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정치 참여” 공식 선언
야권 잠룡으로 꼽히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7일 정치참여 의사를 공식화했다. 감사원장직에서 물러난 지 9일 만으로 검찰총장 사퇴 이후 4개월간 잠행을 이어온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달리 ‘속전속결’의 모습이다. ‘윤석열 대안’으로 언급돼 온 최 전 원장의 대선 레이스 합류가 임박하면서 야권의 대권 구도가 요동칠 전망이다.
최 전 원장은 이날 “(감사원장에서 물러날) 그때 말한 것처럼 이 나라와 사회를 위해 제가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할 것이 있는지를 고민했다”면서 “그 결과 ‘정치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최 원장은 지난달 28일 감사원장 사퇴 후 가족과 지방에 내려가 휴식을 취하며 향후 거취와 정치적 구상을 가다듬은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장 사퇴 후 첫 언론 접촉
8월 전후 국민의힘 합류 가능성
대선 출마 선언까진 시간 걸릴 듯
최 원장은 이어 “(향후 거취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이나 공식적인 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며 거취와 관련된 세부 일정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정치적 중립성 시비를 의식해 그동안 말을 아껴왔으나 최 전 원장이 이날 정치 참여를 결심하면서 대권 도전 선언도 머지않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 원장의 경우 정치적 기반이 전무한 까닭에 제3지대 잔류 대신 국민의힘 입당으로 조기에 방향을 잡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버스 정시 출발론'을 앞세우고 있는 국민의힘 경선 일정에 맞춰 8월 전후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민생 탐방을 이유로 당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윤 전 총장에 비해 당내 기반 마련에 있어서 우위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민의힘에서 당 밖의 대선 주자들과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권영세 대외협력위원장과의 회동 계획에 대해 “아직 약속된 것은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경남 진해 출신인 최 원장은 보수 '텃밭'인 영남권에서 신망이 두텁다. 앞서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최 원장은) 아주 맑고 고운 분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공화국으로서 이제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거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며 치켜세우기도 했다.
최 전 원장이 대권 주자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감사원이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관련 감사를 진행하면서다. 당시 청와대와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운영 기조인 ‘탈원전’과 직결된 까닭에 ‘표적 감사’, ‘정치 감사’라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감사원은 경제성 평가가 현저히 낮게 조작됐다는 발표를 강행했으며, 최 전 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여당 의원들의 압박에도 시종 차분함과 단호한 태도로 대응하며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여기다 최 원장은 경기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엘리트 판사 출신인 데다 고교 시절 몸이 불편한 친구를 업고 등교한 일화와 아들을 입양 사실까지 더해지면서 ‘X파일’로 도덕성 논란을 겪고 있는 윤 전 총장과 대비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검증받지 못한 정치력이 최 전 원장의 약점으로 꼽힌다. 판사 등 공직 생활을 하다 보니 여의도 정치권과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