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똑똑한 사람들이 망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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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철 스포츠부장

오징어게임 참가자처럼 행동하는 사람과 집단이 흔해졌다. 상대가 죽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논리,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상대를 제거하겠다는 참혹한 기세와 감정이 창궐한다는 느낌이다.

정치권만 보더라도 흉기 같은 독설과 감정 배설이 일상화됐다.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범람하는 주장과 주장, 대립하는 감정과 감정이 만들어낸 모호한 진실게임은 경쟁 구도를 한층 극단적으로 만든다. 이런 현상은 전염병처럼 퍼져 우리 사회 상당수 조직에서 불통과 편 나누기가 일상화됐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건전해야 할 소통의 광장은 앞뒤 맥락을 무시하는 날선 전쟁터로 변한지 오래다. 오랜 세월, 공들여 구축한 민주적 공동체 문화가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마저 팽배하다.

오징어게임 닮은 오염된 감정 창궐
민주적 공동체·광장문화 붕괴 우려
모호한 ‘뷰카 시대’ 해법은 열린 사고
상대에게 설득될 가능성 활짝 열어야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전 세계적이면서 인류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건전한 대립과 갈등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지구촌 전역에서 벌어지는 극단적 대치의 일상화는 결코 예사롭지 않다. 정치와 국가, 종교, 인종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극과 극의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지식인들은 반지성주의와 진영 이기주의, 오염된 광장 문화 때문에 인류가 결딴날 위기에 몰렸다고 지적하지만 이마저도 SNS의 거대한 물결과 가짜뉴스 등이 만들어낸 모호함에 휩쓸려 관심조차 받지 못한다. 심지어 인터넷과 SNS를 없애지 않으면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현재 인류는 초유의 ‘갈등 폭탄’을 안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세상은 멀미 날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인터넷과 SNS의 확산, 4차산업혁명, AI(인공지능), DT(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시대가 펼쳐지면서 메타버스와 디지털트윈 등 새로운 기술들은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증기기관 발명으로 촉발된 산업혁명이 전 근대적이던 인류의 사고를 완전히 바꿨듯이 지금의 기술 변화도 우리 가치관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더욱이 팬데믹 상황은 이런 변화를 한층 가속화한다. 어제의 가치관과 사유, 이념이 불과 오늘이면 이미 헌 것으로 전락한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그동안 인류는 포스트모더니즘 후기까지 흘러오면서 권위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성의 꽃을 활짝 피웠다. 탈지역주의, 탈인종주의 등 놀랍도록 긍정적인 성과도 대거 일궈냈다. 하지만 최근 초변혁의 급류 속에서 다양성과 탈경직 등의 성과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극한 대립만이 두드러졌다는 지적이다. 우리가 퇴행의 변곡점에 접어들었다는 주장마저 제기된다.

지금 우리는 아무리 저명한 전문가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았다. 뷰카(VUCA)의 시대. 뷰카는 Volatility(변동성), Uncertainty(불확실성), Complexity(복잡성), Ambiguity(모호성)의 앞 철자를 모은 조어다. 우리는 변동성·불확실성·복잡성·모호성으로 인해 한치 앞도 예측하기 힘들어진 정치·경제·글로벌 네트워크 상황 속에 놓여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은 집단만이 향후 100년 이상의 미래를 선점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초변혁의 시대, 뷰카의 시대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열려 있는, 경직되지 않은 사고가 필요하다. 더 많은 사유와 논의, 소통, 배려, 헌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나를 내려놓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 교차하지 못하는 직선들의 세상 끝에는 퇴행만이 기다릴 뿐이다.

삶은 오징어게임이 아니다. 타인의 삶을 파괴, 혐오하거나 조종해서는 안 된다. 고의적으로 갈등을 부추겨서도 안 된다. 뷰카 시대의 리더는 기존의 리더들과 확연히 달라야 한다. 이 엄청난 불확실성의 시대에 독불장군은 필요없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 변동성을 최대한 예측하면서, 불확실성과 복잡성을 넘어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려는 진정성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결국 이 시대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 마음을 열고 소통, 협력하는 자세일 것이다.

이언 레슬리는 ‘다른 의견(Conflicted)’이라는 최근 저작을 통해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망하는 이유’는 상대에게 설득될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자신들에게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낡고 경직된 진영논리식 사고는 풍부한 논의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2021년 11월, 우리의 미래는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열린 마음과 태도에 달려있다. 나와 우리를 넘어서려는 더 많은 고민, 다양한 지성적 자산들의 융합이 절실하다.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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