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 갔다가 마음에 담아 온 양산 풍경 셋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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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법기수원지·한국궁중꽃박물관·임경대

경남 양산 법기수원지의 개잎갈나무 길. 경남 양산 법기수원지의 개잎갈나무 길.
한국궁중꽃박물관의 밀랍으로 만든 매화 ‘윤회매’ 설치작품. 한국궁중꽃박물관의 밀랍으로 만든 매화 ‘윤회매’ 설치작품.
임경대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낙조. 임경대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낙조.
위부터 차례로 경남 양산 법기수원지의 개잎갈나무 길과 한국궁중꽃박물관의 밀랍으로 만든 매화 ‘윤회매’ 설치작품, 임경대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낙조. 위부터 차례로 경남 양산 법기수원지의 개잎갈나무 길과 한국궁중꽃박물관의 밀랍으로 만든 매화 ‘윤회매’ 설치작품, 임경대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낙조.

에브리웨어(어디든지). 일상의 압력이 끓어오르면 전세계 항공 검색 사이트에서 도착지를 이렇게 넣고 비행편을 들여다보던 때가 있었다. 생활 반경이 쪼그라든 시기지만 그래도 여기 아닌 곳이 주는 여행의 기분이 그리울 때는 근교 가볼 만한 곳을 뒤지게 된다. 부산에서 한 시간대를 넘지 않는 거리일 것. ‘저질’ 체력도 거뜬한 쉬운 여행일 것. 눈이 즐겁되 안전한 여행일 것. 이 조건을 기준으로 경남 양산의 세 곳을 다녀왔다. 시간이 되는 대로 한 군데만 골라서 가도 좋고, 모두 다 들러도 하루가 바쁘지 않은 일정이다.


법기수원지… 개잎갈나무·편백나무 삼림욕 만끽

궁중꽃박물관… 나비도 꽃으로 착각했던 채화 작품

임경대… 최치원도 칭송한 낙동강 절벽 낙조 명소


■법기수원지

사계절 법기수원지를 찾는다는 사람이 있다. 계절마다 모습을 바꾸는 호수와 숲 풍경은 언제 찾아도 마음이 편안하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시대 축조된 흙댐이자 금정구 일대 7000가구의 식수원. 79년 만에 댐과 수림지 일부가 개방된 게 10년 전이다. 수원지 정문으로 들어서면 왼편으로 하늘을 찌르며 곧게 뻗은 개잎갈나무(히말라야시다) 길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댐을 지을 때 심은 나무들로, 수령은 100년이 다 되어 간다.

오른편 길은 곧 벚꽃이 만발할 벚나무길이다. 양쪽 어느 방향으로 가도 댐마루로 갈 수 있다. 원래 중간에도 124개 계단, 일명 하늘계단이 있는데 지금은 막아 놓았다. 양쪽의 나무 계단을 힘들지 않게 지나면 길이 260m, 높이 21m 댐마루에 올라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취수탑과 호수가 펼쳐지고, 멀리 호수 주변의 숲은 이미 봄의 기운을 한껏 머금고 있다.

댐마루 길의 길목은 ‘칠형제 반송’이라 불리는 반송나무 7그루가 차례로 지키고 있다. 수령이 140년이라는 반송나무의 굵고 긴 줄기 아래를 지나가려면 종종 허리를 꺾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모진 세월을 버틴 굵은 둥치와 아래에서 위로 꽃다발처럼 퍼진 줄기의 모양은 닮은 듯하면서도 제각각 다르게 아름다워서 마주칠 때마다 멈추게 된다.

수원지 내를 한 바퀴 둘러보는 ‘법기조망길’은 0.5km 남짓. 천천히 돌아봐도 40분이면 충분하다. 댐마루 아래로 내려서면 개잎갈나무 뒤편으로 빽빽한 편백나무의 피톤치드를 누릴 수 있는 벤치 길이 있다. 편백 413그루, 개잎갈나무 59그루, 벚나무 131그루 등 7종 644그루 나무가 있다니 작은 숲이지만 짧은 삼림욕을 즐기기에 모자라지 않다.


■한국궁중꽃박물관

한국궁중꽃박물관은 조선왕조 궁중채화 기능 보유자로 국가무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된 황수로 궁중채화장이 사재를 출연해 만든 박물관이다. 조선왕조 궁중채화는 전문 장인이 궁중의 연희나 의례 목적에 맞게 비단이나 모시 등으로 제작한 꽃을 말한다. 2019년 9월 개관했다가 코로나 확산에 따라 문을 닫았고, 지난해 5월 다시 운영을 시작했다.

한옥 대문 매표소에서 미리 예약한 입장권을 받고 명부를 작성한 뒤에 들어서면 일단 눈이 쉬어가는 기분이 든다. 낮은 담장이 둘러싼 박물관 부지에는 아래로는 푸른 잔디, 뒤로는 야트막한 숲을 배경으로 전통 궁궐양식 목조건물 두 채가 보인다. 정면의 팔각 지붕 양쪽 누각을 얹은 한옥이 설립자 황수로 장인의 아호를 딴 수로재, 왼쪽에 숨은 듯 보이는 건물이 비해당이다. 전시실은 두 곳 모두에 있다.

처음 만나는 전시는 1887년(고종 24년) 대왕대비 신정왕후의 팔순을 기념한 궁중 대향연을 재현한 ‘고종정해진찬의’ 전시실이다. 성대한 음식을 장식한 상화와 임금의 자리 양옆을 장식한 꽃병의 꽃 준화, 연희에 사용하는 각종 의물을 장식한 의장화와 일종의 무대 장식인 지당판을 장식한 연꽃과 목단화병 등 다양한 궁중채화를 전시실 밖 마루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어좌 양쪽을 장식하는 꽃병의 홍도화준과 벽도화준이 인상적이다.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오얏꽃 각각 2000송이를 비단으로 만들어 붙이고 곤충, 나비 모양들로 치장했다. 2004년 황수로 장인이 덕수궁 야외에서 특별전시를 했을 때 실제 꽃인 줄 알고 벌과 나비가 날아들었다는 일화가 납득이 갈 만큼 생생하면서도 위엄이 있다.

