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K-테크노폴리스를 만들자
초의수 신라대 교수·부산광역시 지방분권협의회 위원
‘발전이란 사람들이 향유할 실질적 자유를 확장하는 과정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던 하버드대 아마티야 센 교수가 한 말이다. 여기서 자유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의미하며 발전은 이러한 능력과 자유를 증진시키는 것을 뜻하게 된다.
OECD 국가 중 수도권 인구가 과반을 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며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는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1000대 기업의 75%, 100대 기업 본사의 88%가 수도권에 있고, 30대 기업 본사는 거의 서울에 소재하고 있다. 국토 면적의 88.2%인 비수도권 경제가 0.6% 면적의 서울 본사 지시로 움직이는 지역 경제 자율 운영이 제약된 체제인 것이다. 2018년 서울의 10만 명 당 지식재산등록 건수는 888건인데 부산은 251건으로 서울의 28%에 불과하다. 이처럼 비수도권의 혁신 역량은 수도권 대비 20~30%에 불과한 상황이다. 특히 4차산업혁명 시대 과학기술과 연구개발, 혁신의 동력이 중요한 시기에 비수도권의 혁신 역량은 매우 빈약하여 센이 말하는 기회와 역량 중심의 자유가 박탈되고 있는 실정이다.
잘 알려진 미국 실리콘밸리뿐 아니라 영국 케임브리지와 런던, 프랑스 소피아 앙티폴리스, 스웨덴 시스타 등 세계 주요 성장 지역은 과학기술 및 연구개발의 거점이기도 하다. 부산도 이런 혁신 거점이 될 수 있을까? 현재 자력으로는 쉽지 않고 수도권 공공기관을 비수도권으로 분산시키는 2차 이전의 다극적 지역혁신 재편의 마중물이 절실한 상태이다. 작년 총선에 이해찬 대표가 부산에서 밝힌 공공기관 이전 규모는 300여 개인데, 연구에 따르면 비수도권으로 이동이 가능한 공공기관은 210개, 이들의 투자 및 출자회사는 280개로 무려 500여 개 기관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1차 이전은 153개 기관, 5만 1000여 명). 2차 이전이 이루어지면 다수는 기존처럼 혁신도시 형태로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2차 이전에서 핵심은 1차 때와 달리 연구개발 관련 기관을 별도로 묶어내어 지역 내 연구개발 기관, 대학 연구소, 기업 등과 함께 K-테크노폴리스를 조성하는 것이다. K-테크노폴리스는 대략 4개 집단으로 구성할 수 있다. 1집단은 과학기술 분야 국가출연기관이고(25개 기관, 105개 산하기관), 2집단은 과기부외 중앙부처 산하 연구개발 기관 및 이들의 출자회사이다. 3집단은 시도 출연 연구개발 기관 및 대학연구소이고, 4집단은 기업과 기업 소속 연구개발센터, 스타트업 등이다. K-테크노폴리스의 기능은 혁신적 과학기술 개발, 개발된 기술의 사업화 및 상용화, 기술 기반 기업의 인큐베이팅, 지역 문제 해결 지향의 실용화, 현장 문제 해결형 전문 인력 육성, 관련 주체들의 클러스트화를 도모할 교류 협력 및 거버넌스, 지역산업 및 과학기술 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공공 및 민간 재원을 통한 재정 지원 등이 중심을 이루게 된다. 포괄적으로는 과학기술과 산업이 결합된 지역 클러스터이자 혁신 플랫폼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다극분산의 연구개발 입지 모형은 독일과 프랑스의 사례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막스 플랑크 및 프라운호퍼 등 주요 공공협회 연구소 등은 전국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에 흩어져 각 지역의 과학기술과 연구개발을 촉진시키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는 1980년대부터 수도권 공공기관을 지역으로 분산시켜 테크노폴을 만들었고, 이후 지역산업 클러스터로 발전시켰으며, 2000년대 이후 국내 거점에서 글로벌 거점까지 총 71개의 경쟁 거점을 만들어 다극분산적인 지역 혁신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들 두 나라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일극집중체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K-테크노폴리스는 결정 이후에도 완공까지 10년이 소요되고, 정착 발전하는 데는 그 이상의 시간 투자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역량 중심의 진정한 지역균형발전의 큰 바퀴를 굴리려면 혁신축을 단단히 고정시킬 K-테크노폴리스 같은 린치핀이 절실하다. 러스트벨트로 전락한 부울경에서 특히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