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병아리 감별사
‘병아리 감별사(chicken sexer)’는 부화 직후 병아리의 암수를 구별하는 전문가다. 암실의 전깃불 밑에서 이루어지는 감별 요령은 다음과 같다. 부화 후 30시간 이내에 가져온 병아리를 집어 항문을 벌리고 똥이 나오면 탈분통에다 털어 낸다. 그 뒤 손가락으로 병아리 항문 안쪽을 만져 미세한 돌기가 느껴지면 수평아리다. 말로는 꽤 간단해 보인다. 하지만 좁쌀 3분의 1만큼 작은 돌기로 감별을 해야 하니 시력이 좋고, 손은 가늘고, 성격은 침착해야 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했다. 좁쌀만큼의 병아리 똥이 모이면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국내 최고 숙련자가 감별할 수 있는 병아리는 1시간에 1600마리 수준이라고 한다. 0.4초 만에 한 마리의 감별을 끝마치는 놀라운 속도다. 이처럼 손놀림이 빠른 한국인 감별사는 세계 최고로 꼽힌다. 현재 해외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감별사는 80여 개국에 걸쳐 1800여 명. 전 세계 병아리 감별사 인력시장에서 60%를 차지한다. 국내에서 기업적인 양계로 전환한 것은 1961년 이후로 이때부터 병아리 감별사가 생겨났다. 우리나라 감별사의 식별능력이 빼어나다고 이름이 나면서 세계 각처로 파견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부산일보〉 1970년 5월 22일 자에는 ‘인기 수출 용역 병아리 감별사’라는 제목이 보인다. 1983년 12월 30일 자에는 서울에서만 실시되던 병아리 감별사 자격시험과 해외취업알선시험이 새해부터 부산에서도 실시된다는 기사가 실렸다. 대한양계협회 감별분과위원회가 감별사 응시자의 수와 합격률이 46% 상당을 차지하는 부산에서도 실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1990년 9월 6일 자에는 영국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는 한국인 교포 3명이 같은 한국인 병아리 감별사에게 칼에 찔려 살해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영화 ‘미나리’ 남녀 주인공의 직업은 병아리 감별사다. 이 영화를 만든 정이삭 감독은 실제로 병아리 감별사의 아들이라고 한다. 영화에는 아빠를 따라 병아리 감별장에 간 아들이 어린 수컷을 폐기하는 이유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아빠는 “맛이 없거든. 알도 낳지 않고. 그러니까, 우리는 쓸모가 있는 사람이 돼야 해”라고 말한다. 독일은 계란에서 나중에 나올 병아리의 성별을 알아내는 기술을 이미 개발했다고 한다. 스위스에 이어 프랑스는 수평아리를 대량 도살하는 관행을 올해 말까지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