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청년 지원하는 촘촘한 사회안전망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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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올해 1월, 졸업을 앞둔 제자의 부고를 접했다. 매서운 한파에 집의 수도가 얼었고, 종일 아르바이트 하느라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목욕탕에 갔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했다. 그때 알게 됐다. 높은 감염위험에도 집에 목욕 시설이 없거나 온수가 나오지 않는 이들이 있어 목욕탕을 닫을 수 없다는 사실을. 공식적인 사인은 심장마비지만, 진짜 사인은 가난이라는 진실을. 질병, 사고라는 공식적 사인 밑에 가난하고 불안정한 삶이라는 진짜 사인이 감춰져 있는 죽음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을까.

취업난·우울증 청년 고독사 늘어

코로나19 장기화로 생활고 극심

청년 표 의식한 듯 정치 행보 주목

단순·일률적 해법 제시는 아쉬워

통계 구축, 지원 사각지대 줄이고

통합 지원·지방정부 역할도 기대

최근 취업난, 우울증,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청년 고독사가 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2020년 20, 30대 무연고 사망자 수가 100건에 이른다고 한다. 연고자가 있어도 홀로 죽음을 맞고 나중에 발견되는 고독사는 공식적 통계조차 없어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마저도 청년 고독사는 원인 분석도 더디고, 대책 마련도 미흡한 실정이다. 원룸이나 고시텔에서 생활하면서 취업난, 생활고로 스트레스와 압박, 사회적 관계 단절을 경험하고, 우울감과 무력감, 사회적 체념으로 이어져 자살에 이르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청년 고독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청년의 고독한 죽음 뒤에는 고단하고 고립된 생(生)이 놓여 있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청년 실업과 생활고 악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2021년 초, 36시간 미만 단시간 근로, 구직포기자 등을 포함한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27%에 달한다. 얼어붙은 채용시장 상황 속에서 반복된 취업 실패를 경험하면서, 수많은 청년이 구직 의욕을 상실하고 있다. 2020년 기준 학업도, 일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15~34세 청년 니트(NEET)는 약 53만 명(10.4%)에 달했다.

코로나 상황의 장기화는 극심한 생활고로 이어지고 있다. 2018년 가처분소득 기준(국가인권위원회 조사) 청년 1인 가구 빈곤율은 19.8%였다. 코로나19 이후 청년의 빈곤 상황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실태 파악이 시급하다. 올해 초 국토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 1인 가구의 65.5%가 월세 거주자였고, 31.4%는 주거비가 월 소득의 30% 이상인 주거비 과부담 가구였다. 올해 초, 국제구호단체인 기아대책의 저소득 대학생 식비 지원 사업(150명 최종 선발)에 1600명이 몰렸다는 기사는 청년 결식과 빈곤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 주었다.

그간 우리 사회는 청년은 건강하고 자립적, 독립적이라는 사회적 인식으로 청년의 어려움을 외면해 왔다. 이제 청년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성인기로의 이행을 지원하고 안정적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 청년의 불안정한 삶은 독립의 지연, 노후 빈곤까지 이어질 수 있다.

현재 청년 지원은 초미의 정치적, 정책적 관심사가 되었다. 대선을 앞두고 주요 후보자들은 앞다퉈 청년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어떤 후보는 기본소득을, 어떤 후보는 기본자산을 지급하겠다 한다. 청년의 삶에 주목하고, 정책 지원 대상 밖에 밀려나 있던 청년을 정책 영역 안으로 포함하고자 애쓰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복합적인 청년 문제를 해결하고, 청년 집단 내부의 격차를 완화하고 불안정하고 고단한 청년의 삶을 보장하기에는 제시된 해법들이 단순하고 일률적이어서 우려스럽다.

전 사회적으로 소득, 자산 불평등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청년은 단일한 집단으로 보기에는 그 격차가 너무 크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기회와 경험의 격차가 큰 현실 속에서, 모든 청년에게 동일한 소득, 자산을 보장하는 것이 세대 간, 세대 내 격차를 줄이는 데 얼마나 효과적일지, 소위 가성비가 높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현재 취업난, 불안정한 고용, 생활고 속에서 힘겨운 청년의 삶을 지원하는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우선 기존의 빈곤 정책, 주거정책,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의 정책에서 청년이 배제되지 않도록 면밀하게 살펴 구조적 사각지대를 줄여 나갈 필요가 있다. 증가하는 플랫폼노동, 프리랜서까지 포괄하는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청년의 고용-교육-복지를 아우르는 통합적 지원정책과 전달체계가 필요하다. 청년의 성인기 이행과 생활 안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청년 빈곤, 고독사, 니트 청년, 은둔형 외톨이 등의 문제는 일자리에 한정되지 않는, 수당 지급으로 그치지 않는, 교육, 훈련, 취업 연계 멘토링, 소득지원, 주거지원, 심리상담, 정신건강 지원까지 결합한 지원이 필요하다. 이때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하다. 정책 수립과 시행 과정에 다양한 청년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하고, 청년을 둘러싼 불평등과 격차 상황을 드러내는 통계를 구축해 증거에 기반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그 밑바탕에는 청년을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깔려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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