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하지와 장마
21일은 하지(夏至)다. 흔히 이날을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밤은 제일 짧은 천문 현상의 하나로 이해한다. 그렇지만 전통 농경사회는 하지가 포함된 24절기를 농사일의 기준이 되는 날로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는 비가 잦은 장마철과 시기가 겹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5~6월 모내기 후 하지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곤 했다. 기우제는 마을의 주술적인 민간 풍습에서부터 왕이 주관하는 국가적 제례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하늘에 강우를 기원하는 중대한 행사였다.
이젠 과학기술 발달 덕택에 강우의 원리를 알게 돼 인위적으로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 1946년 미국이 세계 최초로 인공 강우 실험에 성공했다. 현재 우리나라와 러시아, 일본, 중국 등이 가뭄이나 미세먼지 해소를 위해 관련 연구와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실용성과 경제성을 확보한 단계는 아니다. 인간이 자연 현상인 강우를 완전히 통제하는 수준에 이르진 못한 것이다.
일기예보도 마찬가지다. 슈퍼컴퓨터 도입을 통해 예보의 정확도를 현저히 높인 지금도 이상 기후에 따른 국지성 집중호우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기상청이 지구온난화로 기상 이변이 빈발하자 2009년부터 공식적인 장마 예보를 하지 않을 정도다. 기상청은 변동성이 큰 장마 기간 일기예보에 늘 조심스러운 눈치다. 지난해 건조하고 무더운 여름을 예보했다가 크게 빗나가 ‘오보청’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같은 해 6월 24일 시작된 장마가 8월 16일까지 무려 54일 동안 유례없이 이어져 엄청난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을 낳은 까닭이다.
지난해 장마와 호우로 46명이 숨지고 1조 2585억 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피해(14명, 3883억 원)의 3배가 넘는 규모다. ‘3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는 못 견딘다’는 속담을 절감할 만큼 혹독했다. 부산에선 차량 6대가 갇혀 3명이 숨진 초량 지하차도 침수와 도심 동천의 두 차례 범람 사태가 일어났다. 재발해선 절대 안 될 참사다.
6월 들어 비 내린 날이 많았으나, 아직은 장마가 아니다. 당초 하지를 전후해 시작될 것으로 보였던 제주와 남부지방 장마는 예년보다 1~2주 늦은 이달 말께 본격화한다는 게 기상청의 새로운 전망이다. 올해 역시 강수량은 지역차가 크고, 국지적으로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한다. 감당하기 힘든 물 폭탄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지긋지긋했던 작년 장마철 기억을 바탕으로 재해 대비를 철저히 하고 비상 대책도 잘 세워 안전하고 평온한 여름을 나기를 바란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