비해당에서는 1829년(순조 29년) 기축년에 순조의 즉위 30년과 만 40세 생일을 기념해 효명세자가 마련한 기축년 진찬의 지당판과 대한제국 최후의 황제 순종의 순정효황후가 한국전쟁 당시 해운대 장지마을(지금의 우동)에서 지내던 시절의 내실을 실제 당시 사용한 자개장과 함께 재현한 특별전시를 만날 수 있다. 수로재 1층에서는 벌집 밀랍을 녹여서 만든 매화 나무를 영상과 함께 전시한 설치미술 작품 ‘윤회매’와 다양한 채화 도구 등을 둘러볼 수 있다.

관람을 마치면 아트숍 겸 카페에서 차 한 잔을 제공한다. 고즈넉한 카페에서 ‘거리두기’를 한 탁자에 앉아서 마셔도, 밖으로 나가서 폭포로 꾸민 작은 정원에서 산책을 하면서 마셔도 좋다. 비해당 뒤편에는 황수로 장인과 이수자들이 머물면서 채화를 만드는 작업실이 있다. 학예연구사의 설명에 따르면 겨울은 정원 곳곳에 보이는 치자나무로 직물을 염색해 재료를 준비하는 시기다. 3월부터 시작되는 체험 프로그램의 참가자도 모집하고 있다.

많은 볼거리나 유적을 기대한다면 심심할 수도 있겠다. 공예나 궁중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권할 만하다. 특히 일제의 조선왕조 궁중문화 말살 정책으로 소멸될 뻔한 궁중채화를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각종 고문헌을 바탕으로 복원한 장인의 이야기가 주는 울림이 있다. 차 한 잔과 정원을 즐기기만 해도 괜찮은 선택이다.


■임경대

부산 해운대구 동백섬에는 신라시대 명문장가인 고운 최치원의 시비 두 개가 있다. 그중 하나인 ‘양산 임경대’를 노산 이은상이 번역한 시는 이렇다. “메뿌리 웅긋중긋 강물은 늠실늠실 / 집과 산 거울인 듯 서로 마주 비치는데 / 돛단배 바람 태워 어디로 가버렸나 / 나는 새 어느결에 자취 없이 사라지듯.” 낙동강 서쪽 절벽 위, 물금과 원동을 잇는 오봉산 7부 능선 자락의 임경대는 이 기록을 바탕으로 양산시가 2018년 조성한 곳이다.

임경대 가는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다. 물금에서 원동면 화제리 방면으로 1022호 지방도를 따라 구불구불한 오르막을 아슬아슬 오르다 보면 오래지 않아 임경대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에서 임경대 정자까지는 오른쪽 산책로로 가면 150m, 왼쪽 계단길로 가면 120m밖에 안 된다. 부드러운 오후의 햇볕을 받으면서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를 지나치면 낙동강의 절경을 굽어보는 육각 정자가 나타난다.

전망대에서는 김해와 양산 양쪽의 산자락 사이를 흐르는 낙동강 본류의 물줄기가 펼쳐진다. 하늘과 맞닿은 드넓은 강의 풍경에 마음이 탁 트인다. 굽이쳐 흐르는 강의 모양은 얼핏 한반도 지형과 비슷하다. 양산 원동과 김해 상동을 잇는 가느다란 다리가 강을 가로지른다. 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김해의 산과 들판 풍경까지가 절경의 완성이다.

낙조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출사족들이 정자와 전망대를 서성거리기 시작한다. 해는 산 봉우리로 넘어가면서 멀리 강물을 품은 겹겹의 산줄기와 하늘을 서서히 물들인다. 정자 위에서 바라봐도, 전망대에서 바라봐도 오롯히 충만한 풍경이다. 생활반경을 따라 자꾸만 비좁아지는 마음도 순간 느긋해졌다. 글·사진=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양산 마실 팁

법기수원지는 경남 양산시 동면 법기로 198-13 본법마을에 있다. 주차료 2000원을 받는 주차장 여러 곳이 있고, 800m 정도 떨어진 전기차 충전시설 주차장에 무료로 차를 대고 걸어가도 된다.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음식 가방은 입구 보관함에 두고 들어가야 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 겨울에는 1시간 일찍 문을 닫는다. 입구에는 미나리전이나 더덕막걸리 등을 파는 식당들이 있다. 055-383-5379.

한국궁중꽃박물관은 매국외산로 232 동부산CC 인근에 있다. 반드시 사전에 예약을 하고 평일 4차례, 주말과 공휴일 5차례 해설 시간에 맞춰 가야 한다. 성인 1만 원, 청소년 5000원 관람 요금에 카페의 음료와 주차 2시간 이용권이 포함된다. 월·화·금요일 휴관. 055-362-3661.

임경대는 원동면 화제리 산72-4번지다. 내비게이션에는 임경대 주차장을 치고, 양산IC나 물금IC 또는 남양산IC에서 1022번 지방도로 접어들면 된다. 주차비는 없다.

자원회수시설의 굴뚝을 전망타워로 만든 양산타워 5층의 북카페는 쉬어가기 괜찮다. 현재 코로나로 음료 판매는 하지 않는다. 남부시장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거나 울통치킨(055-386-9282)에서 동물복지 농장의 닭으로 만드는 양념 반·후라이드 반 반반치킨(1만 4000원)을 포장해서 돌아와도 좋다. 최혜규 기자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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