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환상, 어항 속에 새로운 세계를 만들다
김기대 ‘아쿠아 유니버스’ 오픈스페이스배 22일까지 전시
부산, 창녕, 제주 계곡물과 진흙 섞어 새로운 세상 만들어
살아있는 생물들이 전시장에 나타났다. 어항 속에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졌다.
김기대 작가의 전시 ‘아쿠아 유니버스(AQUA UNIVERSE)’가 22일까지 부산 중구 동광동 오픈스페이스배에서 열린다. 부산 출신인 김 작가는 경영학 공부를 접고 미대 조소과에 다시 진학했다. “난독증이 있어서 오타를 내고 계산 오류가 발생하는 등 공부할 때 고생을 좀 했습니다.” 김 작가는 자신에게 난독증이 있다는 사실을 30대가 되어서야 알았다고 했다.
“어릴 때 꿈과 현실, TV에서 본 것들이 뒤죽박죽 섞여서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어요. 뒷산에 아나콘다가 있다고 믿거나, 대나무숲에서 해골을 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누가 흰 휴지를 쌓아둔 것이었다든지 여러 일들이 있었죠.” 이 때문에 김 작가는 어른들에게 ‘이상한 아이’ 취급을 받기도 했다.
난독증 대신 김 작가에게는 남들보다 뛰어난 공간 인식 능력이 주어졌다. 작가는 그 능력을 활용해 새로운 우주를 창조했다. 부산의 계곡물, 창녕 우포늪의 진흙, 현재 거주하는 제주의 흙 등을 하나의 어항에 넣었다. 어항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가 되고, 그 안에서 순환했다. 처음 진흙을 넣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논고동, 논달팽이, 민물새우 등이 깨어났다. 한때는 물벼룩이 많았는데 뒤에 게아재비가 번식하며 그 숫자가 줄어들기도 했다.
김 작가는 “어항은 공간을 분리해서 그 속의 세계를 관찰하게 만든다”며 “동시에 유년기의 기억을 저장하는 매개체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어항 속에 스파이더맨, 곰, 사냥꾼 등 작은 미니어처를 함께 넣어 유년시절 자신의 기억과 환상을 은유적으로 들춰낸다.
오픈스페이스배 맞은편에 위치한 공간 ‘안녕, 예술가’에는 아예 횟집에서 보던 수족관이 전시된다. 전시 초기에는 횟집에서나 보던 물고기들이 수족관 안을 유영했다.
“지나가던 주민들이 여기 횟집 차리느냐고 질문도 많이 하셨어요. 물고기들을 잘 관리해서 전시가 끝나면 자연으로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중간에 상태가 나빠지기 전에 방생을 했습니다.” 지금은 수족관 안에 생선 모형만 넣어뒀다.
2층 전시장에는 거미를 관찰하는 어항이 있다. 3층에는 큰 방안에 작가가 바닷가에서 주운 수집품 같은 것들이 놓여 있고, 해수와 민물 플랑크톤을 촬영한 영상이 상영된다. “이 방이 하나의 거대한 어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관람객은 이 속에서 분리된 기억과 환상의 영역을 유영하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김기대 개인전 ‘AQUA UNIVERSE’=22일까지 오픈스페이스배. 051-724-5201.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