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지방소멸 위기, 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
비수도권 소멸 비상 시·군·구 100곳 달해 해결 시급
중앙·지방 상생하는 국토균형발전 신속 추진이 해답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 우리나라의 돈과 사람, 인프라, 정보가 다 몰리는 곳이다. 그래서 ‘서울공화국’이라는 빗댄 표현이 나온 지 오래다. 최근 몇 년 새 서울에 재화와 인구가 과도하게 집중되는 현상이 해소되기는커녕 더 심해진 데다 인근 인천·경기 지역으로 확산하자 ‘서울민국’, ‘수도권공화국’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전체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서울·인천·경기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면서 경제, 문화, 교육, 의료 등 모든 것을 빠르게 빨아들이고 있어 지방은 설 자리를 급격히 잃어 가고 있다.
수도권 과밀화에 따른 폐해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와 국토의 균형발전은 오래전부터 거론돼 온 해묵은 숙제다. 수도권 기능과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해 국토균형발전을 꾀하지 않으면 머잖아 나라 전체가 공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대한 수도권만으로는 국가의 성장과 유지가 불가능한 까닭에 서울 중심주의나 수도권 일극주의 탈피는 시급한 현안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토균형발전 정책은 진전이 없고 되레 수도권 집중이 가속화하면서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지 않은 실정이다.
날이 갈수록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가 벌어져 지방 도시들의 소멸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의 중소 도시나 농촌에 사는 사람들조차 국내 제2 도시인 부산마저 시골의 하나로 치부하고, 부산 시민을 촌뜨기쯤으로 얕잡아 보며 우월감에 젖어 있을 정도다. 이러니 서울 우선주의가 만연한 서울 사람들의 지방 경시 풍조는 오죽할까.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방소멸의 비극을 막기 위해 서둘러 국토균형발전에 필요한 확고부동한 대책을 수립해 추진할 때다.
■갈수록 비대해지는 수도권
서울은 올해 전 세계에서 16번째로 매력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를 가진 도시로 평가됐다. 세계 창업 생태계 분석기관인 스타트업지놈이 최근 발간한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스타트업 생태계 도시 순위’ 2021년 판을 통해서다. 서울은 오랫동안 순위권 밖에 머물러 있다가 지난해 20위를 기록하며 공식 순위에 등장했다. 1년 만에 네 단계나 순위가 상승한 서울은 아시아 스타트업 중심도시 중 하나인 싱가포르(17위)와 견줄 만한 창업 도시가 됐다.
이 같은 성과는 서울시가 그동안 기울인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 노력의 결과물인 것은 맞지만, 무임승차나 다름없는 외부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 서울의 스타트업 경쟁력이 높아진 이유는 지방의 초기 벤처기업과 창업자들의 무더기 유입에 있다. 전국 각 지역에서 기존 산업이 쇠퇴하며 지역 경제가 장기간 침체한 상황에서 지역의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새로운 기업들이 정주 여건 등 제반 환경이 잘 갖춰진 서울로 지속적으로 이전하고 있어서다. 인천·경기는 이 같은 분위기의 수혜지다. 서울의 비싼 집값과 고물가를 감당하기 힘든 이들이 이곳을 찾기 일쑤다. 오늘도 지방에서 힘들게 키운 유망 스타트업과 인재들은 각각 해당 지역에서는 우수한 인력과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다며 앞다퉈 수도권으로 옮겨 가고 있다. 내일도, 모레도 그럴 게 분명하다.
이에 힘입어 이미 수도권 인구는 2019년 처음으로 한국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선 뒤 계속 증가하고 있다. 같은 해 수도권의 지역내총생산(GRDP)도 1000조 원을 돌파하며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51.9%를 기록했다. 수도권이 블랙홀처럼 사람과 모든 걸 마구 흡수한 결과다. 이처럼 강력한 수도권 일극체제가 형성됐지만, 여기서 초래하는 폐단은 많다. 수도권 인구 급증에 따른 극심한 주택난과 택지난뿐만 아니라 교통난, 다양한 환경 문제, 수도권 내부 지역 간 사회·문화적 불균형, 비수도권 지역의 공동화 심화, 지방 산업 붕괴 등 수두룩하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의 원인도 대규모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의 대유행에서 찾을 수 있다. 대선 정국에서 여야·예비후보들 간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택지개발 특혜 의혹’도 수도권 과밀화의 부작용이다. 수도권의 여러 가지 현안 해결에 국가의 예산과 행정력을 집중하다 보면 지방에 산적한 숙원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서울 중심 투자 혹은 수도권 우선 지원, 지방 외면 또는 지역의 콩고물 나눠 먹기 식 악순환이 반복된다. 무엇보다 수도권 쏠림 현상을 막는 게 각종 국가적 문제점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확실하고도 근본적인 방안일 테다.
