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광의 지발도네(Zibaldone)] 16세기 말라카와 21세기 부산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2006년 1월이었다. 나는 말라카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세인트폴 성당의 폐허 위에 서 있었다. 자연스럽게 망망대해 너머로 최초의 포르투갈인들이 도착하는 장면을 그려 봤다. 먼 기억처럼 떠오르는 익숙한 상상이었다. 전인미답의 해변에 최초의 유럽인들이 상륙한다는 서사는 어린 시절부터 닳도록 들었다. 그러나 당시 이런 익숙함은 말라카의 시립박물관을 방문하면서 산산이 깨져 나갔다. 입구에 16세기 말라카를 그린 상상도가 걸려 있었고, 그 그림이 보여 주는 광경은 앞서 내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그 해변의 모습이 아니었다. 포르투갈인들이 도착한 그 해변은 이미 상점과 사원으로 가득한 번화가였다. 중국인 인도인 말레이인 일본인 고려인인 듯 보이는 온갖 물색의 아시아인들로 장사진을 이룬 시장의 정경이 그림에 펼쳐져 있었다. 물론 당시에 그 그림이 보여 주는 이들은 자신들을 아시아인이라고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유럽인 발견 이전부터 교역의 공간
아시아 없었다면 서구의 번영도 없어
해양 네트워크야말로 부산의 정체성
탈근대의 혼종성을 논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말라카에서 발견한 그 상상의 16세기는 오늘날 목격하는 혼종성 자체를 보여 줬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과 달리, 포르투갈인들은 아무도 없는 해변에 도착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 해변은 서로 다른 문물들이 왕래하던 교역의 장소였다. 그때 이후 내 관심은 유럽과 아시아의 만남으로 옮겨 왔고 틈틈이 관련 서적들을 찾아보았다. 지난 역사를 다시 살펴보면, 동양과 서양이 지금처럼 확연하게 나눠진 것은 유럽의 식민정책 때 이후이다. 그 식민정책이란 것도 유럽이 민족국가로 쪼개져서 본격적으로 힘겨루기를 시작하면서 앞다투어 등장했다. 로마제국이 아닌 지역을 지칭했던 ‘아시아’라는 명칭은 이 과정에서 중국의 붕괴 이후 정체성을 상실한 중화권을 지칭하는 용어로 재탄생했다. 이런 의미에서 아시아라는 명칭은 전혀 이 지역의 정체성과 관계없는 자의적인 지정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유럽 제국주의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아시아주의를 내세웠던 일본은 민족국가의 모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자신들이 비판했던 제국주의로 치달아, 감당할 수도 없는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럼에도 전후 냉전의 구도는 패망한 일본을 다시 부활시켜서 아시아를 양분했다. 한때 공통의 무역권으로 통합되어 있던 ‘아시아 지중해’는 제국주의에 의해 분열되었던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다시 서방세계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리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아시아라고 부르는 지역들은 유럽의 제국주의에 대항해서 아시아 지식인들이 만들고자 했던 새로운 아시아와 동떨어진 글로벌 자본주의의 ‘공장’과 ‘인력시장’으로 기능하고 있을 뿐이다.
16세기 포르투갈인들이 당도했던 그 아시아의 번영이 없었다면, 지금의 유럽이 가능했을까?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 이후 값싼 노동력과 원자재, 그리고 역동적 시장을 제공했던 아시아가 없었다면 전후 자본주의의 재건과 글로벌 자본주의의 구축이 가능했을까? 지금 현재 더욱 첨예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이미 1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런 갈등이 지속되고 있었던 셈이다. 지금의 중국을 만든 원인은 다른 무엇도 아닌 글로벌 자본주의이다. 값싼 중국의 노동력과 시장, 그리고 놀라운 기술 향상은 글로벌 자본주의를 먹여 살린 양분이었지만, 동시에 그 법칙을 내부로부터 붕괴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밝혔듯이, 미국이 구축하려는 신냉전의 구도는 중국을 적으로 규정하고 소멸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전후 미국 중심의 동맹관계를 정비해서 중국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중국을 잃는다는 것은 결국 지금 현 상태의 붕괴를 의미하고, 결코 득이 될 수 없는 선택이다. 거시적 차원에서 본다면, 이 글로벌 자본주의 자체가 지속적인 지정학적인 견제와 관리의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선정적인 수사학으로 치장하곤 있지만, 지금 현 상태의 유지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조를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기조를 놓아 버리는 순간, 지금 현재의 기득권들은 더 거대한 혼란과 위기에 직면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과거처럼 전쟁이라고 한다면, 운 좋게 이룩했던 전후의 번영을 그라운드 제로에서 다시 이룰 수 있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부산 해운대에서 보던 그 바다의 물결이 말라카의 물결과 하나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타이완의 가오슝 앞바다를 따라 수많은 상선들이 오가는 이 해양의 네트워크가 아시아의 정체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도쿄와 서울, 그리고 베이징을 잇는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비껴 나 있는 부산이 이런 평화와 협력의 해양 네트워크와 접속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되는 상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