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엑스포 스토리 ②] ‘파리 박람회’ 없었다면 에펠탑도 없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세계 유명 도시의 랜드마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파리 에펠탑을 꼽는 이가 많을 것이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찍은 인증 사진은 프랑스 여행 증명서나 마찬가지다. 역사적인 도시 파리의 상징물이자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에펠탑도 사실 월드 엑스포(세계박람회)가 없었다면 세상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에펠탑은 엑스포가 남긴 상징물이 개최 도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1884년. 파리의 네 번째 엑스포인 ‘1889년 파리 엑스포’ 개최가 결정됐다. 조직위원회는 프랑스 혁명 100주년에 열리는 엑스포를 상징하는 기념물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설계안을 공모했다. 응모작은 무려 700점이 넘었다. 1886년 5월 심사위원회가 열려 9개의 후보를 추렸다. 구스타프 에펠의 철탑이 최종 작품으로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철도 엔지니어이자 교량 등 금속 구조물 설계로 유명했던 에펠의 작품에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프랑스의 철강 생산력과 기술력을 세계에 드러내기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1889년 ‘파리 엑스포’ 기념물
건설 당시 ‘붕괴 우려’ 반대 여론
25개월간 천신만고 끝에 완공
세계적 명물, 프랑스 상징물로
에펠은 1832년 프랑스 디종 지역의 마을 ‘에펠’에서 태어났는데, 원래 이름은 독일 계열의 뵈닉하우젠이었다. 이름이 어렵다고 여긴 그는 고향 마을 이름인 에펠로 바꿨다.
공모에 당선된 에펠탑은 에펠의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게 정설이다. 그가 설립한 회사의 엔지니어와 건축가들이 낸 설계안을 사들여 자신의 명의로 지적재산권을 갖게 됐다고 한다. 당시 높이 300m에 달하는 철탑을 박람회장에 솟구치게 하려면 큰돈이 필요했다. 엑스포 조직위는 전체 비용의 25%가량인 150만 프랑만 주고 나머지는 에펠이 조달하기로 합의했다. 그 대신 에펠은 20년간 에펠탑 운영권을 가지게 됐다. 결과적으로 에펠은 현명한 선택을 했다. 불과 5년 만에 투자한 건축비를 모두 회수한 뒤 엄청난 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
에펠탑이 완성되자 온 세계인들이 엑스포를 참관하려고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여기에는 미국 오티스사의 엘리베이터도 한몫했다. 에펠탑에 설치된 7대의 엘리베이터 가운데 4대가 오티스 엘리베이터였다. 1853년 뉴욕 엑스포에서 처음 선보인 오티스 엘리베이터는 가장 안전한 엘리베이터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1878년과 1889년 파리 엑스포에서 에디슨의 전기도 큰 인기를 끌었는데, 에펠탑에 전구를 달아 엑스포장과 밤하늘을 화려하게 밝힌 야간 조명은 널리 입소문을 탔다. 에펠탑은 1900년 파리 엑스포 때에도 상징 시설로 활용됐고, 이후 라디오 송신탑 기능도 갖게 됐다.
에펠탑 프로젝트의 모든 과정이 순조로운 건 아니었다. 거대한 철 구조물이 무너져 주변을 덮칠지 모른다는 시민들의 공포감과 흉측한 철 구조물로 예술의 도시 파리를 망친다는 문화계의 저항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주거 환경 파괴를 우려하는 시민 소송도 제기됐다.
이에 에펠은 탑이 무너지면 모든 책임과 손해배상을 하겠다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문화계에서는 작가 모파상 등 파리의 예술인 300인 위원회가 구성돼 거센 반대 운동이 진행됐다. 이들은 에펠탑을 ‘흉측한 새장’ ‘깡통 기둥’이라 비하하며 에펠을 압박했고, 결국 운영권이 만료되는 20년 뒤 철거를 약속했다. ‘에펠탑 혐오’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던 모파상은 에펠탑이 완공되자 에펠탑을 볼 수 없는 유일한 장소인 에펠탑에서 점심을 먹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9000t에 달하는 에펠탑이 25개월간 천신만고 끝에 완공되자 저항은 점차 찬사로 바뀌어 갔다. 높이 320m, 철골구조물 무게만 7100t이 넘고, 1652개의 계단이 놓인 에펠탑이 파리 한가운데 우뚝 서자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엑스포 기간 중 입장객이 200만 명을 훌쩍 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고, 문화의 아이콘이자 엑스포가 남긴 인류 최고의 유산이라는 쪽으로 여론이 급선회했다. 철거 계획도 사라지고, 에펠탑 영구 보존이 결정된다. 미국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건설된 1931년까지 에펠탑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도 이름을 떨쳤다. 부산 북항에서 2030 부산월드엑스포를 열기 위해 힘을 다하고 있는 지금, 에펠탑 건설은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됐다.
※ 공동 기획 : (사)2030부산월드엑스포 범시민유치위원회
박세익 기자 r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