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3대 구라’ 백기완 선생 ‘대륙적 입담’
15일 향년 89세의 나이로 영면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1950년대부터 일생을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참여했다. 재야에서 농민·빈민·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한 그는 입담으로도 유명해 ‘구라(口羅)꾼'으로 불렸다.
일본말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지만, 구라(口羅)는 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한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말(口)을 비단(羅)같이 매끄럽게하여 상대방을 현혹시킨다는 뜻이다.
황석영, 방배추(본명 방동규)와 함께 ‘조선 3대 구라’로 불린 그는, 남다른 인생 이력과 지성, 깊은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입담으로 깊은 감동과 울림을 줬다.
특히, 70년대 군사정권 때 피맛골 막걸리집에 앉아서 풀어놓던 백기완의 입담은 민족사적 서사가 있었다.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재야운동가로 1992년 에는 대통령선거에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으나,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5학년 중퇴에 불과하다. 그러나, 독학으로 공부해 해박함을 갖춘 그의 입담은 단연 '대륙적 기질'을 뽐냈다.
백기완 선생의 절친한 친구인 방배추는 1935년 생으로 백 선생이 대통령출마 시 경호대장을 지내기도 했다. 팔뚝이 보통 사람의 3배는 되고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이라 불렸다.
방배추는 홍익대 법학과를 중퇴한 후 독일파견광부, 파리유랑생활,중동건설공사근무, 고급양장점 '살롱 드방'운영, 철원에서 농사 지으며 공동체생활도 했다. 살인 빼고는 안해 본 일이 없고, 저승 빼고 안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인생이 파란만장했다. 신산했던 그의 삶을 재료로 쏟아내는 방배추의 입담은 감히 맞설 자가 없었다고 한다.
육담으로 유명했던 소설가 황석영도 입담을 풀다 방배추가 들어오면 슬그머니 입을 닫았다고 한다.
백기완 선생이 영면함으로 민족사적 서사가 깃든 그의 입담도 들을 수 없게 됐다. 박진국 기자 gook72@busan.com
박진국 기자 gook7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