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교황이 북한으로 가야 할 까닭은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프란치스코 교황이 공식 초청장을 받으면 평양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방문해 주신다면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도와주기 위해, 평화를 위해 나는 기꺼이 가겠다”라며 “여러분은 같은 언어를 쓰는 형제이지 않으냐”라고 답했다. 참 고마운 말씀이다. 평화를 위해서는 어느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가겠다며 밝게 웃으며 대답하는 모습은 바로 세계의 종교 지도자다운 기품이 아닌가 싶었다.

교황이 방북하게 된다면 매우 중대하고 소중한 일이 될 것이다. 우선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북·미 대화 통로에도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북핵 문제 해결 소강 상태 속
문 대통령, 교황에 방북 권유 주목
공식 초청 전제로 평양 방문 화답
 
실제로 성사된다면 역사적인 일
북한의 달라진 면모 확인할 기회
현 상황 타개에 매우 긍정적 영향

지금의 바이든 정부는 과거 트럼프 정부와 달리 정상회담보다는 실무 회담을 중시하는 이른바 ‘버텀업(bottom-up)’ 방식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떤 방식이 반드시 좋다고 하기는 어렵다. 정상회담 우선의 ‘톱다운(top-down)’ 방식과 마찬가지로 실무 회담 중심의 버텀업 방식 역시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과연 미국의 실무 관료들이 북한 관료들과 대화와 소통이 잘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미국 외교관들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가 북한의 가치와 교감을 가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미국 내부의 북·미 대화 반대 여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 이후 2019년 오토 웜비어 법이라는 이름으로 ‘세컨더리 보이콧’ 등 대북 금융 제재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통과되었고, 지난달에도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오토 웜비어 북한 검열 감시법’을 처리했다. 물론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빚어진 악화한 여론을 북한을 통해 극복하려는 카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없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과 여론은 대북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미국뿐 아니라 일본의 집권 자민당의 북한에 대한 부정적 분위기를 극복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북핵 문제 해결은 미·일 안보조약을 바탕으로 하는 태평양 질서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하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즉 북핵 문제 해결은 미·일 안보조약이 덜 중요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이런 일본의 입장은 미·일 외교에 그대로 투영돼 미국 관료들의 부정적 견해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북핵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았던 것도 이러한 복합적인 이해관계를 모두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남북대화와 관련해 협력을 지지한다고 했다. 또 일주일 뒤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내레이션을 넣어 만든 59초 분량의 한·미 정상회담 편집 영상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기도 할 만큼 그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대통령의 생각이 관료들에게 그대로 전해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북한 적대시 정책’은 없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한·미 간 종전 선언에 대한 관점은 다를 수 있다며 ‘시기와 조건’의 차이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분명히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시원한 행보를 보이지는 못하고 있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은 혼자서 추진력을 발휘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세련된 외교를 하고 있지만, 절차가 다소 복잡하다. 이처럼 북핵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 만들어질 듯도 하고, 되지 않을 듯도 한 현 상황에서 교황이 몸소 평양을 방문한다면 그 영향력은 대단히 크고 긍정적일 것이다.

교황은 공식적인(official) 초청장이 오면 방북하겠다고 했다. 섣부른 추측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북한이 교황청과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지난 7월 “교황의 평양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남북 통신연락선이 13개월 만에 연결되던 시점이었다.

만일 김정은 총비서가 교황을 초청하고 환영하여 맞이한다면 이 또한 역사적인 사변이라 할 수 있다.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북한 사회의 달라진 면모를 보여 주는 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황을 초청하는 행위 자체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볼 수 있다. 국가 주요 행사장에 걸려 있던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내린 김정은 총비서가 얼마나 독자적인 외교 의지를 보일지도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늘 소외된 곳을 찾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을 방문해서 ‘동쪽으로 가는 까닭’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길 기대해 본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