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고양이] 시멘트 바닥과 유리 벽에 갇힌 동물들
좁은 우리 안에 전시된 동물원 동물들
코로나19 이후 폐업·부실 운영 이어져
동물원법 뒤늦게 제정했지만 갈 길 멀어
지난해 종합 계획 수립, 복지 향상 기대
*'편집국 고양이-동물동락 프로젝트'는 <부산일보> 4층 편집국에 둥지를 튼 구조묘 '우주'와 '부루'를 통해 사람과 동물이 함께 행복한 사회를 그리는 기획보도입니다. 우주와 부루의 성장기를 시작으로 동물복지 현안과 동물권 전반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어릴 적 TV에서 본 사자는 드넓은 초원을 거닐었습니다. 호랑이는 깊은 산속을 어슬렁거리고요. 코끼리와 사슴은 무리를 지어 이동하고, 북극여우는 흰 눈밭 위를 뛰어다녔습니다. 여러분이 본 동물들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초여름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지난달 31일, 기자는 경남의 A동물원을 찾았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동물들은 시멘트 바닥에 누워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습니다. 북극여우는 더위에 지친 듯 미동도 없고, 10평 남짓해 보이는 좁은 전시장을 백호 두 마리가 공유했습니다. 더 좁은 공간에 혼자 놓인 흑표범은 활동량이 성에 차지 않는 듯, 자꾸만 전시장을 맴돌았습니다. 홀로 전시 중이던 수사자는 기침에 가까운 포효를 하더니 철퍼덕 바닥에 누웠습니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알파카, 기니피그, 사막여우는 ‘먹이주는 곳’에 연신 얼굴을 들이밀며 먹이를 갈구했습니다. 어린 아들과 함께 동물원을 찾은 부부는 “동물들이 너무 안 됐다”며 혀를 찼습니다. 어린 아들은 신난 듯 보였지만요.
다른 동물원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코로나19로 관람객이 줄면서 동물원 운영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대부분 동물원이 전시 규모와 운영 기간을 축소하고, 인력을 줄이는 등 궁여지책에 나섰습니다. 폐업하는 곳들도 줄을 이었습니다. 지난 2월에는 폐업한 대구 B동물원의 모습이 고발되기도 했죠. 당시 고드름이 빽빽한 우리 안에 방치된 원숭이 사진이 공개되자 공분이 일었습니다.
2019년 환경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는 총 110개의 동물원이 있습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영동물원은 20곳, 민간동물원은 90곳으로 조사됐습니다. 동물원‧수족관 법은 보유하고 있는 동물이 10종이 넘거나, 동물이 50개체 이상일 경우 등록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동물원을 찾는 관람객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데요. 1980년 약 465만 명이던 관람객은 2000년에 1580만 명으로 3배 이상 늘었습니다. 2019년 관람객은 3465만 명. 전체 인구수 대비 66.8%가 동물원을 찾았다고 합니다.
동물원을 찾는 이들은 신기한 야생 동물을 눈앞에서 보는 것을 기대합니다. 특히나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TV나 책에서만 보던 동물을 직접 보여주고 싶은 마음일 겁니다. 실제 2012년 동물원의 기능에 대한 인식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들은 ‘교육 기능’을 가장 높게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동물보호단체나 전문가들은 지금의 동물원은 ‘교육적이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밀림이나 초원에 사는 야생 동물들이 시멘트 바닥과 유리벽 안에 갇힌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과연 교육적이냐는 지적이죠.
동물보호단체 라이프의 심인섭 대표는 “교육적 측면, 종 보호 측면에서 동물원이 필요하다는 것도 동물원 옹호론자들의 논리다. 지금은 영상이나 VR 등으로 충분히 동물을 볼 수 있는 시대다. 특히 우리나라 동물원은 근친 교배 등으로 인해 종 보존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않을뿐더러, 동물 습성을 고려하지 않은 동물원이 대부분이어서 교육적이지도 않다”며 일침을 가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동물원 동물 중 대다수가 야생동물이 아닌 동물원에서 번식된 개체라고 말합니다. 야생동물을 잡아다 가둔 게 아니라는 거죠. 물론 사람의 손을 탔다고 해서 동물적 본능이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외국의 동물원은 동물의 실제 서식 환경과 비슷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넓은 초원에 기린과 코뿔소 등이 함께 무리를 짓고 살도록 동물들을 풀어놓습니다. 기린을 눈앞에서 볼 수는 없지만, 실제 기린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동물원은 아직도 1세대 ‘콘크리트 감옥’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사파리 형태에 넓은 공간을 확보한 동물원도 있지만, 대부분은 좁은 우리 안에 동물을 가둔 형태입니다.
