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운동 연장선서 ‘두레 공동체’ 창조적 복원 꿈꿔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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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쪼 든 세상 그래도 기리버서/천규석

소농이 중심이 된 자급형 두레공동체 운동을 해온 ‘농부 할배 천규석’. 부산일보DB 소농이 중심이 된 자급형 두레공동체 운동을 해온 ‘농부 할배 천규석’. 부산일보DB

심오한 생태론자는 자본주의 거부해야

줄굿, 일과 놀이·삶이 하나 되는 순간

“소농기본소득부터 먼저 시행을” 주장

‘삶의 지속가능성·공동체’라는 맥 강조



‘농부 할배 천규석의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천규석(83)은 경남 창녕군 영산에 사는 농사꾼 사상가이자, 소농두레운동가다. <망쪼 든 세상 그래도 기리버서>라는 책 이름부터 특이하다. ‘망쪼’는 ‘망조’의 센 발음인데 ‘기리버서’는 무슨 말인가. ‘그리워서’라고 누가 풀이했다는데 그보다는 ‘귀하고 소중해서’라는 뜻의 지역토착어란다. 그러니까 망조 든 세상, 그래도 귀하고 소중해서, 글을 썼다는 뜻이다.

천규석을 꿸 수 있는 이력이 있다. 그는 서라벌예대 문창과를 거쳐 서울대 미학과를 나왔다. 시인 김지하가 동기다. 서울대 미학과 출신들은 생명운동가인 제1회 선배 장일순을 필두로 생명운동에 헌신한 이들이 많다. 강원도 원주는 1970년대 민주 캠프이자 생명운동의 진지였다. 하지만 천규석은 거기에 합류하지 않고 가야 소국 ‘탁기탄’의 옛터인 고향 영산으로 왔다. 영산에서 농사를 짓고 영산줄굿(줄다리기)과 쇠머리대기와 접하면서 두레 공동체의 창조적 복원을 꿈꿨다. 생명운동의 또 다른 연장선이었다.

그의 생각은 질기고 차지다. 우포늪을 괴롭히는 생태관광을 그는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진짜 생태문화는 지속가능한 자급자치적 소농 공동체 문화인데 생태관광은 우포늪 생태의 오염을 가속화하는 별로 좋지 않은 소비문화라는 거다. 현대중공업이 연해주로 진출해 여의도 면적 33배의 농장을 인수했다는 소식에 박수를 보냈던 생태학자 최재천을 두고는 ‘현대 세습 부자(富者)에게 아첨하는 학자’라고 일침을 놓는다. 또 김대중 정부 시절, 평양 남북정상회담장에서 두 정상 사이에서 얼굴을 내민 고은 시인을 두고도 그 자리는 시의 자리가 아니었다는 고언을 한다. 그는 소설가 김동리와 변호사인 그의 아들 김평우도 부전자전의 권력 아부꾼이라며 꼬집는다. 이런 비판을 하는 것은 그가 “진정한 시인·글쟁이는 심오한 생태론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오한 생태론자는 자본주의, 원전주의자, 기술만능주의, 경제 성장주의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런 찰진 생각을 집약한 것이 두레다. 그가 그토록 희망하는 두레는 뭔가. 마을 농사일과 놀이를 함께하는 공동체 협동조직이다. 두레는 17세기 이후 삼남지역에 이앙농법의 보편화로 농사일이 계절적으로 폭주하면서 자치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품앗이와는 다른데 품앗이는 노동력을 1대 1로 서로 나누는 교환노동 형태이지만 두레는 공동노동과 공동문화, 나아가 공동식사와 공동휴식을 취하는 공동체다. 크게 하나가 되는 대동을 지향하는 것이다.

1983년 엄혹한 전두환 정권 시절에 그는 서울대 총학생회 부탁으로 줄당기기 줄을 학생들과 이틀 만에 완성해서 대동 줄굿판을 벌인 적이 있다. 줄다리기를 그는 ‘줄굿’이라 부른다. 당시, 다 만든 줄을 옮길 때 학생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모여들어 대동줄 시위판이 벌어졌는데 그때의 줄은 학생들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줄짐’이 아니라 그들의 어깨와 머리 위에서 살아 춤추며 승천하는 두 마리 용이었다고 한다. 줄굿은 당김과 그 승패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만들고 옮기고 줄머리를 거는 과정에 본질적 의미가 있다는 거다. 공동체가 살아나는 그 순간이 대동굿, 줄굿, 두레의 순간이라는 거다. 일과 놀이, 놀이와 삶이 하나가 되는 그런 순간이다.

그의 주장은 다양하지만 날카로운데 하나의 맥이 있다. ‘지속가능한 소농을 부분적으로나마 다시 살리기 위해서 소농기본소득부터 먼저 시행해야 한다.’ ‘유기농의 가치는 안전하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생태적 생물학적 지속가능성에 있다.’ ‘핵 발전을 옹호하는 정치와 민주주의는 가짜 정치와 민주주의다.’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는 최대 최악의 사기극이며, 100% 정당 명부식 전국구 비례대표제로 가야 한다.’ 삶의 지속가능성과 공동체라는 맥이 잡힌다.

천규석은 “모든 공동체 운동사는 실패와 재도전을 되풀이하는 꿈의 역사였다. 다시 작은 농장으로 귀향했지만 지금 내게 남은 것은 저 붉게 물들어가는 저녁노을이 서글픈 여생뿐이다”라고 말한다. 붉게 물든 저녁노을 속에 메아리가 울린다. “생태와 지속의 기본인 소동공동체의 자급 없이는 건강한 사회도, 경제성장도, 자치민주주의도 없다.” 천규석 지음/신생/448쪽/2만 원.


<망쪼 든 세상 그래도 기리버서> 표지 <망쪼 든 세상 그래도 기리버서> 표지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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