■암울한 부울경 실상과 미래
수도권의 팽창에 반비례해 지방은 공동화 수준을 넘어 소멸을 향해 가고 있다. 당장 부산부터 제2 도시의 자리를 인천에 빼앗길 판국이다. 1995년 388만 명에 달한 부산의 인구수는 이듬해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매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 8월 말 기준 부산 인구는 335만 9527명으로,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여 왔다. 저출산 세태에 고령화와 젊은 층의 타지 유출이 겹치면서 도시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탓이다. 이대로 간다면 부산 인구는 1~2년 내 인천에 추월당하고 2036년께 300만 명 아래가 될 것이란 정부 예측이 나왔다. 부산시는 2017년 수립한 ‘2030 부산도시기본계획’에서 2030년 지역의 계획인구를 410만 명으로 정했으나, 인구수가 역주행하는 현실에 맞게 도시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수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도시기본계획은 미래 특정 시점에 도시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지에 대한 큰 그림인데, 부산의 미래상이 크게 쪼그라들게 생겨 씁쓸하기만 하다.
지역 경제의 현실 역시 참담하다. 부산 경제의 장기 침체와 지역 산업의 쇠퇴로 2020년 매출액 기준 전국 1000대 기업에 든 부산 지역 기업은 29개에 불과하다. 43개였던 2010년에 비해 14개나 없어졌다. 부산 1위 기업인 르노삼성자동차가 전국 118위로 밀려나는 바람에 전국 100대 기업 명단에 부산 업체는 전혀 없는 상태다. 이러한 부산과 울산·경남 지역을 모두 합친 GRDP가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17.2%에서 2018년 14.5%로 2.7%포인트 하락했다. 이같이 추락세가 뚜렷한 부울경의 현재 경제 사정은 말이 아니다.
지역 경제의 장래까지 암울한 것으로 드러나 침통한 심정을 더한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8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부산은 자체적으로 현재의 경제 상황을 뒤집을 혁신 역량이 부족한 것으로 지적됐다. 부산의 혁신성장 역량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2위에 머물렀다. 더욱이 부산은 전국 광역시 중 유일하게 ‘혁신성장 취약형’으로 분류됐으며, 혁신기반 역량(11위)과 미래 산업기반 역량(12위)마저 전국 평균보다 낮은 수준으로 조사됐다. 지난 7월에는 현대경제연구원이 경기도를 기준(100%)으로 과학기술 역량을 평가한 결과, 부산 42.2%, 울산 43.4%, 경남 38.1%로 부울경 모두 경기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부울경이 현재 능력은 물론 미래를 열어 갈 힘까지 미약하다는 의미다. 지역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미래 역량을 키우기 위한 돌파구 마련이 절실함을 알려 주는 대목이다.
■현실화한 비수도권의 지역소멸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각지의 인구 유출과 산업 부진은 지역 인구 감소 사태를 낳기 마련이다. 이는 결국 국가 발전과 국제 경쟁력 강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지방소멸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비수도권 도시의 원도심과 농어촌 지역에서 갓난아기와 어린이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고 빈집과 휴경지가 늘고 있는 등 공동화 현상을 빚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역 인구 감소와 청년층 유출, 수도권 선호 현상으로 신입생 정원 미달 사태가 속출하는 지방대학의 몰락은 지방소멸의 전조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래서는 지역민들의 위기감과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지방의 국민들이 자괴감이나 열등감에 빠질 경우 국력 저하로 연결되는 건 자명하다. 지방소멸은 국가적 대재앙인 셈이다.
