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03) 공간 속에서 유영하는 기하학적 추상, 김동규의 ‘상황’
2016년 부산시립미술관에 높이 4m 규모의 6개의 천기둥이 세워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이 물들어가는 과정을 보이는 이 작품은 김동규가 1974년에 제작한 ‘빛기둥’이다. 2016년 부산비엔날레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의 첫 번째 프로젝트 중 1960-80년대의 한국, 중국, 일본의 자생적 실험미술인 아방가르드를 조망하는 전시를 위해 재현된 것이었다. 물성과 매체의 근원적 속성, 서로 간의 반응에 따른 관계성과 시간의 흔적을 보인 이 작품은 한국 아방가르드의 주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전위적인 실험미술을 추구하며 부산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한 김동규(1939-2001)는 부산사범대학 미술과를 졸업했다. 그는 1963년 대학동문인 김종근, 김홍규, 박만천, 김종철 등과 미술동인 ‘혁(爀)’을 창립했다. 김동규는 ‘추상 이후의 미술’을 지향한 ‘이후작가전’(1968), 새로운 실험미술을 실현한 ‘한국아방가르드 협회전’(1971) 등에 참여하였고 1975년 ‘제6회 까뉴국제회화제’에서 국가상을 받았다.
김동규는 작업 초기의 기하학적 추상에서부터 ‘존속’, ‘습속’ 등 화면 전면에 반복적인 패턴으로 구조적 변화를 추구한 단색회화, ‘대안’, ‘빛기둥’ 등 매체의 물성 간 관계성을 추구한 실험미술, 비구상과 형상이 혼재된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며 새로운 조형 이념을 실천했다.
그는 “나의 의식구조나 아집이전(我執以前)에 존재하고 있는 현실과 나 사이의 ‘릴레이션’을 파악해야 하고, 그것은 곧 지금의 ‘실체와 상황’의 탐구, 그리고 그 실현이 나의 작업에 주어진 과제라 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상황’(1969)은 그의 이러한 조형 의지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화면 중앙에 큰 마름모가 있고 그 중심에 있는 초록과 빨강 선을 기점으로 양쪽에는 구불구불한 무늬가 반복된다. 단계적 차이를 둔 색의 미묘한 음영 변화는 입체적 구조를 구현함과 동시에 공간 속에서 유영하는 듯한 착시현상을 보여준다. 흐르는 듯한 선과 형태는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마름모 내부에서 외부로 흘러가는 노랑은 안과 밖을 연결하며 공간의 확장을 담아낸다. 반복되는 패턴으로 환원적 회화의 전형을 보이는 이 작품은 작가가 작업 초기에 추구한 기하학적 추상의 대표성을 보인다.
조은정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