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산인지 몰랐다” 위험에 방치된 도금 노동자
부산 강서구 녹산산단의 한 도금업체에서 4년 넘게 일한 이주노동자 A 씨는 2년 전부터 온 몸에 붉은 반점이 생겼다. 아침에 가슴이 답답할 때면 얼마 전 다른 이주노동자 한 명이 ‘숨이 잘 안 쉬어진다’며 병원을 들락거리다 결국 귀국했던 일이 생각난다. A 씨는 “사업장에서 염산이 든 통을 수조에 부을 때는 숨을 꾹 참고 고개를 최대한 돌린다”면서 “그래도 손이나 팔에 튀면 벌겋게 달아올라 한 달간 벗겨진 피부가 쓰라리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녹산산단 도금사업장 조사 결과
30%는 취급 물질 모른 채 작업
유해물질에 노출돼 온갖 부작용
다른 도금업체에서 산 처리 공정을 하는 김 모(50대) 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최근 들어 부쩍 피로감과 가슴 통증에 시달린다. 옆 동료는 눈이 부쩍 건조하고 피부에 트러블이 생긴다고 했다. 금속에 묻은 산을 씻는 ‘수세’ 작업을 마친 뒤 고압 분사기를 뿌리면 산이 작업장에 흩날린다. 천정에 대형 배기시설이 있지만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때가 많다. 김 씨는 “불산, 질산이 위험하다는 건 알지만, 그 이상 자세한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산 강서구 녹산국가사업단지(녹산산단)의 도금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유해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3명 중 1명은 취급하는 물질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못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와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등 노동단체가 연대한 ‘녹산노동자희망찾기’는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 녹산산단 도금사업장 50곳 중 38곳에서 일하는 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 중 A 씨와 김 씨 등 7명은 심층 인터뷰에 응했다. 18일 공개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녹산산단 노동자들은 도금작업 전 산 처리를 위해 염산(24.6%)과 황산(22.2%) 등을 사용했다. 둘 모두 피부에 닿았을 때 화상을 입는 등 치명적인 유해 물질이다. 하지만 3명 중 1명(30%)은 취급물질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신체가 화학물질에 노출되거나 화재가 발생했을 때 대처 방법 역시 4명 중 1명(24.7%)이 모르는 상태였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유해물질을 다루면서 도금업체 노동자들은 다양한 부작용을 겪었다. 이들은 피로·현기증·두통·기억력 저하(20.8%)를 겪거나 피부 반점이나 발진(19.8%), 기침 호흡(16.8%) 등을 호소했다. 안전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응답자 4명 중 1명(26.9%)은 화학물질의 위험성에 대해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노동단체 측은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부산고용노동청에 제출하고 유해화학물질 취급사업장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다.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서부산지회 김그루 전략조직부장은 “노동청과 부산시는 도금사업장 노동자가 자신이 취급하는 화학물질의 위험 요인을 알고 대처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리 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배 기자 sangbae@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