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치열해질까 공모 안 해. 탈락하면 지역 허탈감 더 클 것”…황희 장관 황당 발언
서울 용산구와 종로구 송현동 부지로 최종 압축
위원회 구성 기준 모호 지적·‘공모제’ 배제 비판 나와
황희 “행정력 등 여러 비용들 것 예상돼 공모 배제”
정부가 ‘이건희 기증관’(가칭) 후보지를 서울 용산구와 종로구 송현동 부지로 압축한 가운데 선정 과정에 형평성과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체부가 자체적으로 구성한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의 인사 기준이 모호해 문화계의 비판을 받는 데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공정한 검토를 위해 건의한 공모제를 배제하고 부지 논의를 진행해서다. 또 이 과정에서 유치를 희망한 지자체의 의견 수렴 등 별도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문화정책 주무기관의 수장인 문체부 장관조차 지역 문화 이해가 결여된 발언을 내놓아 지자체와 지역 문화계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국가 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방안’을 발표했다. 황 장관은 이날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가칭)의 논의를 거쳐 부지를 선정했다며 “(지역의) 행정력이라든가 여러 가지 비용이 들고, 지방의 유치 열망과 경쟁이 더 치열할 것 같아 공모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김영나 서울대 명예교수를 위원장으로 한 위촉직 7명과 국립중앙박물관장 등 당연직 위원 4명으로 구성한 위원회를 이날 언론에 공개했다.
문체부는 4월 28일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 측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2만 3000여 점의 문화재와 미술품을 기증한 이후, 미술관 건립 등을 검토해왔다. 올 5월 박형준 부산시장이 부산 북항에 이건희 기증관을 유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뒤 전국 30여 곳의 지자체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박 시장은 문체부에 공정한 검토를 요구하며 미술관 건립을 공모 방식으로 추진해달라고 건의한 바 있다.
황 장관은 “(공모를 해서) 어느 지방이라도 되면 좋은데 공모 결과 안 됐을 때의 (지역의) 허탈감은 더 클 것 같았다”며 “그래서 그것보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한 원칙을 지켰다”고 했다. 그는 “지방 발전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게 국익이고 국가 전체의 이익”이라며 “아울러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가장 극대화할 방법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황 장관은 “미술관 말고도 지방 분권과 자치를 발전시킬 방안이 더 많을 것”이라며 “미술관만 갖고 지방균형발전을 이야기할 게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의 염원이라든가 소망을 100% 충족시키지 못하더라도 어느정도 부합할 수 있도록 지역을 순회하면서 전시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네트워크 뮤지엄’ 형태가 돼서 상시적으로 (전시회를 열면) 지방에서도 갈증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판단했다”고 했다. 이어 “지방 문화향유엔 공감하지만, 40여 곳이 요청하는 상황에서 어느 쪽으로 가도 비판이 나올 것”이라면서 “문화적 산업적 가치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중앙에 세우되, 지역 거점 국립 미술관 박물관과 연계해 효과를 최대한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이날 이건희 기증품을 통합적으로 소장·관리하면서, 조사·연구·전시·교류를 추진하기 위해 별도의 기증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부지나 국립현대미술관 인근의 송현동 부지에 기증관 건립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역의 문화시설 확충과 함께 이건희 기증품 관련 전시를 정례적으로 개최해 국민의 문화향유 기회를 지역에까지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지만, 지자체를 설득하기엔 충분치 않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자체들은 이번 유치전에 뛰어들며 지역 문화 불균형에 따른 지역균형발전의 필요성, 지방분권을 강조해왔다. 이들은 스페인의 작은 도시 빌바오가 구겐하임 미술관을 세운 뒤 관광산업 발전 효과를 낸 사례를 들며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총력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황희 장관은 이날 “빌바오 미술관 같은 경우는 루브르 박물관처럼 특별한 작품이 소장돼 있지 않다”며 “철강과 조선산업으로 아주 융성했던 도시가 쇠락하는 과정에서 빌바오시가 새로운 대안으로 낸 게 구겐하임 박물관이다. 미술관 건축물 외관 등이 빌바오의 철강산업을 대변하는 데에서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황 장관은 “이런 것들이 도시재생의 여러 가지 효과를 냈던 거지 실제로 미술관 내의 소장품 등 대단한 작품이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황 장관은 “처음에 모든 것을 제로 상태로 놓고 검토를 했다”며 “특정 지역으로 가는 방안과 지역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 지방 경쟁에 너무 치열해지니까 그냥 중앙박물관과 현대미술관에 그대로 두는 방법 등을 놓고 적극적인 토론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관련 논의는 위원회가 전권을 갖고 있다”며 “더 논의하고 부지에 대한 부분도 조금 더 들여다볼 거다. 늦어도 올해 안에 결정될 것 같다”고 했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