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발찌 찬 범죄 또…‘이상 동선’만 보는 허술한 감시 탓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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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보호관찰 업무에 사용하는 전자발찌. 부산일보DB 범죄자 보호관찰 업무에 사용하는 전자발찌. 부산일보DB

부산 동래구에서 전자발찌를 찬 전과자가 자기 집 부근에서 성폭행(부산일보 5월 14일 자 10면 등 보도)을 저지른 데 이어, 서울에서도 전자발찌 부착자가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사건이 벌어졌다.

서울에서 벌어진 사건의 피해자 중 1명은 용의자 주거지에서 살해됐는데, ‘전자발찌의 사각지대’로 꼽히는 주거지와 주변 범죄에 대한 법무부 대응이 부실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성범죄 전과자, 여성 2명 살해 후 자수

피해자 1명은 용의자 주거지서 살해돼

잇단 주거지 인근 범행에 ‘속수무책’

‘모니터링 사각지대’ 대응책 마련돼야

29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7일 송파구에서 성범죄 전과자 A 씨가 여성 2명을 살해했다. A 씨는 도주 전에 1명,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하는 과정에서 또 1명을 살해했다. 둘 다 지인인 것으로 전해진다. 법무부 관계자에 따르면 시신은 각각 A 씨의 송파구 자택과 차량에서 발견됐다. 특히 주거지에서 발생한 시신의 경우 주거지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이 확인됐다. 전과자의 위치추적을 위해 전자발찌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주거지 인근의 경우 ‘추적 사각지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27일 오후 송파구 한 거리에서 장치를 끊고 도주했다. 이날 오후 5시 5분 동부보호관찰소는 전자발찌 훼손 사실을 파악해 경찰에 공조를 요청해 추적에 나섰다. 이틀 후인 29일 A 씨는 송파경찰서에 자진출두해 “여성 2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경찰은 A 씨에게 살인과 전자발찌 훼손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앞서 올해 초 부산 동래구에서도 전자발찌를 찬 채로 자택에서 약 100m 떨어진 원룸에 침입해 성폭행을 저지른 유사 사건이 벌어졌다. 5월 12일 B 씨는 피해자 집에 침입해 1시간 넘게 피해자를 기다리다 범행을 저질렀다. B 씨는 도주 중 전자발찌를 절단했다. 거주지 인근에서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 중 전자발찌를 절단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범죄 패턴이다.

전자발찌를 착용한 성범죄자가 거주지 인근에서 범행을 저지르는 일이 반복되면서 ‘등잔 밑이 어둡다’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법무부는 별다른 개선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A 씨의 경우 자기 집이 모니터링의 의심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을 노렸을 가능성이 있다. ‘사각’을 노리는 범죄자에 대응할 수 있는 촘촘한 대안이 마련돼야 하는 상황이다.

동래구 성범죄 사건 당시에도 법무부는 “용의자가 주거지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징후를 발견하기 어렵다”며 “위치정보 제공도 특수 4개 범죄 혐의 수사를 위한 법원의 허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현재 전자발찌 훼손, 피해자 접근, 어린이보호구역 접근 등으로 ‘경보’가 울리는 경우를 제외하면 모니터링은 대부분 보호관찰관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한다. 전자발찌를 착용한 전과자의 주거지 인근 추가 범죄를 막는 데 적잖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전자발찌 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재범률은 매년 높아진다. 국민의힘 김도읍(부산 북강서을) 의원이 법무부에서 제출받은 ‘전자발찌 착용자 성폭력 재범 현황’에 따르면 2016~2020년 전국에서 성범죄로 전자발찌를 부착한 범죄자의 성폭력 재범 중 절반 이상(166건·55%)이 거주지 1km 이내에서 발생했다. 2016년부터 5년간 1km 이내 범죄 발생 비율도 증가하는 추세다. 2016년 1km 이내 재범률은 52%에서 2017년 45%로 소폭 줄었다가 2018년 58%, 2019년 55%, 2020년에는 68%까지 상승했다.

전자발찌 자체의 효용에 대한 의문도 계속된다. 서울에서 일어난 살해 사건에서 A 씨는 전자발찌를 착용한 채 첫 번째 피해자를 살해하고 이후 절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래구 성범죄에서도 B 씨는 범행 당시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있었다. 전자발찌를 훼손해 ‘경보’가 울리지 않는 한, 전자발찌를 착용한 채 이뤄지는 범죄를 감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동의대 경찰행정학과 최종술 교수는 “전자발찌 감시체계에서 주거지 근거리의 경우 지도상 표시가 안 되고, 전자발찌를 절단·훼손하지 않는 경우 알림도 울리지 않는다”며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일어나는 사례를 수집해 사전에 감시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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