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이 본 한국 안티 페미니즘…"'손가락 모양' 음모에 기업들 긴장"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한국의 젠더 갈등이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CNN 기사 섬네일. 한국의 젠더 갈등이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CNN 기사 섬네일.

미국 CNN 방송이 최근 한국을 휩쓸었던 '손가락 모양 논란'에 대해 주요하게 다뤘다.

CNN은 3일(현지시간) '왜 손가락 제스처가 한국 기업들을 긴장하게 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남성혐오'라는 주장이 일었던 손가락 모양이 국내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심층 보도했다.

방송은 우선 "한국의 인기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에서 '적대적인' 손 모양을 발견하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며 '로스트아크'에서 최근 벌어졌던 논란을 언급했다.

로스트아크에서는 이용자가 자신의 아바타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데, 웃음이나 'OK'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한 아이콘에 검지와 엄지를 모으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를 두고 지난 8월 일부 로스트아크 이용자들은 해당 손가락 모양이 남성혐오라며 제거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CNN은 "이후에 일어난 일은 한국의 안티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흐름을 잘 보여준다"며 "이들은 정부나 민간 기업이 페미니스트 의제를 추진하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보고 기업들로 하여금 반성하도록 압력을 가한다"고 전했다.

또 로스트아크가 실제로 이용자들이 문제 삼은 아이콘을 삭제하고 주의를 기울일 것을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일부 게임 이용자들이 문제 삼은 로스트아크의 아이콘. 일부 게임 이용자들이 문제 삼은 로스트아크의 아이콘.

CNN은 그러면서 국가가 성 불평등을 해결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뒤쳐지고 있다고 느끼는 분노한 젊은 남자들과 페미니스트들의 젠더 전쟁이 수년 째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송은 "이 전쟁은 최근 극에 달하고 있다"며 "5월부터 20개 이상의 브랜드와 정부 기관이 압박에 시달린 후 일각에서 페미니스트의 상징이라고 간주하는 것(손가락 모양)을 제품 등에서 제거했다"며 "이들 브랜드나 조직 중 최소 12곳은 남성 고객을 달래기 위해 사과문까지 발표했다"고 부연했다.

이어 "한국의 안티 페미니즘 역사는 길다"며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정서가 한국의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한국리서치의 지난 5월 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77% 이상, 30대 남성의 73% 이상이 '페미니스트나 페미니즘에 혐오감을 느낀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또한 "기업들이 제품을 수정하라는 압박에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젠더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에서 안티 페미니스트 세력들이 영향력을 얻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한국은 OECD 국가 중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가 가장 크다. 여성 임원 비율도 OECD 평균은 27%지만 한국은 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방송은 또 '수상한 소시지'라는 소제목 하에서 손가락 모양 논란을 촉발한 GS25 사건을 자세히 다뤘다.

앞서 GS25는 지난 5월 캠핑 관련 이벤트 포스터에서 소시지을 엄지와 검지로 집는 모양의 이미지를 사용했다가 일부 남성들로부터 '남성혐오 메시지를 담은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엄지와 검지를 집는 손가락 모양이 과거 급진적 페미니스트 인터넷 커뮤니티인 '메갈리아'의 로고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GS25 공식 SNS 캡처 GS25 공식 SNS 캡처

특히 이 손 모양은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를 비하하는 뜻으로 알려져 있는데, GS25에 문제를 제기한 이들은 포스터 속 소시지가 한국 남성의 성기를 뜻한다고 주장했다.

CNN은 문제의 손가락 모양에 대해 "제품을 가리지 않고 물건을 잡기 위해 광고에서 자주 사용된다"며 "메갈리아는 2015년 등장한 이후로 폐쇄됐지만, 그 로고는 메갈리아보다 오래 지속됐다. 이제 안티 페미니스트들은 한국에서 그 존재를 말살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GS25가 결국 광고를 삭제한 뒤 사과하고 관련 직원을 해고한 것은 페미니즘 '백래시'의 시발점이 됐다. CNN은 "온라인 시위는 성공을 맛 보았고, 더 많은 것을 원했다. 이내 다른 회사와 정부 기관도 표적이 됐다"며 무신사, 동서식품, 평택시 등이 유사한 이미지를 사용했다가 압력에 시달린 사례를 자세히 소개했다.

박주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러한 안티 페미니스트 움직임의 핵심에는 자신이 또래 여성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군 복무로 인해 느끼는 부당함을 꼽았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남성들의 요구를 마냥 무시하기 어려운 점도 사태를 복잡하게 한다. 남서울대학교 마케팅학과 최재섭 교수는 젊은 남성들이 "큰 소비자"이며, 정치적인 가치에 따라 물건을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메갈리아 로고 메갈리아 로고

대학생 하 모(23) 씨는 CNN을 통해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 기업의 제품을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GS25 포스터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면서 "많은 남자들이 끓어오르고 있다(seething)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러한 추세는 기업들을 난감한 상황에 빠트렸다. 노영우 PR 컨설턴트는 한국 기업들이 "문제의 소지가 있는 상징물에 대해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있다"며 "(손가락으로 꼬집는 모양에) 한번 엮이면 삭제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문제가 계속 퍼진다"고 밝혔다.

연세대 박 교수는 현재의 젠더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 든 남성들이 기업들을 이끄는 것이 문제의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안티 페미니즘 흐름에 대해 "새로운 적화 공포(Red Scare: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다. 마치 매카시즘 같다"고 평가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