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상영작 리뷰]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포르투갈 농장
구형준 영화평론가
백문이 불여일견. 때때로 이 말은 영화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간혹 어떤 영화는 그 속을 아무리 잘 해부하고 설명한다 해도, 말과 글만으론 도무지 그 고유한 내면에 이르지 못하고 수사에 그치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르투갈 영화감독 미겔 고메스의 신작이자, 그가 모린 파젠데이로와 처음으로 공동 연출한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The tsugua diaries)’가 바로 그런 영화다.
8월의 일상 역순으로 편집
영화 내부·외부 풍경 담아
다소 아리송해보이는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란 제목은 사실 8월을 의미하는 오거스트(August)를 거꾸로 적어 넣은 이름이다. 의역하자면 ‘월8의 일기’ 정도가 될까. 하여간 이 장난스럽고 익살맞은 이름의 영화는, 제목과 같은 방식으로 지난해 8월부터 9월에 걸쳐 촬영된 21일간의 이야기를 역순행적 구성으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21일간의 이야기 중, 21일 차를 가장 먼저 보여주고 이후의 이야기도 거꾸로 진행되는 것이다.
하지만 서사가 시간을 거슬러 간다 해서 딱히 과거 속에 대단한 비밀이 숨겨진 건 아니다. 그보다 영화는 리스본 외곽의 한 농장에서 영화를 찍기 위해 모인 배우와 스태프들을 소소한 방식으로 등장시킨다. 그들은 영화를 찍기도 하지만, 식사하거나 정원을 가꾸기도 한다. 또 수영장을 청소하고 수영을 하며, 춤을 추거나 강아지를 목욕시킨다. 그리고 여기엔 감독인 미겔 고메스와 모린 파젠데이로도 본인 역할로 등장한다. 실제로 촬영 당시 임신 중이었던 파젠데이로는 임산부의 모습까지 그대로 드러낸다. 즉 고메스와 파젠데이로는 영화 내부와 외부의 일상적인 풍경들을 역순이란 시간 흐름 속에서 세심하게 담으며, 그만의 유기성을 축조해낸다.
의도적으로 영화 내용을 건조하게 축약했다. 하지만 이보다 세밀하게 묘사한다고 해서 이 영화 속 여름의 부들부들한 햇빛과 파릇한 포르투갈 시골 풍경, 사소하고 귀엽지만 그 자체로 고유한 시간을 글로 온전히 옮기긴 어려울 것 같다. 서두에 언급했듯 이 영화의 내면엔 언어로 설명하기 힘든, 작고 단단한 이미지와 소리의 조합들이 오롯이 그것만으로 완전해지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태여 왜 이 글을 쓰는 걸까? 사실 딱히 영화를 훌륭히 설명해낼 재간도 없는 내가 이 지면에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에 대해 쓰기로 결심한 건, 형언하기 힘든 감동을 준 영화를 단순히 보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 감흥을 더 많은 관객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물론 이렇게 수수한 추천사를 쓴다 해서 이 조용하고 알쏭달쏭한 영화가 일반 개봉으로 이어지긴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최소한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만이라도 고메스와 파젠데이로의, 그리고 포르투갈의 사랑스럽고 눈부신 여름조각을 만날 기회를 얻길 바란다. 14일 오후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아직 한 번의 상영이 더 남았다. 부디 이 소박한 초대가 당신에게 너무 늦지 않게 도착하길 바라며. 선선한 가을의 중간에서 잠시간 다시 온기 넘치는 어느 시골농장의 여름정원으로 떠나보시길.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