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가계약금의 유혹!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이 가격에 이만한 집 없어요, 얼른 가계약금 얼마라도 넣어 두세요!” 부동산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다 보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집주인들이 부동산 매매 ‘가계약’을 파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앞으로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판단한 매수인들은 집주인에게 서둘러 가계약금을 지급하지만, 집주인들은 기존보다 호가를 더 높여도 되겠다는 생각에 가계약을 줄줄이 깨고 있는 것이다. ‘가계약금’이라는 말은 왠지 법적 구속력이 가벼워 보이고, 본 계약금보다 현저히 낮은 금액으로 맘에 드는 부동산을 선점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매당사자들은 쉽사리 가계약금을 주고받는다. 가계약금은 정식 법률용어는 아니고, 계약금 일부를 지급하는 것을 일컫는데, 경우에 따라 이 가계약금의 법률효과는 절대 가볍지 않다.


부동산 가격 급등, 가계약 파기 늘어

가계약금 법률 효과 가볍지 않아

정식계약서 없어도 매매계약 성립

당사자 일방이 마음대로 해제 못해

가계약 전, 반환 조건 합의 필요

진짜 계약으로 생각하고 신중해야


매수인 A는 10억 원의 아파트를 매수하기로 하고, 중개인을 통해 매도인 B와 계약을 체결하기로 하면서, 매매대금, 계약금, 중도금 및 잔금 지급 방법, 지급 시기 등 계약의 주요 내용을 정했다. 다만 계약서는 며칠 뒤에 쓰기로 하고, 계약금 1억 원 중에서 우선 1천만 원을 B 계좌로 지급하였다. 그런데 며칠 뒤 매도인 B는 위 아파트의 시세가 3억 원이나 더 올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부리나케 부동산 중개인한테 연락해서, 가계약금을 돌려줄 테니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 매수인 A는 그럴 수는 없다고, 계약을 해지하려면, 계약금의 2배를 내놓으라고 하고 있다. 과연 B는 A로부터 받은 가계약금만 돌려주고 계약을 파기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먼저 ‘매도인과 매수인 사이에 매매계약이 체결되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대법원은 ‘부동산 매매에 관한 가계약서 작성 당시 매매 목적물과 매매대금 등이 특정되고 중도금 지급 방법에 관한 합의가 있었다면 그 가계약서에 잔금 지급 시기가 기재되지 않았고 후에 정식계약서가 작성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매매계약은 성립했다’고 판시하고 있다. 즉, 계약서를 썼느냐 안 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식계약서가 작성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사자 사이에, 매매 목적물, 매매대금 등이 특정되고 중도금 지급 방법에 관한 합의가 있다면 가계약금만 지급되고 계약금이 전액 지급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는 당사자 사이에 매매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 사안에서 A와 B 사이에는 매매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볼 수 있고, 매매계약이 일단 성립한 후에는 당사자 일방이 이를 마음대로 해제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즉, 계약이 체결된 이상 계약해제를 위해서는 매도인이 약정 계약금 1억 원의 2배인 2억 원을 지급해야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매도인은 가계약이라고 생각하고 고작 1천만 원만 지급받았을 뿐인데, 2억 원을 지급해야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니 말이다. 대법원 판례는 ‘실제 교부받은 계약금'의 배액만을 상환하여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면 이는 당사자가 일정한 금액을 계약금으로 정한 의사에 반하게 될 뿐 아니라, 교부받은 금원이 소액일 경우에는 사실상 계약을 자유로이 해제할 수 있어 계약의 구속력이 약화되는 결과가 되어 부당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입장을 바꾸어, 매수인 A가 변심해서 더 좋은 조건의 아파트를 발견하고, 중개인에게 연락해서 B와의 가계약은 파기하고 싶다고, 가계약금을 돌려달라고 할 때, A는 이를 돌려받을 수 있을까. 당사자 간 이에 대한 특약이 없다면 매수인은 매도인에게 가계약금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그렇다면 A는 B에게 지급한 가계약금만 포기한다면 B와의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매매계약이 일단 성립했으니, 매수인 A가 계약금을 포기하면서 계약을 해제하려면, 1억 원 중 1천만 원만 지급했으니 9천만 원을 더 지급해야 한다. 가계약이라는 유혹에 넘어가 가계약금을 지급한 효과가 이렇게 ‘어마무시’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 가계약을 말 그대로 본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경우, 상호 간에 반환하는 것으로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당사자 간에 가계약금을 주고받을 때, 가계약금은 돌려주는 것으로 명시적으로 합의를 하면 된다. 예를 들어 ‘~일 이내에 본 계약이 안 되었을 경우에는 가계약금을 즉시 반환한다’라고 하거나, ‘~일 이내에 본 계약이 체결되지 않고 계약 해지를 원할 경우 가계약금은 반환하지 않는다’라고 명시하면 된다. 굳이 계약서에 쓰지 않아도, 문자나 카카오톡 메시지 등으로 상호 약속으로 남겨 두면 되는 것이다. 가계약이라는 말의 가벼운 유혹에 절대 속지 말고 진짜 계약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리 소액이라도 가계약금을 주고받을 때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