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라-리] 부산 도심 한복판에 광산? '금련산 80조 구리 매장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 미스터리 수사대 '날라-Lee'.

<부산일보> 독자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날라'주는 '이' 기자입니다.

갈고 닦은 취재 기술로 도심 속 미스터리를 파헤칩니다. 문득 '저건 뭐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주저 말고 제보해주십시오. 동네 어르신의 '전설 같은 이야기'도 언제든 환영합니다. 작은 제보가 거대한 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산 도심 한 산에 80조 원대 구리(Cu)가 매장돼 있다는 제보입니다.

최근 한 민간업체가 부산 수영구 금련산 한 광구를 탐사해 이를 확인했답니다.

지난해 4월 언론 보도가 나오자, 실제 금련산 구리 관련 종목 주가가 일시적으로 30% 급등하기도 했습니다.

취재팀은 금련산에 구리가 매장돼 있는지부터 살폈습니다.

수소문 끝에 수영구 망미동 한 산골에 구리광산으로 추정되는 동굴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민가를 따라 골목길을 쭉 올랐습니다.

산 중턱쯤 다다르자 마지막 민가입니다. 위로는 경사가 큰 비포장도로만 깔렸습니다.

200m가량을 더 걷자, 산 정상 바로 아래 한 사찰이 나타납니다. 언덕 위에 다시 언덕이 나타나는 2층 구조의 평지에 제법 크게 자리 잡았습니다.

등산객이 한둘 오갈 뿐 썰렁한 분위기.

취재팀은 언덕 계단 옆 의문의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으로만 봤던 그곳입니다.

실제 구리광산처럼 입구 양옆 돌들에 녹색빛이 비쳤습니다. 아치형 입구 구조물도 보입니다. 마치 인위적으로 깎은 듯 돌 모서리는 날카롭게 섰습니다.

생각해보니, 올라오는 길의 담벼락 돌들도 독특한 색감을 보였습니다.


내부는 '동굴법당'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스위치를 올리자 줄줄이 달린 전구 불빛이 켜졌습니다.

들어갈수록 폭은 좁아졌고, 허리를 굽혀야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천장이 낮아지기도 했습니다. 수십m 이어진 안쪽에는 원형 공간이 나옵니다. 그 위로 올라갈 수 있는 폭 좁은 시멘트 계단도 보입니다.

취재팀은 절 방문객으로부터 바로 위에 더 큰 동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언덕 계단을 오르니, 밑의 것의 규모와 비교할 수 없는 대형 동굴이 나타났습니다.

내부가 무너지지 않도록 곳곳에 말뚝이 박혔습니다.

20~30m 들어가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그 위는 '다락방'처럼 작은 공간.

계단 옆으로는 동굴법당용 마룻바닥이 나 있습니다. 동굴은 더 깊게 뚫려 있지만, 길은 막혔습니다.


80대로 보이는 한 주민은 이곳이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졌다고 증언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와서 저쪽(동굴 쪽)에 굴을 뚫고 왔다갔다 했지. 금을 캐내는가 동을 캐내는가 저 위에서 집도 짓고 하더라고…. 기억도 잘 안나."

다른 주민 의견도 엇비슷합니다. "어릴 때 여기(민가) 사람도 한 번씩 구경가고 그랬지. 내가 알기로는 일본인이 자기 나라에 돌아가고 나서도 누가 와서 계속 캤어요."

절 관계자 증언은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한 80년 전쯤? 일제강점기 때 파고 나서도 개인이 또 팠습니다. 주변에 집도 지어놓고요. 20년인가 30년 팠다던가? 동(구리)이 엄청 많이 나와서 부자가 됐다고 얘기 들었어요. 그 뒤로 우리가 엉망진창 된 굴을 법당으로 쓰려고 정비공사를 했습니다. 파내고 고치고 슬래브 치고…. 이전 굴 주인은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전문가에게 확인한 결과 금련산에는 구리광산이 존재했습니다. 1800년대 말~1900년대 초 일본에 의해 개발된 '근대광산'의 하나로 추정됐습니다.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조선총독부 자료 등 과거 기록에는 부산 곳곳의 역사광산(근대 이전)과 근대광산이 기록돼 있다고 합니다.

1917년 '조선총독부 지질조사서'에 따르면 옛 동래군 남면 광안리 계곡에 동광산이 있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금련산과 이어진 황령산 자락.

기록에는 '자철석, 황철석, 황동석 및 석영으로 구성돼 있으나 광량은 근소하다'고 적혔습니다. 부경대 박맹언 명예교수는 취재팀이 간 곳은 기록에 나온 굴은 아니지만, 구리광산이라고 합니다.

"황령산, 금련산 내 광산 여러 곳을 다녔지만, 이곳(취재팀이 갔던 굴)은 처음 봤습니다. 기록에도 없는 곳이지만, 사진으로 봤을 때는 구리광산이 맞습니다. 전체적으로 산화돼 있고, 구리에 의한 2차 산화물이 약간 녹색을 나타내고 있네요."

다만 전문가들은 구리 매장량과 개발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소음, 진동, 환경 훼손을 감당할 만큼의 가치 있는 광산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렇다면 80조 원 매장량은 어떻게 계산된 것일까요.

취재팀은 수소문 끝에 금련산 한 광구에 채굴권을 가지고 있다는 업체와 접촉했습니다.

회사 입장은 이렇습니다. 광업등록사무소에 채굴권 허가를 신청해 가로 20m, 세로 40m, 깊이 20m에 대한 표본조사를 벌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 3600t, 시가 253억 원 상당의 구리가 발견됐고, 이를 토대로 광구 전체 면적으로 볼 때 80조 원대에 달하는 구리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실제 허가를 받은 채굴권 서류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아직까지 80조 원 매장설은 예측에 불과합니다. 표본조사로 나온 결과를 곱한 단순 추정치입니다. 설령 80조 원이 묻혔다 하더라도 민가로 둘러싸인 도심 한가운데서 이를 검증하고, 채굴하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승훈·남형욱 기자 lee88@busan.com

촬영·편집=정수원·이재화 PD 정연욱·김서연 대학생인턴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