왜 이런 상황이 반복될까요? 누구나 동물원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6년 전까지만 해도 동물원 관련 법이 전무했습니다. 동물원에는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경우가 많아, 야생생물법이 적용돼 왔죠. 하지만 이는 전시 동물만을 위한 법이 아니기 때문에 동물원과 관련한 법은 미비한 실정이었습니다.
2016년에서야 동물원‧수족관법이 제정되면서 그나마 제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허술한 법망이 2018년에서 재정비되기 했지만, 이또한 구체적인 지침이 없는 ‘껍데기’라는 지적이 일었습니다.
지난해 드디어 구체적인 계획이 나왔습니다. 환경부는 ‘제1차 동물원 관리 종합계획’을 발표했는데요. 누구나 등록만 하면 운영할 수 있던 등록제를 허가제로 바꿀 계획입니다. 동물원을 허가할 때는 사육 환경이 적절한지 전문적으로 평가하는 전문 검사관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국립생태원이나 국립생물자원관 등 관련 업계 전문가들이 검사관으로 투입됩니다. 또 먹이 주기, 만지기 등 체험도 몇몇 종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기로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찾아가는 동물원’과 같은 이동 전시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더 나아가 동물원 선진화를 위해 권역별 거점 동물원을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권역별로 거점 동물원을 지정해 제대로된 환경에서 동물들이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거죠. 영국 런던동물원이나 체스터동물원, 미국의 샌디에고동물원, 브룩필드동물원 등이 선진 사례로 꼽혔습니다. 환경부는 이 계획을 바탕으로 세부적인 지침을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동물원법 제정과 개정에 참여해온 (사)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환경부 종합계획을 반기면서 “지금까지는 누구나 어디에서든 동물원을 운영할 수 있던 구조였다. 허가제, 검사관제 등을 도입한 점에서 큰 변화라 생각한다”면서 “계획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 모든 관계 기관이 끝까지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부산에도 동물원이 있죠. 지난해 4월, 부산 어린이대공원에 있던 더파크가 문을 닫았는데요. 운영사인 삼정기업은 사업 철수 의사를 밝히며, 부산시에 동물원 매입 약속을 지켜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앞서 시는 2012년 ‘운영사가 매각 의사를 보이면 최대 500억 원으로 동물원을 매입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동물원 부지 중 재산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협약 이행에 난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삼정기업과 시는 동물원 문제를 두고 법적 다툼까지 벌이고 있는데요. 더파크는 1년이 넘도록 휴업 상태. 아직 폐업 신청을 하지 않아 올해 중 임시 개장을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앞으로 더파크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현재는 최소 인원인 14명의 사육사가 남아 동물들을 평소처럼 돌보고 있다고 하는데요. 사료비나 전기·수도요금 등은 기존 운영사인 삼정기업에서 지급하고 있습니다. 관람객이 없는 덕분(?)인지 동물들은 이전보다 더 편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더파크 관계자는 “염소 등 가축 몇 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동물원에서 지내고 있다. 동물들이 사육사들만 만나서인지 관람객을 받을 때보다 동물복지 차원에선 더 나아졌다. 번식도 이전보다 더 활발히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더파크 주인이 누가 되든, 보호하고 있는 동물들에 피해가 가지 않길 기대해봅니다.
마지막으로 편집국 고양이들 소식 전해드립니다. 지난달 28일은 우주와 부루가 김해 불법 번식농장에서 구조된 지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태어난 날을 정확히 모르는 터라 편집국 집사들은 구조된 날을 생일로 정했는데요.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날을 축하하는 의미입니다. 편집국에서 새로운 묘생을 시작한 우주와 부루처럼, 이 땅 위의 동물들이 고통에서 해방되길 기원합니다. 우주와 부루의 생일 파티 영상은 유튜브 <부산일보> 채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영상·편집=장은미 에디터 mimi@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장은미 기자 mim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