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컷·집게손가락이 왜?"…BBC가 분석한 한국 '안티 페미니즘'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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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들은 왜 짧은 머리로 돌아가는가"라는 제목의 BBC 기사. BBC 홈페이지 캡처

영국 BBC 방송이 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 안산을 겨냥한 괴롭힘을 비롯해 한국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안티 페미니즘' 사태를 심층 보도했다.

9일(현지시간) BBC는 '한국 여성들이 다시 짧은 머리로 돌아가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숏컷'과 손가락 모양 등을 이유로 일부 남성들이 인터넷에서 안티 페미니즘 운동을 벌이는 현상을 조명했다.

BBC는 "안산 선수가 도쿄올림픽 양궁 역사상 최초로 3관왕을 이뤘을 때, 고국에서 그에게 돌아온 건 찬사만이 아니었다. 비난의 홍수도 있었다"며 "이유는? 그녀가 짧은 머리를 했다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안산 선수를 향한 비난 중에는 그가 페미니스트라는 주장이 있다"며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라는 용어는 종종 남성혐오자와 연관 지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 남성 누리꾼이 올린 글을 소개했다. 이 누리꾼은 "금메달을 딴 것은 좋지만 머리가 짧은 것을 보니 페미니스트인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응원을 철회하겠다. 모든 페미니스트는 죽어야 한다"는 극단적 발언을 했다.

BBC는 그러나 이러한 비난이 커질수록 안산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면서 수천명의 한국 여성들이 숏컷 인증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고 전했다.

트위터에서 숏컷 캠페인 해시태그 운동을 주도한 한지영 씨는 BBC 인터뷰에서 "모든 남초(男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여성혐오 발언이 한 두개도 아니고 대량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고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집단 공격은 남성이 여성의 신체를 통제할 수 있고 여성들은 페미니스트로서 정체성을 숨겨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다"면서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성들이 숏컷 사진을 올리면서 여성 선수들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는 해시태그 캠페인을 생각해냈다"고 덧붙였다.


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 안산(왼쪽) 선수와 그의 SNS에 달린 악성 댓글들. 연합뉴스·안산 인스타그램 캡처 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 안산(왼쪽) 선수와 그의 SNS에 달린 악성 댓글들. 연합뉴스·안산 인스타그램 캡처

실제로 인터넷에는 긴 머리를 짧게 자른 여성들의 사진이 쏟아졌다. 일부 여성들은 안산 선수의 헤어스타일을 보고 숏컷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BBC는 "여성혐오 글을 올리는 안티 페미니스트들은 주로 젊은 남성들이지만, 나이 든 남성이나 심지어 여성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여성들은 오랫동안 차별과 여성혐오에 맞서 싸워왔고, 지난 10년 동안 '미투' 운동에서 낙태금지법 폐지에 이르기까지 진전을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BBC는 "그런데 짧은 머리가 왜 페미니스트와 연관되는걸까?"라고 반문하며 일부 젊은 여성들이 숏컷을 하고 메이크업을 거부한 2018년 탈코르셋 운동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미투 운동과 관련한 책을 집필하고 있는 정하원 작가는 "탈코르셋 운동을 계기로 숏컷이 젊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일종의 정치적 선언처럼 됐다"며 "이런 페미니스트의 각성은 이들이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던 남성들로부터 강한 백래시(반발)를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BBC는 최근 남초 커뮤니티에서 촉발시킨 일명 '집게손가락 논란'도 페미니스트를 겨냥한 공격적인 집단 행동이었다고 조명했다.

일부 남성들은 엄지와 검지를 모으는 손가락 모양을 두고 페미니스트들이 한국 남성들의 성기 크기를 비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손가락 모양이 현재는 폐쇄된 급진적 페미니스트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로고와 유사하다는 이유에서다.


BBC가 소개한 문제의 집게 손가락 모양.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이 손가락 모양이 한국 남성의 성기를 비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GS25 공식 SNS 캡처 BBC가 소개한 문제의 집게 손가락 모양.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이 손가락 모양이 한국 남성의 성기를 비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GS25 공식 SNS 캡처

GS25와 BBQ, 제네시스, 교촌치킨 등 기업들은 홍보물에서 이러한 손가락 모양을 사용했다가 삭제 요구와 불매운동에 시달렸다.

BBC는 "논란에 휩싸였던 회사들이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일부 남성들은 조금만 비슷한 손가락 모양만 발견해도 기업들을 공격하며 광고를 삭제하게 하는 '마녀사냥'을 일으켰다"고 봤다.

미국 UCLA 젠더학 교수인 주디 한 박사는 "일부 남성들은 해당 손가락 모양을 자신들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특정 페미니즘 흐름과 연관시키면서 이 이미지에 집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BBC는 또 GS25를 비롯한 기업들이 공개 사과하는 바람에 안티 페미니즘 세력이 대담해졌고, 결국 숏컷에 대한 공격까지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정하원 작가는 "그들의 다음 타겟이 안산이 됐다. 안산은 그들이 싫어하는 것들을 표상하는 젊은 올림픽 선수였다"며 "안산은 숏컷을 하고 여대를 다녔으며, 명확한 근거 없이 남성혐오라고 자체 규정한 표현들을 온라인에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BBC는 "젊은 남성들이 주축을 이루는 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의 분노는 여성의 성공이 남성의 희생에서 비롯됐다는 믿음에서 나온다"고 분석했다.

이어 좋은 대학과 직장을 둘러싼 한국에서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일부 남성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남성은 군 복무를 해야 하는 것과, 여대는 10여곳이 있지만 남대는 없다는 사실 등을 주장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BBC는 "실상은 한국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3%에 불과하고, 이는 선진국 중 가장 큰 격차다"라며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유리천장 지수에서도 한국은 선진국 대열 국가 중 여성이 일하기에 최악의 환경인 나라로 꼽혔다"고 지적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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