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이야기와 기억을 새기고 깎아내다
안봉균 작가 개인전, 30일까지 갤러리마레
로제타스톤 모티브…텍스트와 이미지 관계 표현
생명체로 시간성 더해, 우연적 자연스러움 개입
캔버스에 이야기를 새기고 깎아낸다. 비석처럼 마모된 이미지 위에 작은 생명이 머문다.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예술로 발현하는 안봉균 작가의 개인전이 부산 해운대구 중동 갤러리마레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기간은 30일까지.
안 작가는 대리석 분말이 바인더와 섞인 모델링 컴파운드로 캔버스에 배경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바탕 화면 위에 나이프를 이용해서 음각 또는 양각으로 글자를 새기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다시 착색을 하고 여러 단계로 깎아내며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그의 작업 ‘모뉴먼트(Monument)’ 시리즈는 나일강 하구에서 발견된 로제타스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이미지의 홍수 시대에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서 보태는 것에서 의미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글자만 빼곡한 로제타스톤이 울림을 주는 이미지로 와닿더군요.”
세월에 마모된 오래된 비석이나 목판이 인류의 기억을 품고 있는 것처럼 캔버스 위에 텍스트를 새기고 깎는 작업. 안 작가는 벌써 20년 가까이 되어간다고 했다. “처음에는 색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테크닉이 좋아져서 작품에 아름다움을 더할 수 있게 됐죠.” 텍스트만 쓰다가 이미지를 오버랩시켰고, 텍스트 위에 생명체를 그려 넣는 식으로 작업이 발전해나갔다.
이번 전시 작품에는 시 ‘그리운 바다 성산포’, 소설 ‘소나기’, 제갈공명의 ‘출사표’ 등이 텍스트로 사용됐다. 나비, 조개, 소라, 청개구리 등이 글자 위에 머문다. “나비나 조개 등에 대해 우리 모두 추억이 있잖아요.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때론 작은 생명체들이 이동하며 글자를 지우기도 한다. 생명체의 궤적 만들기를 통해 시간성이 생긴다.
비석에 새겨진 인간의 역사를 자연이 지우는 것 같은 표현에 대한 해석은 관람자의 몫이다. 최신작에서는 나비나 조개 모양 안에 풍경을 그려 넣었다. 작은 공간 속에 드넓은 자연이 펼쳐진다. “초현실적 공간을 넣어서 확장하는 작업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의도죠.”
다시 바탕 텍스트 작업으로 돌아가서 안 작가는 수많은 색점을 찍은 위에 3~4단계로 색을 올리고 깎아내는 작업을 통해 더 풍성한 색을 드러낸다. 그는 “깎아낸 정도의 차이에 따라 작품 색이 달라지는데 화이트 톤의 작업일수록 더 많이 깎아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팔레트에서 색을 만들어서 올리면 2% 부자연스러움이 있어요. 색점을 찍어서 깎는 과정에서 우연이 개입되죠. 의도를 벗어남으로 인해서 자연스러움을 얻는 것이죠. 제 작품에 사용된 색이 많은데 푸근한 느낌을 주는 이유입니다. 최종적인 것은 자연스러움을 개입시키는 것입니다.”
▶안봉균 개인전=30일까지 갤러리마레. 051-757-1114.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