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수도꼭지·샤워기… 여름철 ‘레지오넬라증’ 주의보
에어컨 사용이 늘어나는 여름, 냉방병보다 더 조심해야 할 질환이 있다. 레지오넬라증이다. 올해 질병관리청 호흡기감염병 관리지침에 따르면 레지오넬라증 신고수는 2006년 이후 20∼30명 수준을 유지했으나, 2019년엔 501건이나 신고되며 최근 급증하는 추세다. 올해 5월엔 전북에서 레지오넬라증 환자 2명 중 1명이 사망한 보도도 나왔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8000∼1만 8000명이 감염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레지오넬라증은 미국에서 최초 보고된 감염증으로, 국내에서는 2000년부터 제3군 법정감염병으로 지정됐다. 제3군 법정감염병은 질병 발생을 계속 감시할 필요가 있어 발생 또는 유행 때 24시간 이내에 신고해야 하는 감염병이다. B·C형간염, 일본뇌염, 말라리아, 비브리오패혈증, 쯔쯔가무시증,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등 26종이 이에 해당된다.
비말 형태 호흡기 통해 전파
66도 이상에서 2분 내 사멸
고온 스팀 소독하면 예방 효과
폐렴형 잠복기는 2~10일
합병증으로 사망 초래할 수도
당뇨환자·고령자 발병률 높아
■냉방기·공기청정기·샤워기 통해 감염
레지오넬라증은 레지오넬라균에 의한 호흡기 박테리아 감염 질환이다. 초기엔 냉방병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오염된 물속의 레지오넬라균이 비말 형태로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흡입돼 전파되며, 사람 간 전파는 없다.
레지오넬라균은 호수, 온천수, 강 등 담수에서 서식하고 일부는 토양에서 발견되나, 자연환경에서는 감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온수 시스템, 냉·난방 시스템, 냉각탑 등 인공적으로 물을 저장하거나 사용하는 시설이 레지오넬라균의 농도가 높게 유지되기에 적합하다. 이 때문에 레지오넬라균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에어컨, 공기청정기, 가습기, 호흡기 치료 의료기기 등을 오염시키며 노후 샤워기, 수도꼭지 등에서도 발견된다.
2015년 다중이용시설별 레지오넬라균 검출 현황을 살펴보면 평균 약 7% 정도 균 검출률을 보였다. 백화점과 대형쇼핑센터, 대형목욕탕, 대형건물, 찜질방, 종합병원에서 평균치보다 높은 검출률을 기록했다.
대동병원 호흡기전담클리닉 이규민 과장(호흡기내과 전문의)은 “보통 더위가 시작되는 5월말부터 9월 사이 다중이용시설 이용자가 에어로졸을 통해 박테리아를 흡입하게 돼 감염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성별로는 전체 환자 중 남자가 60% 이상, 연령별로는 50세 이상이 70%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폐렴형 진단 땐 항생제 치료
레지오넬라증은 폐렴형(레지오넬라 폐렴)과 독감형(폰티악 열)으로 나뉜다. 폐렴형은 2∼10일 잠복기를 거친 후 발열, 기침, 두통, 오한, 전신 권태감, 근육통 등 증상이 나타난다. 심한 경우 호흡곤란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독감형의 경우 대부분 24∼48시간 잠복기 후 초기 독감과 비슷한 발열, 근육통, 오한 등을 호소하는데, 대부분 일주일 이내 자연적으로 회복된다.
레지오넬라증 진단은 혈액, 호흡기 분비물, 폐조직 등에서 검체를 채취해 레지오넬라균 검사를 하거나 소변에서 특이 항원 검출을 통해 가능하다. 폐렴형으로 진단되면 항생제 치료를 시행한다. 평균 10∼14일 치료하면 완치 가능하지만 환자의 면역 상태나 폐농양, 호흡부전, 저혈압, 농흉 등 합병증 유무에 따라 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 독감형은 증상을 조절하는 치료를 한다.
이규민 과장은 “더위가 시작되면서 그동안 사용하지 않던 에어컨이나 수돗물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은 에어컨 속 냉각기나 노후된 수도 등에 레지오넬라균이 서식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랜만에 사용한다면 에어컨 필터, 수도꼭지 등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이 과장은 “에어컨은 작동한 후 5분 정도 환기를 해주고 3∼4시간마다 창문을 열어 환기해 줘야 한다. 특히 차량의 경우 밀폐된 환경에서 호흡기 감염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 환기와 필터 관리에 더욱 신경쓸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환기·수도시설 자주 소독해야
레지오넬라증은 당뇨, 신부전, 만성폐질환자, 50세 이상 고령, 흡연자 등 면역력이 저하된 감염 고위험군에서 발병률이 높다. 특히 주요 증상이 독감이나 코로나19 증상인 발열, 기침, 두통, 몸살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호흡기내과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레지오넬라증 예방을 위해서는 시설관리도 중요하다. 지역 내 다중이용시설 등에 대해 주기적인 예방 교육과 환경 소독이 필요하다. 냉각탑과 급수시설, 에어컨 같은 환기·수도시설엔 염소 처리, 고온살균, 자외선 조사, 오존 처리 등 소독을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좋다. 환경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레지오넬라균은 66℃이상에서 2분 내에 사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가정에서도 고온 스팀 등을 이용해 소독해 주면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