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뿐인 삼도수군통제영 사직단 위치·규모 가늠할 흔적 찾아냈다
토지·곡식 神께 풍년과 평안을 기원하던 제례 공간
향토사학계, 옛 통영군청 야산서 석축·기와편 발견
고성현과 별도로 사직단 설치 역사·군사적 의미 커
조선 시대 경상·전라·충청 3도 수군 본영이 있던 경남 통영에서 한해 풍년과 평안을 기원하던 ‘통제영 사직단(統制營 社稷壇)’의 구체적인 위치와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흔적이 발견됐다. 그동안 기록으로만 전해져 온 국가 중요 시설의 실체를 규명해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특히 규모 면에서 최근 복원된 부산 동래 사직단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17일 통영시 향토사학계에 따르면 도천동 옛 통영군청 뒤 야산에서 통제영 사직단으로 추정되는 제단 터와 담장 석축 그리고 지붕에 얹었던 기와편 여러 장이 출토됐다. 사직단은 토지의 신(神)인 ‘사(社)’와 곡식의 신 ‘직(稷)’에게 제사를 지냈던 제례공간이다. 과거 삼도수군통제영에선 행정 소재지인 고성현과는 별도로 사직단을 설치하고, 통제사가 직접 풍년과 평안을 기원했다. 이는 통제영 사직단이 갖는 특이성이자, 당대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역사적·군사적 의미가 남다르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단서라곤 1934년 발간된 「통영군지」에 ‘사직단은 통영 해운대(統營 海雲臺)의 동쪽에 있었다’는 기록이 사실상 전부였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엔 종묘를 동쪽에, 사직을 서쪽에 조성하는 ‘좌묘우사(左廟右社)’를 적용했다는 점에서 통제영 서쪽에 있었을 것이란 추측은 가능했다.
여기에 김세윤 전 통영문화원장은 생전 “옛 통영군청 혹은 비치호텔 뒤로 보이는 야산이 ‘해운대’”라고 증언했었다. 실제로 이 주변에는 ‘진양강공비석(晉陽姜公碑石)’이 있는데, 비문에 ‘고성현 춘원면 천동촌 후 해운대(固城縣 春元面 泉洞村 後 海雲臺)’에 묘소를 세웠다고 기록돼 있다.
이를 토대로 임학종 전 김해박물관장과 최헌섭 두류문화문화재연구원장, 팬저의 국방여행 운영자 조현근 씨, 김용재 통영길문화연대 대표, 김상현 통영인뉴스 대표가 현장 조사에 나섰다. 이를 통해 남-북, 동-서 방향으로 배치된 제단과 이를 둘러싼 석축 그리고 기와편까지 찾아냈다.
임학종 전 관장은 “기와 조각이 관건인데 이번에 여러 장이 발견됐다. 사직단 터임이 확실하다”고 자신했다. 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장도 “1970~80년대 조성한 울창한 삼나무숲으로 인해 얼핏 ‘원형’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직단의 전형적인 ‘사각형’ 형태”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행정에서 지표조사만 해도 기단시설과 유구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성곽 등 역사시설 전문가인 조현근 씨는 최근 발견 조사된 함안 사직단과 앞서 복원이 완료된 부산 동래 사직단 사례를 들며 통제영 사직단의 규모를 가늠했다. 함안 사직단은 중심 제단이 높이 3척(0.93m), 길이 25척(7.81m)이고 내부 담장인 유(壝)가 75척(24.43m)에 이른다. 여기에 외곽 담장인 장(牆)이 둘러친 형태다. 조 씨는 “복원된 동래 사직단 규모가 상당하다. 통제영 사직단은 함안은 물론 동래보다도 컸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용재 대표는 “창녕과 산청 단성 사직단은 이미 복원을 마쳤고, 진주와 고성은 터만 있는데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이중 단성 사직단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제111호)로 지정돼 매년 사직제를 봉행하고 있다”면서 “통영시도 조사, 복원사업을 서둘러 역사적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