실제로 지방소멸 위기는 눈앞으로 다가와 비상이 걸렸다. 국토연구원은 지난달 내놓은 지방소멸 보고서에서 비수도권의 74개 시·군·구를 ‘지방소멸 위기지역’이라고 경고했다. 이 지역은 인구 감소로 30년 내 사라질 위험이 큰 곳이라는 뜻이다. 대도시인 부산마저 소멸 위험 1곳과 소멸 우려 1곳 등 2개 구가 소멸 위기지역으로 꼽혔다. 경남의 경우 총 18개 시·군 가운데 무려 50%인 9곳(소멸 위험 5곳, 소멸 우려 4곳)이 소멸 위기지역으로 분류됐다. 이에 앞서 지난해 7월 한국고용정보원도 비수도권의 인구 소멸 위험 시·군·구 97곳을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 부산 중·동·서·영도구 등 원도심 4곳이 포함됐다. 경남에선 창원 마산합포구와 밀양·사천·통영시, 합천·남해·산청·하동·의령·함양·고성·창녕·거창·함안군 등 14곳이 소멸 위험지역으로 분석됐다. 전국적으로 소멸 위기지역은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두 기관의 자료는 지방소멸이 한낱 부질없는 기우나 아주 멀고 먼 훗날 닥칠지도 모를 사안이 아니라, 지금 당장 꺼야만 하는 발등의 불로 현실화하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한다. 특히 국토연구원 보고서는 인구 비율을 통한 단순 계산이 아닌 지역 재정자립도나 인구 감소의 지속성 등 입체적인 분석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정부가 하루빨리 지방소멸 방지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걸 잘 보여 준다. 자칫 안일하게 방치하다가는 ‘다 가진’ 수도권과 ‘없는 게 많은’ 비수도권, 양극으로 나뉘어 극심한 국론 분열 양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일제강점기 민족 지도자인 도산 안창호 선생은 “국권이 있고 병력도 충분하더라도 국민이 분열하면 패한다”고 꾸짖었다. 중앙정부와 수도권 주민들이 온 국민이 함께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한 지방소멸 해소를 나라의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로 새롭게 인식해 지방정부와 지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국토균형발전 노력만이 살길
문재인 정부 들어 지연되고 있는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조속히 추진하자는 주장은 그래서 당연한 요구다. 중앙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통해 수도권 비대화를 극복하고, 소멸 위기의 늪에 빠진 지역의 회생을 위한 마중물로 삼자는 취지다. 사실 올해는 우리나라가 국가균형발전 추진을 공식 선언하며 관련 정책을 전개한 지 17년째 된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국토균형발전이 제 속도를 내는 데 필요한 대표적인 정책이다.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야당이나 다수 국민의 반발도 아랑곳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책이 많은데도, 정작 지역민들이 열망하는 2차 공공기관 이전에 대해선 왜 강한 의지를 보이지 않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번 정권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진정성에 의문이 생기고, 여당 안팎에서 비판도 터져 나온다. 최근 이를 의식한 김부겸 국무총리가 10월 중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겠다고 약속하고 나섰으니 지켜볼 일이다. 지방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더는 미뤄지면 안 된다. 정부·여당이 강력하게 진행해 행동으로 보여 주며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
나아가 수도권 집중화 방지와 국토균형발전 촉진 효과를 실질적으로 거두려면, 현행 정부 제5차 국토종합개발계획(2020~2040년)을 광역권 지역 특성에 맞는 지원체제로 개선해야 마땅하다. 지역 산업의 특성을 감안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며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광역권 육성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지역별 산업 기반 육성, 공공의료 시스템 확충, 거점대학 지원, 광역 교통시설 구축 등이 충분히 반영돼야 할 것이다. 초의수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국토종합개발계획에 광역별 계획을 넣을 것을 주문한다. 그는 “지금처럼 정부 주도형 공모를 통해 지역에 나눠 주기 식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향적 권역특성형 사업계획 수립과 통합적 정책지원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지방소멸 우려에 아예 눈을 감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행정안전부는 올 연말까지 지방소멸 대응책을 수립하는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또 내년 4월부터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도입해 1조 원 규모로 운영할 방침을 갖고 있으나, 미봉책에 그칠 개연성이 있다. 정부의 기금 지원이 소멸 위기의 정도가 심각한 일부 시·군·구에 한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자 벌써부터 소멸 위기지역으로 분류되지 않은 기초지자체들을 중심으로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향후 기금 배분을 둘러싼 치열한 신경전이 예측되는 가운데 중앙정부가 기금 심의와 운용을 좌우한다는 점도 문제다. 행안부와 기획재정부 등 중앙부처가 기금 운영에 지나치게 간섭하면, 지방정부의 종속성만 높이고 지방 재정의 자율성도 해쳐 지원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어서다. 이는 국가균형발전 도모에 요구되는 두 축인 자치분권과 재정분권의 확대에도 역행하는 처사가 될 것이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단지 시간 끌기일 뿐 근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국토균형발전을 국가 정책의 최우선에 둬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공존하며 중앙과 지방이 상생하는 길을 찾아 착실하게 실천하는 게 지방소멸을 예방하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하겠다. 서울이든, 수도권이든, 전국 어디든 과도한 집중은 나라가 나서서 막아야 한다. 지방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공정에 시달리며 신음하는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곤란할 만큼 차고 넘친다. 수도권과 지방 간 불평등과 불공정을 바로잡아 국가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데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국토균형발전 정책 강화가 해답인데, 골든타임을 놓치면 곤란하지 싶다. 지방이 죽으면 다음은 수도권 차례다. 더 늦기 전에 소멸이란 벼랑 끝으로 내몰린 지방과 지역민들의 절박함을 없애는 국토균형발전 노력에 국가적으로 매진해야 할 것이다. 대권을 향해 뛰고 있는 대선 주자들 모두 명심할 일이며, 차기 정권에 던져진 최우선 과제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