장 힘 실려
태종대유원지사업소 측은 “어떤 용도로 굴이 만들어졌는지, 언제 입구가 막혔는지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면서 “다만 일제강점기 때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부산시나 태종대 군사구역을 관할하는 육군 53사단 등도 이 땅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재 태종대가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돼 있어, 땅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문화재청의 현상 변경 허가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취재진이 발견한 이 땅굴을 두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해안포진지 시설”이라고 입을 모았다. 일본 방위성의 ‘부산주둔 일본군 자료집’에 따르면 1940년대 태평양전쟁 당시 태종대에 중포병대, 조명부대 등이 배치됐음이 확인된다.
김한근 부산근대사료연구소 소장은 “태종대뿐 아니라 청학동, 용호동, 감만동 등지에도 중포병대가 배치됐는데,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연합군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충격적인 사실은 당시 일본군이 최소 수십 명에서 최대 200명의 주민을 군사 시설에 매장했다는 증언들이 나오는 점이다. 주경업 부산민문화연구원 대표는 “땅굴 조성 당시 200명 정도 주민이 강제노역으로 끌려갔고 이후 일본군에 의해 집단 총살됐다는 제보를 받은 적 있다”면서 “굴에서 도망쳐 나왔다는 분과 그 가족을 직접 만나기도 했지만, 굴 입구가 막혀 내부 조사를 벌일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주민 안원찬(83·영도구 동삼동) 씨는 “무거운 포탄을 옮기는 등 강제노역을 하거나 일본군에게 고문을 받다 죽으면 땅굴에다 시체를 버렸다”면서 “시체에서 나오는 냄새는 물론 인 성분이 공기 중에 발화되는 ‘도깨비불’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도 일본군이 땅굴을 판 주민들을 집단 총살한 사례가 밝혀졌다. 실제, 지난 1999년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지하요새를 판 조선족과 한족 유골 3000~4000구가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이 땅굴뿐 아니라 태종대 곳곳에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적이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관련 기관들이 나서서 현상 변경 허가 등 전방위적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김윤미 HK연구교수는 “일제강점기 태종대에는 많은 병력이 배치됐기 때문에 포진지뿐 아니라 탄약고, 막사 등의 시설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한근 소장은 “지역의 ‘아픈 역사’가 스며 있는 유적이 발견된 만큼, 지금부터라도 땅굴 안팎을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