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상주초등 오감 교육, 학교도 살리고 마을도 살렸다
[학교가 사라진다] ⑥ 작은학교의 소생
“아파트에 둘러싸인 도시 학교보다 작지만 이곳이 ‘진짜 학교’ 같아요.”
경남 남해군 상주초등학교 학생 정재현(13) 군이 자신있게 말했다. 정 군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기도 의정부시 도심에서 학교를 다녔다. 현재 정 군이 다니는 상주초등은 경남 남해군 상주면 금양마을 시골에 있는 작은학교다. 정 군은 지난해 말 부모와 함께 이사를 왔다. 틀에 박힌 입시 경쟁이 아닌 ‘새로운 교육’을 위해서였다. 정 군에게도 가기 싫었던 학교는 어느새 즐거운 공간이 됐다. 정 군은 “교과서 중심의 교육뿐만 아니라 산과 바다,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오감 교육’으로 수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전교생 48명 남해군 상주초등
학생 5명 중 4명이 타지서 전학
마을협동조합 논에서 현장학습
학부모가 원예교사 등으로 활동
마을 참여 ‘상주교육’ 체제 운영
교육당국·지자체 전폭 지원에
학생 수·유입 가구 증가 현상
■온 마을이 키우는 아이들
올 9월 28일 오전 취재진이 찾은 상주초등 주변 풍경은 한폭의 그림 같았다. 학교가 있는 금양마을은 은모래해수욕장을 코앞에 두고, 뒤로는 해발 680m의 금산이 자리잡았다. 2층짜리 학교 건물에는 48명의 학생과 교장·교감 등을 포함해 10명의 교사가 있다. 1개 학년에 학급 수도 단 하나. 교사 1명이 6명의 학생을 담당하는 셈이다. 많지 않은 학교 구성원끼리 교감할 수 있어서 상주초등 교사는 물론 교장도 학생 개개인의 취미와 장래희망까지 알고 있을 정도다.
6학년 교실로 들어서자 학생 10명이 3~4명씩 나눠 앉아 조별 미술 과제를 하고 있었다. 며칠전 현장학습으로 다녀온 ‘다랑논’의 모습을 도화지에 그리고 지점토로 만드는 시간이었다. 놀랍게도 이 논의 관리자는 주민들과 학교 구성원이다. 마을 주민과 학부모가 만든 마을협동조합 ‘동고동락’은 660㎡(200평) 이상 규모의 논을 교육 목적으로 학교에 제공하고 있다. 학생들은 기본 교육 외에 논에서 직접 모심기도 하고 식물을 만지면서 곤충도 관찰한다. 학교 수업 과정에도 마을 주민이 참여한다. 이날은 6학년 담임 김동욱(46) 교사 외 원예교사 신혜란(44) 씨가 수업에 참여했다. 상주초등에 2명의 자녀를 둔 신 씨는 학부모이자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경남 진주시에 살던 신 씨도 올해 1월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신 씨는 “아이들이 도심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지식을 자연에서 습득하고, 마을 사람들 모두 학생들의 이모·삼촌이 돼 아이들 교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엔 학교 운동장에서 ‘허수아비 만들기’ 행사가 열렸다. 마을 사람들과 학생들이 다같이 모여 허수아비를 만드는 마을의 행사였지만, 동시에 학생들에게는 엄연한 교육의 연장선이었다. 상주초등은 마을이 아이들을 키운다는 취지를 살려 ‘365상주교육’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방과후학교부터 저녁과 주말을 이용한 ‘끼리끼리배움터’, 마을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상상놀이터’, 아이들이 기획하는 방학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작은학교가 막은 지역 소멸
상주초등 학생 5명 중 4명은 ‘원주민’이 아니다. 대부분은 남해군 밖의 다른 시·도에서 전학온 사례다. 남해군 중심에서도 떨어진 준벽지에 있는 상주초등을 지원하는 교사들의 경쟁도 가열되고 있다. 과거에는 이렇지 않았다. 남해군에는 상주면을 포함해 10곳의 읍·면이 있다. 상주면은 남해군 행정구역 중 인구 수가 가장 적다. 남해군 전체적으로 인구 감소가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상주면의 학교에도 학생 유출이 빈번했다.
반전은 지난해 3월에 일어났다. 경남도청과 경남도교육청, 남해군청 3개 기관이 의기투합해 ‘작은학교 살리기 프로젝트’ 추진을 시작하면서다. 교육당국과 지자체가 손을 맞잡고 ‘통합교육추진단’을 설립해 작은학교를 지원한 것은 전국 최초 사례다. 남해 상주초등 등을 작은학교 지원 대상으로 설정하고 수십억 원을 투입해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교실을 증축하고 운동장 공사, 책별당(도서관) 준공, 별별놀이터 준공, 일자리 알선 등 다양한 연계 사업으로 작은학교에 힘을 실었다. 이 과정에서 경남도교육청은 LH와 협업해 학부모를 위한 임대주택 5가구를 건립하기도 했다. 그 결과 상주초등 학생 수에도 놀라운 변화가 발생했다. 2017년 3월 상주초등의 학생 수는 40명에서 지난해 3월에는 35명까지 감소한 상태였다. 그런데 올 9월 기준 48명까지 증가했다. 상주초등의 교육이 알려지면서 다른 곳에서 이주한 학부모들은 임대주택이 부족하자 빈집을 사들이는 사례도 잇따랐다. 작은학교 살리기 프로젝트 덕분에 남해군 상주면에는 17가구 57명이, 또 다른 지원 대상 영오초등학교가 있는 경남 고성군 영오면에는 10가구 47명이 늘었다. 결과적으로 지역 소멸 위기에 처한 남해군 중에서도 상주면만 유일하게 인구 유출을 막아냈다. 2019년 10월 기준 1684명, 911가구였던 상주면 인구는 지난해 1627명, 902가구로 줄었으나 올해는 1634명, 929가구로 반등에 성공했다.
교사들은 점진적이고 지속가능한 작은학교 살리기 프로젝트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상주초등 6학년 담임 김동욱 교사는 내년이면 지난 5년간 몸담은 상주초등을 떠난다. 김 교사는 “다른 학교로 가게 돼 아쉽지만, 작은학교는 없어져서는 안 될 최적의 교육 공간이다”며 “교육당국과 지자체의 작은학교 살리기 프로젝트가 확산돼 여러 곳에서 작은학교를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이다”고 간절히 말했다.
남해/글·사진=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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