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학교 폭력'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다

박진국 기자 gook7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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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국 디지털미디어부장

인간은 수십만 년 동안 공격성을 개발해 왔다. 때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타인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나아가 인간은 생존 효율성이 입증된 공격 본능을 DNA속에 각인시켜 유전했다. 동시에 폭력이 낳은 ‘상호 확증적 파괴’도 목도해 왔다. 폭력은 차이는 있을 지언정,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입힌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학습한 것이다.

인류의 이성은 ‘만인에 대해 만인이 투쟁’하는 야만적 상황을 막기 위해 폭력을 억제하고자 했다. 개인적 규범, 사회적 차원의 도덕, 세계 질서를 만들어 문명의 이름으로 폭력성을 눌러왔다.


인간 DNA 속에 각인된 폭력 본능

혐오,이기심, 분노 타고 쉽게 표출

스포츠·연예계 줄잇는 ‘학폭 미투’

학창 시절마저 만연한 폭력 보여줘

가해자 사후 처벌 중심의 대책 벗어나

폭력 예방·피해자 치유 균형 이뤄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 본성은 쉽게 제어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DNA 속에 각인된 인간의 폭력성은 분노, 편견, 혐오, 이기심의 틈을 타고 때와 장소를 달리해 수시로 발현된다.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 직장 내 갑질, 인종 청소, 전쟁은 인간의 내재적 폭력성을 입증하는 증좌들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학교 폭력 미투(Me Too!)’는 가장 순수한 학창 시절마저 폭력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여자배구 국가대표인 이재영, 이다영 자매의 학폭 고발을 신호탄으로 스포츠계와 대중문화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스타 여럿이 가해자로 지목됐다.

이런 사례 말고도 학교 폭력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고질적 문제임을 가리키는 통계는 많다. 지난달 21일 교육부가 발표한 ‘2020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학교폭력은 1.6%에서 0.9%로 0.7%포인트 감소했다. 그러나, 표면적 수치 감소는 코로나 19 사태로 등교 일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되레, ‘사이버폭력’은 8.9%에서 12.3%로 3.4%포인트, ‘집단따돌림’은 23.2%에서 26.0%로 2.8%포인트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비대면 폭력이 상대적으로 늘어나 학교폭력의 양상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해석했다.

폭력 피해가 어느 하나 가벼울까 마는 학교 폭력 피해자의 상처는 특히나 심각하다. 학창 시절은 가치관이 형성되는 민감한 때이기에 이 때 당한 폭행 피해는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수 년 혹은 십 수 년 전 피해를 뒤늦게 폭로하는 이유도 심각한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학폭 피해 학생들은 우울과 불안, 예민함 등 고통을 공통적으로 호소한다. 특히 장기간 피해를 본 학생들은 자아 존중감이 낮아지고, 학교는 물론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비율도 높다. 피해 경험이 타인에 대한 경계나 신뢰 결핍으로 이어져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이번 ‘학폭 미투’는 일종의 교육 효과를 가져왔다. 아무리 과거에 저지른 폭력이라도 언젠가는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값비싼 교훈을 준다. 사회적으로도 학교폭력이 아주 잘못된 행위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피해자에 대한 지지 여론이 쉽게 형성돼 용기를 내 폭로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졌다.

아쉬운 것은 학폭 미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지나치게 처벌 중심 즉 사후 처리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대표 박탈, 프로그램 하차, 무기한 출전 정지, 의도치 않은 은퇴 같은 사회적 벌칙이 학폭 방지에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예방과 치유를 통해 학폭 가해자 양산을 막고, 피해자가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 가능하도록 치유하는 것 역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분야라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학폭 방지를 위한 예산·인력 등의 자원이 사후 처리를 위해 대부분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비밀’이다.

학폭 예방과 치유가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폭력이 낳은 심각한 후과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을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 학폭 가해자들은 대부분 ‘폭력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다’ ‘약한 사람은 폭력을 당하는 이유가 있다’는 등의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 연구는 또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유도했을 때 폭력성이 제어된다 것도 입증했다. 교육을 통해 학교 폭력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증 연구다.

더불어 피해자가 조기에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상담과 치유 프로그램 운영을 늘여야 한다. 학교 폭력 피해자들이 수 년 간 말도 못하고 있다가 이제 서야 폭로에 나선 것은 제 때 상처를 치유 받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학폭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지금이야말로 지원 기관을 확충하고 종사자들의 전문성 향상에 투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gook72@busan.com


박진국 기자 gook7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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