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지방혐오 리포트] ② 일상서 마주하는 차별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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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스벅 있나?”… 명백한 지역 차별 발언입니다

“너는 지방에서 태어났으니 앞으로 사투리만 쓰며 살겠네.” 직장인 A 씨는 딸 돌잔치에서 서울토박이인 대학 동창 B 씨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아이를 보며 ‘귀엽다’는 의미로 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악의가 없는 말이지만, A 씨는 자신의 기분이 상한 것을 명확하게 느꼈다.


희망제작소 ‘지역 차별 언어’ 조사

고정관념·서울 중심주의 만연

사투리 억양 차별 불쾌감 유발

일상 농담·온라인 밈으로 치부

인종 등 타 혐오와 연계 복합 작용


■일상의 먼지처럼 쌓인 지방혐오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면 어떡해.”

혐오표현의 당사자들에게는 넘기 어려운 벽과 같은 말이다. 성별, 장애, 인종, 성소수자 등 혐오표현이 비교적 명확히 규정된 경우에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사회적 매장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차별단어나 혐오표현을 가려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방혐오는 다르다. 당장 눈에 띄는 폭력과 논쟁이 없기에 혐오표현을 스스럼 없이 꺼내 휘두르는 이들이 많다. 지방을 ‘보호해야할 소수자나 약자’로 보는 시각도 비교적 적은 편이다. 지역에 대한 혐오와 차별 현상을 경상도와 전라도가 서로 헐뜯으며 비난하는 군사정권 시절의 옛날 일로 치부하고 마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지방혐오는 분명히 존재한다. 일상 속에 스며들어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민간 독립 연구소인 희망제작소는 우리 주변에 먼지처럼 쌓여있는 지방혐오를 털어내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지역차별언어 바꾸기, 어디 사람’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희망제작소는 전국 450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지역차별 언어나 표현에 대한 경험, 인식 등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참여자의 대다수인 92%가 지역차별언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지방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과거 세대의 일만은 아니었다. 다른 연령과 비교해 20~30대가 지역차별을 자주 경험하고,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겪었다고 답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혐오와 차별의 언어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상도 사람은 성미가 불같다?

희망제작소는 설문조사를 통해 취합한 차별언어에 대한 경험 397개를 서울 중심주의, 지역 고정관념, 사투리, 정치혐오 등으로 구분했다. 이 가운데 ‘경상도 사람은 성미가 불같다’ ‘전라도 사람은 믿을 수 없다’ 식의 지역 고정관념이 162개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지역 고정관념은 방송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소재로도 사용돼 우리에게 친근하기까지 하다. 급한 성격에 목소리만 큰 경상도 사람과 비정상적으로 매사에 느긋한 충청도 사람, 세상 물정 모르고 촌스러운 강원도 사람 등은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영화의 주된 인물 등장양식이었다.

설문에 참여한 C 씨는 “고향인 청주를 다룬 TV 예능이 방영된 이후 주변 사람들이 ‘너는 충청도 출신인데도 말이나 행동이 느리지 않네’라며 차별 섞인 말을 한 적 이 있다”며 “일부 사람들의 특징이 지역 전반을 대변하는 기질로 비춰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 중심주의로 인한 차별은 64개의 답변이 있었다. 서울중심주의는 ‘너희 동네에 ○○ 있냐’로 귀결됐다. ○○에는 스타벅스, 베스킨라빈스, 백화점, 대형마트, 영화관, 지하철, 심지어는 도서관이나 가로등 같은 필수 기반시설도 포함됐다. 읍면동 단위의 지방 소도시들을 ‘그냥 시골’로 퉁쳐서 이야기하는 관습도 지적됐다.

희망제작소 측은 “도시의 잣대를 획일적으로 들이대며 개발의 논리로 우열을 나누는 표현은 차별이 될 수 있다”며 “단순히 많이 개발되는 게 더 좋은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잡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투리 사용을 향한 차별과 혐오도 포착됐다. 부산 사람에게 ‘블루베리스무디나 2의 e승을 발음해보라’고 시키는 행위는 듣는 사람에 따라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다. 사투리 특유의 억양을 귀엽게 여기는 말이지만, 지역민에게 사투리는 귀여움이나 터프함을 드러내는 수단이 아닌 언어 그 자체다. D 씨는 “부산 애들은 사투리 못 고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차별 받는다는 것을 느꼈다”며 “‘표준어를 고쳐라’는 말을 쓰지 않듯이 ‘사투리를 고쳐라’는 말도 잘못됐다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혐오와의 결합

지방혐오는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고 있다. 혐오라고 해서 노골적인 증오나 분노의 형태로 표출되는 것만은 아니다. 일상의 농담이나 온라인의 밈(meme) 정도로 치부되는 지방혐오는 때로 다른 혐오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위세를 떨치기도 한다.

희망제작소 유다인 연구원은 “지역에 대한 차별은 성별, 인종, 장애 등 다른 혐오와 연계해 상호작용을 강화한다”며 “최근 ‘페미’ 비난에 휩싸였던 양궁 금메달리스트 안산 선수 역시 출신이 광주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더욱 심한 폭력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의 경우 공단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다는 이유로 ‘안산드레아스’라는 멸칭이 생기기도 했다. 유명 게임 속의 무법도시 이름을 패러디해 만들어낸 것인데, 지방혐오와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혐오가 합쳐진 경우다.

일각에서는 어느 도시에서나 발생할 법한 사건사고를 긁어 모아 지방도시를 향한 혐오적 인식을 강화한다. 외국인 노동자나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에 주로 이 같은 꼬리표가 붙는다. 사건사고 소식에 ‘까보니 역시 △△(도시명)’이라는 식이다.

이 프로젝트의 심층조사에 참여한 E 씨는 “거기에 공장이 많고 악취가 심한데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런 얘기를 듣다보니 스스로 ‘사회적 위치가 낮고 재력이 없어서 서울이 아닌 이곳에 산다’는 패배의식으로 연결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런 편견이 쌓이다보니 지방혐오 자체를 인식하기 보다는, 지역사람들 스스로 자신의 지역에 대한 자존감과 자부심이 낮아지는 결과가 만들어졌다”고 덧붙였다.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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