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지방혐오 리포트] ⑤ 지방대 비하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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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부터 취업·결혼까지 평생 따라붙는 '지잡대 망령'

‘학벌없는사회’ 황법량 상임활동가가 학벌 차별에 대항하는 ‘평등(equality) 과잠’을 입고 있다.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과잠’은 학벌 서열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부산일보DB ‘학벌없는사회’ 황법량 상임활동가가 학벌 차별에 대항하는 ‘평등(equality) 과잠’을 입고 있다.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과잠’은 학벌 서열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부산일보DB

지방대를 향한 혐오는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수도권 일극주의와 학벌주의의 결정체다. 지방 소재의 잡다한 대학이라는 뜻의 ‘지잡대’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수십 년간 한국의 인프라와 자원, 인재는 서울로 집중됐다. ‘인서울’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들에게는 게으르고 열등하다는 사회적 평가가 형성된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만들어진 이 꼬리표는 대학 캠퍼스는 물론 취업, 직장생활, 연애, 결혼 등 모든 생애 주기에 망령처럼 따라붙는다.


취업 커뮤니티·직장 등 곳곳에

지방대 혐오주의가 퍼져 있어

수도권 일극·학벌주의가 원인

30여 년 전엔 지방거점 국립대

서울 최상위권 대학들과 ‘어깨’

획기적 ‘균형발전’ 정책 시행돼야


■“지잡대는 열등한 존재”

“지방대 출신인데 되게 노력하셨나 보네요” 지난 2월 대기업에 입사한 부산의 한 국립대 출신 강 모(34) 씨는 입사 동기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강 씨가 기분 나빠하자, 동기는 “대학은 능력 순으로 가는 것 아니겠냐”며 “인프라까지 취약한 지방대에서 취직에 성공했다는 걸 감안해 칭찬으로 한 이야기”라고 되받아쳤다.

서울에서 인턴 생활을 했던 한 모(27) 씨 역시 직장에서 지방대 혐오를 경험했다. ‘어느 대학 나왔냐’는 질문에 한 씨가 답하면 ‘그런 대학도 있냐’는 농담 아닌 농담이 돌아왔다. ‘지방대 쿼터’로 뽑힌 구색맞추기용 인턴이라는 수근거림도 참아내야만 했다. 직장인들이 업무능력, 성별, 나이보다도 학벌 차별을 자주 겪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지방대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을 지방대 그 자체에 돌리는 혐오는 일상처럼 일어난다. 올해 초 제주대 병원에서 발생한 교수의 상습 갑질·폭행 사건처럼 지방대에서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역시 지잡대’ 같은 반응이 쏟아진다. 권력형 범죄나 개인의 일탈로 일어난 사건을 지방대 특유의 미개함이나 감싸기 문화 등으로 이유를 돌리는 것이다. 이처럼 지잡대라는 규정을 통해 지방혐오는 한층 견고해진다.



■학벌로 쌓은 불평등 피라미드

취업 커뮤니티에서는 지방대 순위를 매기면서 서열을 확인 받으려는 풍경이 흔하게 펼쳐진다. 출신 지방대에 따라 갈 수 있는 기업의 상한선을 나열하는 게시물도 많다. 공기업을 준비하는 전주의 한 지방대학 출신 신 모(28) 씨는 “스터디 모집글에서도 출신 대학을 요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출신 대학을 보고 스터디원을 거르겠다는 심산인데, 이런 편견을 마주할 때면 좌절감이 든다”고 말했다.

지방대 혐오의 중심에는 학벌주의와 결합한 한국 사회의 불평등 피라미드가 놓여있다.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의 공동저자인 세명대 제정임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은 “불평등 피라미드가 고착화된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자신이 피라미드의 어느 칸까지 와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려 하며, 학벌은 위치를 확인하는 대표적 수단”이라며 “피라미드 윗칸이 아랫칸에 갑질해도 문제될 게 없는 사회이다 보니 조금이라도 약자인 사람을 자신과 구별 지으려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여태껏 좋은 학벌은 좋은 일자리의 보증수표였다. 대기업이나 정규직 여부 등 일자리의 우열은 불평등 피라미드 구성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지잡대 혐오는 자신의 위상을 돋보이게 함과 동시에 피라미드의 역전을 방지하는 ‘사다리 걷어차기’와 다를 바 없다.


■‘인서울’에 쏠리는 자원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지방대라는 이유로 지잡대 취급을 받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특히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등 지역거점국립대의 상위 학과는 서울의 최상위권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하지만 수도권 일극주의가 상식처럼 자리잡으면서 지방대는 성장동력을 잃어버렸다. 2019년 기준으로 대학재정지원 현황을 분석해 보면 학자금 지원과 국공립대학 경상비 지원을 제외한 ‘일반지원’ 부문에서 비수도권대학의 지원액은 수도권 대학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교육의 기회를 공정하게 배분해야 할 정부는 오히려 자원을 수도권에 몰아줬다.

정부의 지원마저도 기대하기 어려운 지방대의 학문적 경쟁력은 나날이 추락한다. 특성화 위주의 취업사관학교로 기수를 돌린 지방대도 많지만, 모든 자본과 기업이 수도권으로 쏠린 상황이라 이마저도 신통치 않다. 제대로 가르칠 교수도, 따라올 학생도 남아있지 않다는 자조가 나오는 실정이다. 지방대에서 기초학문은 사치나 시대착오적 인식으로 치부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지방대 정원미달 사태가 속출하자 지방대 혐오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인식이 보편화하면서 재기를 꿈꾸는 지방대들도 도매금으로 부실대학 취급을 당한다. ‘인서울’ 여부를 성공과 실패의 기준으로 바라보는 청소년들도 혐오의 크기만큼 늘어난다.

지방분권균형발전 부산시민연대 박재율 상임대표는 “교육을 비롯한 모든 사회적 자원이 수도권으로 쏠리다보니 지방의 자원과 인재가 약화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며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제도와 정책의 전면적 전환이 있어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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